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스캔들에 휘말린 교황들 알아보니

2013. 3. 19. 09:4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몇 일전 베네딕토 6세가 퇴임을 한 후 새로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들고 싶다’고 새 교황은 말했습니다. 새 교황이 역대 교황들과 달리 더욱 조명이 되는 이유는 바로 권위적이고 정치적이었던 그동안의 교황청 이미지와 다른 털털함과 소박함을 앞세웠기 때문인데요. 언론에서 또한 교황의 직무 이야기보다는 인간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새 교황을 소개했습니다. 교황의 첫사랑이야기, 혹은 교황 즉위 후에도 찾아볼 수 있는 인간적이고 친근한 행동들에 포커스를 맞춰 연이어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언론이 이러한 교황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 이유 무엇일까요? 오늘은 2000년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교황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출처-서울신문]

 

 

 

‘인간적 매력’을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바람을 몰고 온 이유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교황청은 수많은 시간 동안 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어왔습니다. 또한 과거 ‘교황’이라는 자리는 과거 ‘왕’만큼이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자리였지요. 현재보다 과거에 부정부패가 무척 심하던 자리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역사와 신과 사제의 중간 사이에 위치하는 ‘교황’의 자리는 당연히 권위적이고 정적인 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교황’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가까이 대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틀을 깨고 인간적이고 소박한 털털함을 보여주며 그간의 교황청과 교황에 대한 이미지를 깨었답니다.

 


교황이 수도회를 창시한 성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택한 것은 교회가 본래의 가난하고 낮은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보인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그의 즉위명을 두고 "새 교황의 소박함과 박애를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은 "감격스럽다"는 말로 교황의 선택을 반겼다.

 [새 교황 프란치스코 탄생] 가톨릭 최초의 수도회 만든 중세 성인 이름 따-<한국일보>,2013.3.14

 


새 교황의 행보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자지며 권력의 자리에 위치한 ‘교황’이라는 자리 탓에 생긴 대중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 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오랜 역사  만큼이나, 정치적 스캔들이 많았던 교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깬 것이지요.

 

 

그렇다면 역대 교황들에게는 어떤 정치적 스캔들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수 없이 많은 콘텐츠들에서 교황청의 부패에 대한 픽션(fiction)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으며, 실제로도 교황에 대한 많은 루머들이 떠돌기도 했는데 말이죠. 어디 한 번 그 속내를 들여다볼까요?

 

 

 

정치스캔들의 대표적인 사건,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 유수

 

교황청과 관련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정치적 스캔들은 바로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 유수가 아닐까 합니다. 세속정치를 무릎 꿇게 한 “그레고리오 7세”와 세속정치에 무릎을 꿇은 “보니따시우 8세”. 두 교황과 관련된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 유수는 교황권과 정치권간의 세력 다툼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았지만 그 양상은 상반되었던 사건입니다.

 

 

카노사의 굴욕은 1075년에 일어진 일입니다. 당시 교황이였던 “그레고리오 7세”와 황제 하인리가 성직자 서임권을 가지고 힘겨루기를 한 사건입니다. 1075년 12월 8일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세속 군주의 서임에 대한 규정을 강화 하면서 황제의 주교직 서임을 금지시켰는데요. 이는 황제의 권한을 위협하는 것이었고 신성로마 제국 교회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강압적인 교황의 처우에 황제는 더 이상 그레고리오 7세를 교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포하고 폐위를 결정하였으나 이에 대한 반격으로 교황은 로마 회의에서 황제의 파문과 폐위를 선엄함으로써 본격적인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결국 교황과의 싸움에서 황제가 굴복하게 되고 당시 교황이 머물던 카노사성 앞에서 눈 속에서 맨발로 3일간 서서 굴욕적인 사면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인 것이지요.

 

 

반대로 아비뇽 유수는 1309년부터 1377년까지 7대에 걸쳐 로마 교황청을 남프랑스의 론강변의 도시 아비뇽으로 이전한 사건을 말합니다. 13세기 말부터 세속 권력이 신장하자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싸워 이김으로서 교황의 감시를 위해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게 한 것인데요. 이후로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인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 왕의 강력한 간섭을 받았지요. 카노사의 굴욕이 교황권에 대한 세속정치의 굴욕이었다면 아비뇽 유수는 세속정치에 대한 교황권의 굴욕이었던 셈이죠.

 

 

▲교황청에서 발부한 면죄부를 구기고 있는 루터 [출처-서울신문]

 

 

 

현대, 정치와 교황의 관계

 

새 교황이 선출되기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교황을 영임하면서 여러 스캔들에 휘말렸었습니다. 바티칸 내 권력 다툼 부터 성직자 아동 성추행 사건부터 시작하여 교황의 전 집사가 바티칸 비밀문서를 유출하는 등의 다양한 스캔들에 휘말렸는데요. 역시 한 집단의 대표자로서 역임해야할 책임들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2006년부터 교황의 집사로 일한 가브리엘레는 교황청 비리 관련 기밀 문서를 작가 지안루이지 누치에게 유출한 혐의로 지난 5월 체포됐다.(중략) 바티칸 경찰은 당시 가브리엘레의 자택에서 그가 교황궁에서 빼돌린 기밀 문서 1000여 건을 발견했다.(후략)

 

바티칸 기밀문서 유출 혐의 교황 전 집사, 징역 18개월형-<news1>,2012.10.7

 

 

▲베네딕토 16세 [출처-서울신문]

 

 

로마가톨릭 제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퇴임은 생존한 교황이 자진 사임하기는 1415년 정치적 이유로 물러난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만이라고 하는데요.

 

 

간접적인 스캔들에 휘말렸던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그레고리오 12세는 직접적인 정치적 스캔들과 관련이 되어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레오 12세가 사임하게 된 이유는 교회법에 맞게 교황으로 선출되기는 했으나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또한 반교황 베네딕토 12세가 있어 서로 합법 교황임을 주장하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이런 설전 가운데 알렉산드로 5세인 또 다른 교황이 뽑히게 되면서 분열 해소를 줄이기 위해 공식적으로 그레고리오 12세가 자진 사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치적 입장에서 바라 본 새 교황의 과제

 

교황은 종교인으로서 가장 낮은 위치에서 봉사해야 할 존재이면서도, 또 다른 시각에서는 막대한 권력의 힘을 가질 수 있는 위치입니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면서 교황과 정치에 대한 밀접한 관계와 부정부패는 많이 사라졌으나, 이번 새 교황의 선출은 또 다른 교황청 모습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번 새 교황의 과제는 무엇보다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것인데요. 과거 베네딕토 16세는 타종교와의 대화 등에 집중하며 많은 좋은 일들을 했지만 여성사제, 콘돔, 에이즈, 동성결혼, 낙태 등의 지나친 보수적 입장에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한 지도자로서 교황은 사회적 문제와 연결 된 정치적 힘에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데요. ‘박애’를 신념으로 삼는 가톨릭 교리를 따라 이번 새로운 교황의 출마에선 모두가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긍정적인 정치 스캔들이 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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