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면데면한 조종사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혀 준 신문

2013. 8. 6. 13:28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아버지는 외국에 자주 나가셨다. 조종사셨다. 여객기로 승객을 외국에 실어 나르는 일을 하셨다. 내겐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이 별로 없다. 집에서 자주 뵐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실 때면 몇 시간이고 주무셨다. 피곤하셨을 것이다. 오대양 육대주를 가로질러 수천 킬로미터를 비행하느라 쌓인 여독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잠에서 깨고 나서도 놀아 주지 않으셨다. 대신 몇 시간이고 앉아서 밀린 신문을 읽으셨다.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나이를 먹어서도 부자 사이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는 신문을 싫어했다. 신문과의 추억은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학교에서 반강제로 읽게 한 신문은 거부감을 키웠다. 중·고등학교 때는 신문 읽기 검사를 했다. 나는 ‘꼼수’를 부렸다. 아예 신문을 제목만 보이도록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아버지는 나를 크게 혼내셨다. 나는 지지 않고 맞섰다. 요즘 누가 신문을 보느냐고, 내 삶에 신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글이라면 무조건 읽기가 싫었던 시절이었다. 대학 입시에서 보아야 할 텍스트는 이미 지나치게 많았다. 교과서, 문제집, 수능교재 등은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나는 고집을 부렸다. 어느 순간 아예 ‘읽기’를 거부했다. 수학 능력 시험을 맞이할 때까지 고집은 계속되었다. 성적은 엉망이었다. 사실상 입시는 포기해야 했다.


자존심이 무너졌다. 논술 전형을 앞두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남들은 다 간다는 논술학원에 가는 것조차 포기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힘들어했다. 아버지께선 매일 방문 앞에 신문을 던져 놓으셨다. 나는 시험을 3일 앞두고서야 방문을 열었다. 가지런히 쌓인 신문들이 보였다. 처음으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 3일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시험 당일 받은 논술 문제는 ‘CCTV에 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고르는 것이었다. 내가 보았던 신문에서는 3일 동안이나 특집 기사를 내놓고 있었다. 나는 기억나는 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침없었다. 읽은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적었는데도 글이 되었다. 아예 신문 기사처럼 제목도 달기로 했다. 내가 처음으로 써 본 논술이었다. 나는 이듬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신문에는 아버지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아버지께서 왜 지난 신문까지 꼼꼼히 챙겨 보셨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엔 아버지가 한국에 머무르지 못했던 시간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능에만 매달려 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문은 기회를 주었다. 우리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신문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신문을 통해 내가 꿈꾸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는 신문에 감사한다. 그리고 모든 걸 바치기로 했다. 신문방송학과에 진학을 한 까닭이다. 나는 기자를 꿈꾸며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버지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올해는 정년퇴임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나는 취업을 앞두고 있다. 또다시 가족이 모두 힘들 때다. 취업 스터디, 면접 스터디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나는 신문이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버지의 지혜를 믿는다. 우리 집은 이제 내 이름으로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가 읽던 신문을 읽는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3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대학부 대상 최규진 님의 '나와 아버지의 신문'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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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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