인문학을 대하는 20대 청춘의 올바른 자세

2013. 1. 21. 09:3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제가 도서관에 올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새로 나온 책들을 뒤적이는 것이지만 그밖에도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또 있습니다. 바로 '인기대출도서 순위'를 살펴보는 일이지요. 요즘 20대들의 관심사항을 반영하는 좋은 자료이니만큼 눈여겨 살펴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인기대출도서 순위'라는 것에 매번 많은 실망을 하고는 합니다. 그 목록들을 찬찬히 훑어보다 보면 소위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의 대출도서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 때문이에요. 거의 언제나 토익책과 판타지소설, 베스트셀러 도서들만이 순위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지요. '인구에 회자되는 고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삶의 이정표를 그려줄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책들을 대학생시절에 읽지 않는다면 대체 언제 읽는단 말입니까? 





물론 <논어>나 <삼국지>, <명상록>이나 <차라투스트라> 따위를 읽지 않아도 삶은 잘 굴러갈 것입니다. 어쩌면 더 쉽게 굴러갈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들을 읽는다 해서 연봉이 좀 더 높은 회사에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죠.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멋지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으며 무엇을 느꼈니?"란 질문을 받을 확률보다 "토익 몇 점까지 땄어?"란 질문을 받을 확률이 훨씬 더 높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본질적 질문들은 회피한 채 누구나 답할 수 있는 표면적인 질문들만을 던지며 살아간다면 과연 삶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사랑이나 죽음, 우정, 성공과 실패, 봉사와 희생, 믿음과 배반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한 치 앞만 내다보며 살아간다면? 이 모든 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확실한 신념과 잣대가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처음 가보는 낯선 나라에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 없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80년 남짓의 생 내내 무수한 흔들림과 방황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고요.


온라인 게임도 좋고, TV오락 프로그램도 좋고, 막장 드라마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에게 인생의 중요한 물음들을 던질 수는 없는 일이죠. 해답을 듣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대상은 여전히 책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인문학서가 그렇습니다. 


언제부턴가 언론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려줍니다. 제 생각에도 인문학은 오래 전부터 위기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인문학 관련 학과들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고, 서점가에는 '인문학'이란 제목을 단 책들이 무수히 쏟아지지만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지요. 자기계발서와 일부 인기작가의 에세이, 장르 소설들이 20대 청춘들에게 두루두루 널리 읽히는 반면, 인문학 관련 도서들은 뭐랄까, 일부 마니아층만이 점유하는 문화 같은 느낌입니다. 인문학서는 두꺼운 안경을 끼고, 클럽보다도 도서관을 사랑하는 '독특한' 청춘들이 옆에 끼고 다니는 책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인문학, 돈 안되는 학문 아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생각처럼 인문학이 '전혀 돈이 안 되는 학문'인 것은 아닙니다. 성공과 동떨어진 학문인 것도 아니고요. 물론 '부'와 곧바로 직결되지 않고, 내일 당장 상사에게 써먹을 수 있는 처세술을 속 시원하게 짚어주지는 않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알려 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입니다. 


말인즉슨, '1 더하기 1은 2'라고 곧바로 정답을 일러주지는 않아도 1 더하기 1이 어째서 2가 되는지, 그렇다면 1 더하기 2는 얼마가 되는지를 조목조목 가르쳐주는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따라서 <논어>나 <삼국지>, <명상록>이나 <차라투스트라> 에 '목돈 만드는 법'이나 '보고서 잘 쓰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돈'이나 '성공'과 동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세상과 자기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는 것, 그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값진 테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그것만큼 성공과 직결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실제로 전 휴렛패커드의 회장이었던 칼리 피오리나, 영국의 브라운 총리, 세계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와 같은 수많은 정치․경제계의 지도자들이 학창시절에 공부한 인문학이 '부'와 '성공'에 직접적인 큰 도움을 주었다고 이야기했지요. 



▲서울신문-겨울방학 독서삼매경[출처-서울신문]




인문학은 21세기의 이 복잡다단한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각자 자신의 페이스대로, 각자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걸을 수 있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갈수록 과학적 효율성만이 중시되고 참된 인간상과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나날이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말이죠. 





인문학,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공부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 '무한 경쟁의 전사'들로 길러진 우리 20대 청춘들은 더 많은 지식의 습득과 취업용 스펙 쌓기가 가장 중요한 공부라 배우고 살아왔습니다. 학교 공부는 '성적순 줄 세우기'의 도구로 전락했고, 철저한 경쟁 제일주의 속에서 길러진지라 무엇이 '진짜 공부'인지는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냐고요? 우리는 '88만원 세대'. '3무(無) 세대'라는 찌질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10대 청소년의 사망원인 2위, 20대 젊은이들의 사망원인 1위는 영예롭게도 자살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공부'는 단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영문법은 10년이 넘게 배웠으면서도 정작 '참다운 공부를 하는 자세' 같은 것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취업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제2외국어는 배우면서도 정작 타 문화와 문화권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뿌리는 썩는 대로 내버려 둔 채 곁가지와 꽃봉오리에만 집착하는 미련한 행동만을 반복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세계가 둥근 것은 까마득히 모르면서 세계를 파헤치고 장악하겠다며 억지논리로 무장한 엉터리 학자처럼 말이죠.

 

2013년에는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박살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상 문학전집' 정도는 박살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발자크의 희극 시리즈를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박경리의 토지 시리즈 정도는 씹어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자세와 방법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고요? 세상을 두루두루 구경하는데 인문학서만큼 멋진 도구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책장 맨 아래 꽂혀있는 먼지 덮힌 인문학 책 한 권을 뽑아 들어보세요. 그야말로 가장 넓고, 깊은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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