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의 읽기 습관을 바꿔 준 ‘시사학습장’

2013. 8. 8. 14:3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늘 궁금했던,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은 용감하게 어른들이 읽는 커다란 종이신문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한 장을 넘기자마자 “아뿔싸” 하며 다시 덮은 것은 비단 굵은 글씨로 압도하는 헤드라인 때문만이 아니었다. 간혹 섞여 있는 한자들과 매캐한 신문 잉크 냄새는 정말로 낯설게 느껴졌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첫 장을 열어젖혔다. 





낯선 지면과의 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1면 기사들과 그 안쪽에 실린 정치, 경제 기사들은 어렵고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뒷부분에서는 어린 나에게도 친숙한 문화, 사회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휙휙 넘겨 가며 눈에 잘 들어오는 기사들을 찾았다. 신문은 이웃집 할머니의 남모를 선행을 귓속말로 알려 주었고,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촛불시위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있지, 신문에서 봤는데 외국의 어떤 예술가가 말이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느새 친구들이 귀를 쫑긋 세울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말해 주지 않는 것들도 신문은 다 알고 있었기에 매력적이었다. 중학생 때는 집에 오면 간식을 먹으며 신문을 보는 게 저녁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세상 모든 것을 매체에 담아내는 언론인은 내 꿈이 되었다. 친구와 서로 다른 신문을 바꿔 읽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보는 시야를 조금씩 넓혀 갔다. 


재밌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던 친구 같은 신문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사회 수업이었다. 신문을 활용한 수업으로 인기를 몰고 계시던 사회 선생님의 수행평가 과제물 중 하나가 ‘시사학습장’을 쓰는 것이었다. 정기적으로 기사와 사설을 분석하여 의견과 함께 노트에 쓰는 것이었데, 지금까지 편식하던 내 읽기 습관이 서서히 변화하게 된 계기였다. 매일 사회·문화면만 오려 붙이는 것이 지겨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제 기사도 몇 개씩 읽어 보고 하던 것이 2학기 때에는 경제·정치 기사 위주로 쓰는 습관이 들었다. 처음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던 내 의견과 근거들도 수회 반복하다 보니 나름대로 내용을 갖춘 탄탄한 논설문이 되어 갔다. 기사를 읽고 의견을 쓰다가 모르는 개념이 있으면 예전 기사들을 읽어 보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갔다. 


사회 시간에는 한두 명씩 앞에 나가 5분간 자유롭게 시사에 관한 스피치를 하는 ‘5분 스피치’가 진행됐다. 발표 내용은 신문을 참고하여 구성하면 됐다. 내 주제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힐링 캠프’였는데, 학교폭력의 원인을 고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여 발표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신문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현실 문제를 고민하고 참여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발표 후에는 웹상으로 서로 피드백을 하면서 제시된 시사 현상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는 댓글 쓰기 활동도 함께 하였다. 관련 신문 기사의 스크랩은 소통의 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우리 학교는 한국경제의 생글생글 신문을 무료로 배포한다. 이전까지 읽던 신문과는 두 가지가 달랐다. 첫째는 청소년을 위한 신문이라는 것, 둘째는 경제 관련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경제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이 자주 나와 읽기가 어려웠는데 꾸준히 읽다 보니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아서 놀란다. 사실 아직은 어떤 경제 기사들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꼼꼼히 읽으며 배워 놓으면 실생활에서 경제 개념을 적용시켜 보기도 하며 뿌듯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덕분에 경제에 관한 토론을 할 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도움이 되었다.


신문은 텔레비전 뉴스에는 없는 기능이 있다. 신문은 기사를 오래 곱씹을 수 있고 행간마다 내 생각과 의견을 함께 채워 넣을 수 있다. 같은 주제로 다르게 쓰인 기사와 칼럼들을 조합하면 더욱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재미에 여러 가지 신문을 엮어 읽기를 즐긴다. 신문이 주는 것은 단순한 시사 상식 이상이다. 쳇바퀴 돌아가듯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도 신문은 한반도와 세계를 가장 쉽게 손바닥에 놓을 수 있는 수단이고, 오늘의 세계를 구석구석 비추는 거울이 된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에서 받아 보고 내 맘대로 비판해 볼 수도 있다니! 즐거운 경험이다. 훗날 언론인의 꿈을 이루게 된다면 신문과 언론매체는 내가 누비고 다니는 넓은 들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은 내게 미래를 향한 길이다. 정의로운 펜을 들고 활자 사이를 누비는 꿈을 꿔 본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3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고등부 금상 남채은 님의 '신문에 길을 묻다'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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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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