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5. 14:16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천만 감독 봉준호의 최신 대작 설국열차가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가운데 신인 감독의 첫 메이저 영화이자 먹방 없는 하정우 영화인 더 테러 라이브가 2위로 따라 붙고 있습니다. 서울의 마포대교를 폭파한 테러범이 폭파된 다리 위에 남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그 테러를 자신이 지목한 한 방송사의 앵커와 실시간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내용인데요. 아무리 영화지만 그래도 방송사가 다리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내보낼 리가 있느냐는 비판을 받았는데, 며칠만에 현실은 허구를 뛰어 넘었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도 방송국 카메라가 도착한 가운데 마포대교에서 투신했고, 실종 후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소신 있는 문제 발언으로 지지자와 함께 안티도 많았던 그의 죽음을 기사는 어떤 말로 보도했을까요?
[출처 – 네이버 프로필]
묘한 여운, 성재기의 마지막 글
남성연대 대표였던 성재기가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을 준비한 까닭은 부족한 남성연대의 자금을 후원으로 모금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남성연대의 발표에 의하면 투신은 원래 일종의 퍼포먼스였다고 합니다. 자살이 아니라 사고였다는 거죠.
동아일보는 26일 오후 3시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하기 직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를 인터뷰했던 인터넷매체 신문고의 추광규 기자를 인용하며 소식을 알렸습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안전강사와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았다고 하는군요.
보도에 따르면, 성재기 대표는 양복을 입은 채 뛰어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바지 하단을 묶는 끈을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안전에 대비했다. 성 대표는 뛰어내리는 장소와 강변까지 거리를 약 100m로 추정하면서 '전투수영'으로 헤엄쳐 나오겠다고 말했다. 또한 현장에는 수상안전강사 자격증을 가진 신 모 씨가 나가 구조를 도울 예정이었다.
성재기 취재하던 기자 “현장에서 문제 발생, 사망한 듯” (동아일보, 2013-07-26)
인터뷰 하던 기자는 더는 취재하지 못 하겠다며 현장까지 동행하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그 현장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안전강사가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투신이 발생했다고요.
서울신문에서는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투신 직전 트위터 글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는 자신이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권운동을 벌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상당수 네티즌은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를 ‘마초’로 칭하며 비난해왔다.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사망한 사실이 확인된 이후 이 글은 묘한 여운을 남기며 네티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한편 지난 25일 남성연대 운영 자금을 모으겠다며 한강 투신을 예고했던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는 26일 오후 3시 15분쯤 “정말 부끄러운 짓입니다. 죄송합니다. 평생 반성하겠습니다”라는 글과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었다.
성재기 마지막 글 “누가 틀렸다고 얘기하지 말자” 묘한 여운 (서울신문, 2013-07-25)
폭우로 인해 불어난 한강물에 휩쓸린 것으로 보이는 성재기 대표는 투신으로 실종된 지 3일만에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취재 윤리, 방송의 도덕적 자살방조죄라는 소리까지
이번 성재기 대표의 투신을 놓고 각계에서 취재 윤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으며 언론의 도덕적 자살방조죄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투신 현장에는 남성연대 회원들과 KBS의 기자들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죠.
성 대표의 투신 현장에는 남성연대 회원들과 KBS 기자들이 있었다. 그가 의도한 자살 퍼포먼스는 언론 노출을 전제로 한 것이다. 투신 인증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려고 한 남성연대 회원들과, 취재하러 나온 KBS 기자들은 그의 퍼포먼스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KBS 기자들은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언론의 취재 준칙을 지키지 않았다. 당시 한강은 오랜 장마로 수량이 많고 물살이 거세 투신한 후 헤엄쳐 나오기에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KBS 측은 투신하기 전과 뒤에 두 차례 신고를 했다고 해명했고 촬영한 영상을 방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찰과 구조대가 출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살을 막기보다 취재를 앞세운 태도는 어떤 변명도 통하기 어렵다.
[사설]자살로 이어진 퍼포먼스와 취재 윤리 (조선일보, 2013-07-29)
KBS에서는 해명문을 통해 투신 전과 후 두 번 신고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후원에 대한 관심을 원하는 그를 취재 대상으로 설정하고 취재를 강행한 점은 등을 떠밀은 거나 다름없다는 비판의 요지가 있다는 견해죠. 동시에 같은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문제 해결을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생명을 이용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평소 입장이 다른 것으로 보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성재기 대표의 투신에 대해 언론도 도덕적 자살방조죄라고 밝혀 관심을 모았습니다.
