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5. 11:36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고통을 희망으로 바꾼 어느 화가 이야기
20세기 멕시코를 대표하는 여성화가,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어렵지 않게 ‘프리다 칼로(Frida Kahlo)’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꿈틀꿈틀 살아 숨 쉬는 강렬한 눈빛과 표정을 지닌 정열의 예술가, 그리고 당대 또 다른 천재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와의 전설 같은 러브스토리, 끔찍한 육체적 고통으로 점철된 개인적 삶 등등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세계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실 서양 미술이라 하면 유럽과 미국이 전부인 줄 알았던 제게 프리다 칼로의 예술세계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문화의 변두리처럼 여겨지던 라틴 아메리카의, 그것도 여성화가의 작품이 전 세계인의 눈과 가슴을 사로잡은 자체가 놀랍게 여겨졌거든요. 프리다 칼로는 현대 미술사에서 결코 소외될 수 없는 중요한 화가입니다.
시중에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서도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헤이든 헤레라의 책 「프리다 칼로」를 선택해 읽었습니다. 전문가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녀의 삶을 정리한 점과 제 59회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이자 멕시코계 여배우인 셀마 헤이엑이 열연한 영화 <프리다>의 원작인 점, 마지막으로 지인의 추천까지 더해져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출처-YES24]
저자는 프리다 칼로의 편지와 작품 등을 함께 싣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재구성합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중반 멕시코를 비롯한 미국, 러시아, 유럽의 인물, 역사, 문화, 정치, 사회까지 전반적인 배경을 기록하며 프리다 칼로를 21세기 오늘에 생생히 복원하는데 성공합니다. 책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궤적을 그대로 더듬으며 있는 그대로의 프리다를 그려냅니다.
프리다 칼로는 실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멕시코 혁명의 한 가운데서 태어난 프리다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 많고 총명한 소녀였지요. 그러다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 사고를 당합니다. 18살에 당한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져 장애인이 된 것이지요. 그 후 일생동안 서른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아야했고, 후유증으로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평생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의학도를 꿈꾸던 그녀는 육체에 갇혀 지루함에 처음 그림을 시작했고 그것이 그녀의 삶에 진짜 자유로 다가옵니다. 틀을 깨부수고, 세상 곳곳을 날며,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혁명’을 그림을 통해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wikipedia]
“나는 나의 작품이 평화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내가 나의 그림에 아름답고 숭고한 이념을 불어넣을 수 없다면 그것은 내게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결코 예술이 이념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한 인물을 탐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20세기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 현대 미술사의 일부와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읽는 것은 다른 말로 한 편의 백과사전, 박물관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외적, 내적 고통을 이겨내고 예술로 승화시킨 인간의 강인함과 희망을 관찰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가슴에 사랑과 열정과 불꽃을 담은 여자
나혜석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제가 중학생 무렵일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한국 유화를 정착시킨 최초의 전업 유화가라는 수식어가 꼭 그녀 이름 옆에 붙곤 했었죠. 1896년 여성으로 태어나 감히 어느 누구도 걷지 않은 길에 첫 발을 떼다니 정말 대단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뿐, 나혜석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다소 밋밋합니다.
그러다 언젠가 화가 나혜석의 삶을 고찰한 평전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오해가 순식간에 박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삶의 자유를 박탈 당한 시대에 태어난 그녀가 얼마나 깊이 자유를 갈망했는지 알고 나자 마음이 얼얼할 지경이었죠. 말 그대로 그녀는 온 몸으로 근대의 벽을 허문 여성이었습니다. 나혜석의 삶은 위에서 언급한 프리다 칼로의 삶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동서양이 서로 다른 사회적 환경에 처해있었지만 선각자적인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까요? 그녀 역시 개인적인 불행과 고통들, 사회적 편견과 냉대를 이겨내고 자아를 찾아 오래 헤맸습니다.
[출처-YES24]
가끔 예술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며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 덩어리로 맞바꾼 또 다른 생명체를 헐값에 보고 있다고요. 인생 전부를 내어주고 얻어온 예술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요. 유난히 추운 올 겨울은 정열만으로 세상을 녹인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어봄은 어떨까요? 많은 것을 얻으실 거라 확신합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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