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맞아 감정노동의 그늘 살펴보니

2013. 4. 30. 09:5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5월 1일 근로자의 날, 쉬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아마 이곳저곳으로 놀러 가실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실 텐데요. 그런 휴일이 오히려 무서워지는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노동자들이죠. 주로 백화점, 행사 도우미, 승무원, 콜센터, 외식, 레저 등등 휴일이나 연휴가 대목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을 말하는데요. 자신의 실제 성격과 무관하게 어조, 표정, 몸짓 등을 직무의 일부로 연기하며 고객을 대하는 직군의 노동자를 말해요. 우리나라의 서비스직 감정노동자는 무려 6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네요. 오늘은 근로자의 날을 맞아 감정노동자들의 그늘에 대해 살펴볼게요.



[출처 – 서울신문]




속은 슬픔에 찌들어 멍들지만, 겉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는 감정노동자


얼마 전 한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 내에서 승무원에게 라면을 다시 끓여오라는 등 트집을 잡다가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FBI로부터 입국 금지를 당한 일이 있었죠. 이 때문에 여론이 들끓어 오르면서 결국 그 임원은 사표를 내게 되었고,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고 있던 그 기업의 이미지는 단번에 추락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감정노동자인 승무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해결되었지만 대부분의 감정노동자는 비슷한 일을 겪고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다른 분야의 감정노동자들도 비슷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여성 C씨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반품을 요구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말대꾸를 한마디 했다가 따귀를 맞았다. 백화점에 항의하고 싶었지만 “재계약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상사의 말을 듣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C씨는 “백화점과 입주업체는 갑(甲)과 을(乙)의 관계로 묶여 있어 그냥 참아 넘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후략) 


600만 ‘감정노동자’ 그들은 오늘도 운다 (서울신문, 2013-04-23)




[출처 – 서울신문]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에서 화를 참다 보니 감정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은 다른 업종보다 훨씬 나쁜 편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서비스직 감정노동자의 26.6%가 심리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이는 징계해직자의 우울증 비율 28.5%와 거의 같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감정노동자들은 징계로 해직당한 사람들만큼이나 억울하고 슬픈 상태에서 매일매일 정상 업무를 하고 있다는 소리지요.



감정노동자 문제에는 속칭 진상을 부리는 손님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압박하는 고용주도 있습니다. 일이라는 게 어려운 점도 있는 거지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불합리한 감정 노동을 요구하는 거죠.



입점업체 직원들을 극단으로 내모는 건 비단 '가매출'뿐이 아니다. 백화점 관리자들의 인격 모독과 연장 노동 강요 역시 다반사라는 게 종사자들의 증언이다. 백화점 매니저 F 씨는 "일부 백화점 관리자는 이근안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정신 고문 기술자'란 얘기가 업계에 파다하다"며 "얼마나 출세하겠다고 손윗 사람들을 그렇게 쪼아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후략) 


롯데百 '슈퍼乙'의 집단분노…무색해진 '함구령' (노컷뉴스, 2013-04-29)



[출처 – 서울신문]



거기에 성과 압박과 불합리한 매출 압박까지 더해지면 사람이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내몰립니다. 얼마 전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에서 투신자살한 입주업체 여직원의 경우를 보더라도 말이죠. 이 건으로 언론과 접촉하면 백화점 업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고용주의 모습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과 업계의 노력이 필요한 때




[출처 – 서울신문]




이렇듯 불합리한 감정노동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두의 배려와 관심 그리고 인권을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는 선진국처럼 고객과의 마찰 등에서 오는 직무 스트레스를 심각한 문제로 인정하고 기업 차원에서 상담 인력과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2년 여성 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를 통해서 반품 요구에 대한 대응 기준과 고객의 욕설 폭력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지요.



[출처 – 서울신문]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감정노동을 배려하는 기업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대카드에서는 과잉친절 추방운동을 펼치며 상담원들에게 더는 악성고객에게 친절을 강요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합니다. 성희롱이나 폭언을 일삼는 악성 고객이라면 2회 경고 후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라고 했다는데요. 효과가 아주 좋아서 상담원들의 이직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2월부터 전화 상담원에게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고객에게 2차례 경고한 후 그치지 않으면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2011년 13.3%에 달했던 상담원 이직률이 지난해 6.5%로 줄었다.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는 고객이 1시간 이상씩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일도 줄어, 월평균 총 상담 시간이 582시간 단축됐다. 이는 상담원 6명의 1개월 치 상담 시간에 해당한다.(후략) 


"손님이 폭언땐 전화 끊어라" 대기업 파격실험 (조선일보, 2013-04-26)



직원들에게서 불합리한 감정 노동을 걷어가자 이직률이 줄어들고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측도 악성고객보다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게 오히려 업무 효율이나 생산성 면에서 긍정적이라는 결과지요.



사실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참 쉽습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됩니다. 돈을 지불한다는 건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나 재화를 사는 것이지 사람을 사는 게 아니지요. 하지만 사회가 전체적으로 스트레스에 치이다 보니 돈만 내면 그 사람을 소유라도 한 것처럼 구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정노동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합리적인 대우를 한다면 감정 노동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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