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을 반영한 1990년대 베스트셀러 살펴보니

2013.08.01 11:02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며칠 전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 1·2권을 동시에 펴냈습니다. 1993년 제 1권 ‘남도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북한편 2권(제 4·5권)을 포함 지난 해 나온 제 7권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까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20년간 330만권이 팔린 밀러언셀러이지요. 이른바 ‘문화유산 답사’라는 새로운 문화를 일궈내며 출판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판계는 지금 이 기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와 긴장감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행어를 낳으며, 문화유산의 길잡이 노릇을 한 이 책은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 신화로 불리기까지 하는데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시작으로 베스트셀러를 넘어 밀러언셀러 열풍이 가득했던 1990년대 출판계로 함께 가보실까요?




출처-교보문고



서편제, 서태지 그리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작과 비평사)가 출간된 1993년은 대중문화에 큰 획을 그은 굵직한 사건이 많은  연도입니다. 그해 4월 이청준 원작,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개봉되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데뷔했으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출간되었습니다. ‘서편제’는 관객 113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들었고 



올 한해 흥행은 한국영화 서편제와 외화 클리프행어, 쥬라기공원이 극장가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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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좋은 작품이란 평가만 얻으면 만족’ 이라던 제작진의 소박한 기대와 달리 ‘서편제’는 대통령에서 주부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관심속에서 거센 ‘서편제신드롬’을 몰고 왔다. 지난 4월 단성사에서 개봉한 ‘서편제’는 전회매진을 계속, 8월에 ‘장군의 아들’의 기록을 깨고 한국영화사상 최다관객을 동원한데 이어 10월 30일에는 1백만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인기순위로 본 ‘93대중문화 백만관객 돌파 “서편제 신드롬”, 경향신문 1993.12.27


 

서태지와 아이들은 댄스뮤직 붐을 일으키며 음반출반 40일 만에 2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판 ‘뉴키즈 온 더 블록’으로 불리는 이 그룹은 젊은 취향의 랩성,솔뮤직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팝댄스’로 불리는 독특한 춤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한때 큰 인기를 모았던 ‘소방차’보다 한층 감각적이어서 청소년들의 모방심리를 자극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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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노래와 춤 외에도 강한 색상의 캐주얼한 복장과 도시풍의 세련된 매너, 여성취향의 감각적 이미지 등도 인기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판 뉴키즈 ‘서태지와 아이들’ 폭발적 율동 주가상승, 경향신문 1992.06.13


 

거기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역사와 여행의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문화 예술 서적과 여행서의 물꼬를 틀어놓았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여행서라기보다는 인문지리서에 가까웠지만 책에 소개된 장소를 들르는 사람들 손에는 이 책이 들려 있었고 이는 여행안내서 역할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셋 다 엄청난 히트를 쳤고 해당 분야에서 신기원을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출판계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여기에는 이 책이 미완성품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데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주제의 선택(예를 들어 제주도의 인기에 발맞춘 제주도 편 출간과 문화재에 대한 인식과 관심도의 증가에 따른 인기)으로 현재까지 출간 때마다 폭발적인 독자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20세기 최후의 밀러언셀러 『아버지』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우리나라는 비로소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진입합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물질적 풍요도 누릴 수 있게 된 것인데요. 하지만 빈부의 격차가 커지며 상대적 박탈감도 더욱 극심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게다가 풍요로운 시기는 잠시였고 불경기가 겹치면서 사회는 매우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요. 재미를 넘어서 위로를 해주는 소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 이때 입니다. 청소년들 사이에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던『좀머 씨 이야기』와 시대적 배경 속에 고개 숙인 중년 가장의 고뇌를 담아내 큰 반향을 일으킨 『아버지』(문이당)가 1996년과 97년을 나라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최악의 불경기 속에서 60여만부나 팔렸고 중년 남성들 사이에는 <아버지> 선물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일부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이 책을 주는 등 이른바 10대 뉴스로서 손색없는 파장을 몰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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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산업전반에 불어닥친 불황이 본격적으로 중견 직장인의 등을 밖으로 떠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리고 명예퇴직당한 직장인들의 애환이 사회문제화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절묘한 시의성 때문에 우리 시대의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다루고 반영한 소설이 돼버렸다.


