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만해 한용운 ‘심우장’ 직접 가보니

2013. 8. 13. 11:47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인연’ 이야기가 젊은 세대에 큰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 화두가 키워드로 자리 잡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하겠지요. SNS를 통한 일시적인 관계에 상처 받지 않고 싶어 하는 청춘들이 찾은, 힐링 열풍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인연’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한 근래에 생각을 해보니 인연설에 관해 일찍이 작품을 남기신 분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 선생입니다.




▲ 「님의 침묵」 시비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님의 침묵」



 ‘한용운’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인 어린 학생들도 일찍이 익히고 있을 만큼 「님의 침묵」(1926)은 매우 대중적인 시입니다. 그렇기에 매우 다양한 시선에서 해석되는 시이기도 하지요. 대체로 여기서의 ‘임’은 종교적인 절대자, 사랑하는 여인, 혹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채순희 사무관은 “문학에서 시나 소설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 선생의 시에 있어서 ‘님’은 연구자에 따라 조국, 민족, 불타, 중생 등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덧붙여, “하지만 선생의 문학은 삶과 행적을 살펴보건대 그것이 시든 소설이든 간에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과도 같은 당대의 한계로 인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갈구하는 자신의 심중을 은유적 수법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는데요. 


 한용운 시인은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한 33인 중 한 분이셨고, 독립투사로서 치열한 삶을 살다 가신 분입니다. 그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우리는 ‘임’을 일제에 빼앗긴 조국에 가깝게 볼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그 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성북동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심우장(尋牛莊)에서 말이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죽음


 심우장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지어졌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마주하기 싫다는 한용운 선생의 뜻에 따라 북향으로 설계 되었다고 하는군요. 이곳의 앞뜰에는 선생의 고고한 정신을 상징하듯 키 큰 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 있습니다. 북향으로 지어진 탓에 추위에 무방비 상태로 지내곤 했던 선생은 결국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 만해 한용운 동상




▲ 심우장 입구. 골목길을 조금만 따라 올라가면 우측에 보입니다.




▲ 심우장 앞뜰의 나무. 매우 곧게 자란 모습입니다.



 ‘심우장’이란 이름은 선종(禪宗)의 열 가지 수행 단계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한편, 만해 선생 사후에는 본래 선생의 외동딸이 이곳에서 지냈지만 일본 대사관 건물이 심우장 건너편에 들어선 뒤 거주지를 옮겼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의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을 그대로 보존한 연구소 성격의 공간이 되었답니다. 또한, 1984년에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 심우장 외관. 오른편에 살짝 보이는 건물은 관리인이 거주하는 주택입니다.

 






▲ 심우장 내부. 만해 한용운 선생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독립투사와 문학인,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다 가신 한용운 선생의 삶과 시를 되짚어 보자면 참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후손들에게 회자되는 바도 다양하지요. 매일신문 최정암 편집부국장은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한용운과 가까운 사이임을 자처”했던 일화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에 한용운 선생은 “최남선이라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미 장례를 치러서 난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는군요. 선생의 절개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입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성북구 성북동을 중심으로 한 성북동역사문화지구 조성을 올해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며 만해 한용운 심우장도 빠질 수 없는 공간이 될 것이라 하는군요. 여러분은 심우장을 미리 아셨으니, 광복절을 맞이하여 이번 기회에 찾아보세요! 곧은 기개로 한 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친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만나러 가보시는 것, 추천합니다.^^




<찾아 가시는 길>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에서 1111번 혹은 2112번 버스 탑승 후 명수학교에서 하차.

관람 시간 : 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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