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문화산업 확장,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

2013. 4. 2. 13:2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최근 모든 산업이 대형화되고 통합되고 있습니다. SSM 등 지역 상권이 대형 마트로 통합되는 것처럼 문화 산업 분야도 대기업에 의해 대형화되고 있죠. 가장 많은 분들이 문화생활로 즐기는 웹툰과 영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최근 네이버는 웹툰에 대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역할을 넘어 기획부터 유통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웹툰 내 간접 광고 수익 배분을 골자로 하는 새 수익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CJ가 운영하는 국내 최대 영화 체인인 CGV는 블록버스터부터 독립영화까지 아우르고 있죠. 과연 이런 대기업의 문화산업 확장은 문화 독점의 폐해가 클까요? 아니면 문화양성의 순기능이 클까요?





[출처 – 서울신문]




대기업 문화산업 확장의 순기능. 창작자에게 확실한 수익원 제공


네이버는 하루 1,800만 명이 방문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포털입니다. 포털 이름에 걸맞게 네이버는 만화, 음악, 책 등 다양한 문화 부문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최근 들어 각 문화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새로운 시도로 대중문화의 중심축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우선 네이버는 웹 문화의 꽃인 웹툰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월 1,700만 명이 네이버에서 무료로 만화를 보고 있었는데요. 네이버가 만화가들에게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페이지 프로핏 셰어(PPS)를 도입해 점 다 적극적으로 만화가들과 수익을 나누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웹툰의 클릭수를 기준으로 PPL 광고 단가를 책정하고 웹툰을 볼 때 생기는 광고비는 네이버와 만화가가 5대5로 나눈다고 합니다. 웹툰의 베스트 컬렉션이나 외전 등의 유료 판매 모델도 추가로 도입했고요. 모든 수입의 최소 절반 이상을 창작자인 만화가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도 “방문자 수가 가장 많은 네이버가 웹툰으로 트래픽을 올려 광고 수익 모델을 만들어 냈으므로 다른 업체들은 제2, 제3의 수익모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만화계의 파이가 커지고 지평도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후략)


텐츠 영역 넓혀가는 네이버, 문화생태계 동반자? 포식자? (한겨레, 2013-03-29)



사회에서 비주류로 취급받던 만화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받은 셈입니다. 이에 창작자인 만화가들은 대부분 이 시도를 반기고 있습니다. 좀 더 안정적으로 만화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화를 그리며 생계를 위해 피자 배달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한 만화가는 이제 만화 연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며 반색했습니다.



네이버는 웹툰 이외에도 웹소설을 런칭하고 직접 챌린지 리그라는 공모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웹툰처럼 요일별 웹소설이 무료로 제공 되고 있죠. 대중문학뿐 아니라 주류문학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는 3년 만의 신작인 정글 만리를 네이버에서 연재하기 시작했죠. 이미, 박범신의 촐라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파울로 코엘료의 승자는 혼자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녀에 대하여 등이 네이버에서 독점 연재된 작품들입니다.




[출처 – 네이버 뮤직]




음악은 좀 더 다양한 음악을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네이버 온 스테이지를 통해 비주류 인디 음악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대중들이 접하기 힘든 국악, 헤비메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왕 조용필도 TV가 아닌 네이버 뮤직을 통해 새 앨범을 최초 공개하고 네이버를 통해 쇼케이스를 내보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네이버의 예로 본다면 창작자들의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방식의 대규모 모객과 광고에 기반을 둔 수익 창출은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니면 사실상 힘든 일이기에 긍정적인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 따라 창작자들은 작품 활동에만 더 몰두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작품의 퀄리티도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죠.




대기업 문화산업 확장의 역기능. 문화 독점 및 편식 증상


대기업의 이런 시도는 긍정적인 부분만큼 우려도 높은 편입니다. 문화 생태계의 근간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죠. 웹툰 수익 모델 제시의 경우도 전통적인 출판계로부터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창작자에게 수익이 공유되는 수익 모델을 제시하지만 소비자가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료이기 때문에 콘텐츠=무료라는 무의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중간 유통 단계를 네이버가 사실상 대체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유료 콘텐츠, 즉 종이책을 기반으로 하는 잡지사나 출판사는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사실 외국에서도 문화 산업에 사세를 확장하다가 역풍을 맞은 경우는 심심찮게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작가와 직접 계약해 책을 출간하려다 출판계 전체와 마찰을 빚었던 적이 있고, 구글은 절판되었지만 저작권이 살아 있는 도서들을 디지털 도서관으로 만들려다 독점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지나친 독점은 언젠가 그 폐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 R2B 공식 홈페이지]




실제로 영화계에서는 이런 폐해가 적지 않은 데요. 보고 싶었던 영화가 3일도 안 되어 상영이 끝나거나 반대로 이 영화가 왜 아직도 걸려있나 싶은 적이 있으실 겁니다. 예를 들어 CGV가 작년에 개봉했던 R2B는 만듬새와 입소문이 좋지 못했으나 CJ에서 제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CGV에서 장기 상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도 처참하게 실패했지요. 


그 시간 동안 좋은 독립 영화들과 독특한 상업 영화들이 상영관을 잡지 못해 관객들을 만날 수 없었겠죠. 관객들도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하고 있는 영화가 R2B 뿐이니 볼 수가 없었을 테고요. 아시다시피 CGV는 우리나라 최대의 영화관 체인입니다. 대중의 취향이 대기업의 산업 논리에 의해 강요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또한 문화 산업에서 독점은 문화적 다양성의 실종뿐 아니라 상업적 실패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는 예일 것입니다.



“여전히 멀티플렉스를 한두 영화가 독점하고 있고 동시대를 사는 영화인들이 만든 작은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가도 받기 전에 사장되고 있다.”면서 “극장 독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로서 ‘피에타’는 개봉 4주차를 마지막으로 새달 3일 모든 극장에서 깨끗이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후략) 


‘극장 독점’ 비판 김기덕 “피에타, 새달 3일 종영” (서울신문, 2012-09-25)




작년에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도 영화산업적인 발전과는 별개로 다양성의 실종과 작은 영화가 입게 되는 피해에 대해 이처럼 목소리를 냈었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대기업의 문화 산업 확장. 분명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대기업이 문화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큽니다. 연이은 불황으로 인해 죽어가던 문학과 만화의 경우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로 인해 새로운 수요와 공급을 창출할 수 있었으며 만화계 전체의 파이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독점과 산업 논리가 문화적 다양성을 실종시키고 대기업이 바랐던 상업적 이득 역시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화재와 화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맛있는 요리와 따뜻한 온기를 줄 수 있는 불처럼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문화 소비자인 우리들이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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