표 전 교수는 자살 방조 논란을 받고 있는 KBS 취재진과 남성연대 회원들에 대해서는 "사진만 보자면 대단히 잔혹한 모습"이라며 "그들 주장은 뛰어내릴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위험 가능성과 비교한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사진을 찍을 것이 아니라 설득하거나 투신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반드시 해야만 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표창원 "성재기 투신, 언론도 도덕적 자살방조죄" (세계일보, 2013-07-29)
그러면서 표창원 전 교수는 10대 청소년도 투신을 예고하면 진지하게 들어봐야 하는데 40대에 이미 지명도도 있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이라면 일단 진지하게 들어주고 투신을 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관심병자와 노무현보다 당당한 죽음, 죽은이를 둘러싼 말말말
죽은자는 말이 없다지만 생전에 소신있게 문제 발언을 했던 탓인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말이 많습니다. SNS에서는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트위터 글이 논란이 되었죠.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 출신 A씨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트위터에 “성재기의 죽음에는 참 뭐라 할까, 관심병자의 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며 “죽은 이에게는 명복을 빌어줘야겠지만 앞뒤 분간 못하는 무지한 인간들이 미화할까봐 걱정 된다”고 적었다. 해당 게시물이 올라오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 ‘관심병자라니 제 정신인가’ 등 성 대표를 지지하는 성향의 네티즌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성 대표와 남성연대의 평소 활동을 두고 갑론을박 논쟁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성재기는 관심병자” 女승무원, 성재기 비하? 아시아나 해명 ‘진땀’ (국민일보, 2013-08-01)
한쪽에서 죽음에 대한 무례가 있었다면 다른 한쪽도 자기쪽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대동소이했습니다. 지난 5월 대통령 방미 중 성추행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무리하게 감싸던 정미홍 대표는 이번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두고 노무현보다 10배 당당하고 깨끗한 죽음이라고 망언을 해 망자 둘을 동시에 모욕한 셈이 되었죠. 후에 성재기 대표의 빈소를 조문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발언이 실수였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한편 한겨레는 남성연대를 만들고 그 모금을 위해 투신 퍼포먼스를 벌인 끝에 사망한 성재기 대표를 일본의 할복한 극우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에 빗대며 그 죽음의 의미와 이후에 대해 기사를 냈습니다.
성 대표의 죽음은 그가 존경하는 일본 극우인사 미시마 유키오(1925~70)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25일 자신의 사병대인 ‘방패의 모임’을 이끌고 일본 자위대 옥상을 점거했다.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 회귀를 주장했고, 1000여명의 자위대 대원들은 미시마의 연설을 비웃었다. 그는 사무라이식 할복으로 마흔다섯의 삶을 마감했다.
성 대표가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쓴 편지에서도 미시마에 대한 존경이 드러난다. 2010년 4월30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이문열의 소설 <불멸> 낭독회’에서 성 대표는 이씨에게 A4 4쪽 분량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 편지에서 성 대표는 남성운동을 하는 자신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이씨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그는 제2의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자 했나 (한겨레, 2013-08-02)
그간은 극우의 하위문화 정도로만 언급이 되었지만 이번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계기로 남성연대의 잘잘못을 가리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에 “남성연대에 일부 정당한 문제의식이 있고, 이를 위해 남녀 편 갈라 싸우는 정서를 벗어야 한다”면서도 “남성 대 남성의 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밀려난 이들이 문제 근원은 보지 못하고 원인을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탓으로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2의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자 했나 (한겨레, 2013-08-02)
또한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심하긴 하지만 과거처럼 남져와 여자를 강자 대 약자로 딱 규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남성운동은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1970년 미국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성이 강해야만 한다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남성해방운동이 그것이죠. 경제적 책임을 지는 것은 남성이라고 해도 버겁고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회의 의무감은 남성들이 힘들다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의 발현이었습니다. 진중권 교수의 분석대로 남자 대 여자라는 단순구도가 아니라면 남성연대가 주장한 문제 중에는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할 문제의식도 있다는 거죠.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진영논리와 취재윤리, 남성운동에 대한 여러 시선이 기사화 되었습니다. 과연 이 사건의 파장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남성운동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까요.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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