소설 ‘아버지’ 신드롬 명퇴 등 사회 분위기 타고 인기, 한겨레 1997.01.03



『아버지』는 20세기 최후의 밀리언셀러로 불리웁니다. 최단기간에 200만 부 판매를 돌파하는 등 모두 3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하는데요. 1997년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 해이지요.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같은 구조조정은 부권 상실의 시대를 오게 했고 『아버지』는 이시기에 절묘하게 출간되어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시대 상황을 배경삼은 것이 아닌 죽음을 앞둔 중년남자의 가족애을 보여주는 통속적인 소설입니다. 


독자들은 그 소재에서 완전 ‘픽션’이 아닌 리얼을 느꼈고 이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50대 중반 가장들이 겪는 소외감과 갈등이 잘 묘사되어 사람냄새 나는 표현이 적절했다는 평을 받았는데요. 중·장년층의 절대적인 지지 뿐만 아니라 딸들의 심금을 울려 세대를 초월하는 폭넓은 독자층을 자랑했습니다. 물론 찬사만 있었던 것이 아닌 혹평도 함께 했는데요. 지나치게 이상화된 작품 속 인물들이 현실을 떠나고 있어 『아버지』가 주는 것은 ‘감동’이 아닌 ‘감상’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찬사와 혹평이 난무하긴 했지만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데 의미가 있었던 마지막 밀러언셀러 『아버지』였습니다.





출처-교보문고


1990년대 중반에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책은 바로 이문열의 『선택』(민음사)입니다. 봉건시대를 살아간 여인의 일상을 통해 여성 해방논리를 비판한 이 책은 뜨거운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선택』에서 조선 선조 때의 실존인물인 정부인 장씨를 통해 당시 여인들의 삶을 출산기피, 이혼, 성문란 등 요즘의 세태비판과 함께 이야기 하였습니다. 여성비하적인 발언들과 현재 실존 인물에 대한 발언은 문단을 넘어서 여성계로까지 확산되며 최대 논쟁거리가 되었는데요. 이문열의 작품 중 최악이라는 혹평을 듣기도한 『선택』은 시비와 논란 탓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 근래 정부인 장씨를 주인공으로  책이 발간 된 것입니다. 바로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한길사)인데요. 물론 이 책은 그녀의 조화로운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긴 하지만 나눔과 사랑을 실천했던 조선시대 여인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이야기를 읽어보며 같은 주인공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선택』과 비교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줄 듯합니다. 




‘우상파괴’본능과 가치들의 전복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는 중심 세력의 ‘우상파괴’가 벌어진 해입니다. 오체는 불만족이지만 인생은 대만족이라는 오토다케 히로타가의 『오체불만족』, 우리 사회의 우상에 대한 도발적 도전이었던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그 대표적인 책이며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촉구하는 빌게이츠의 『생각의 속도』와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사실상의 베스트 셀러는 탤런트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였는데요. 탤런트 서갑숙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사랑과 섹스에 관한 기록은 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뒤흔든 책이었습니다. 이는 ‘책’이 아니라 ‘파문’으로 불리었는데요. 검찰과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이 책을 제재하려는 움직임과 이에 아랑곳없는 폭발적인 판매상황은 텍스트는 간데없고 담론만 나부낀 상황을 보여주었죠. ‘지나친 상업주의’와 ‘용기 있는 주장’이라는 비난과 옹호가 맞서 어디에서든 논쟁이 일었습니다. 특히 성담론은 잊혀질 만하면 다시 되풀이되는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란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적 혼란으로 다양한 생각들이 난무했던 1990년대. 사회적 상황에 민감한 출판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네요. 2000년대로 넘어오며 흐름은 자기계발서와 치유의 개념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2000년대는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을지 다음 번에 이야기 나눠보기로 해요!




참고자료 

우리가 사랑한 300권의 책 이야기 베스트셀러 30년 (한기호 저 | 2011 |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죽이기 (최성일 저 | 2001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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