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출신 기자의 고백, ‘너의 사투리가 들려’

2013. 8. 14. 13:35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나는 사투리는 제1언어로 받아들인 ‘사투리언’이다. 한강이남 지역에서 태어났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접할 기회는 드물었다. 억양이 독특하다거나, 어미에 일관된 특징이 있다든지, 문장을 축약해 쓴다는 자각은 없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걸 표현하며 사는 동안 사투리는 벗을 수 없는 옷, 일종의 피부가 됐다. 






사투리에도 ‘서열’이 있다?


고등학생 되던 해 나는 집을 떠나 고등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 12명의 룸메이트는 모두 사투리언이었다. 소소한 차이는 있었다. 행정구역상 주소가 달랐고, 그에 따라 사투리의 구성 성분도 바뀌었다. 당연하게도 소통의 문제는 없었다. 다만 사투리의 우월함을 두고 언쟁이 벌어지긴 했다. 기준은 명확했다. 어떤 사투리가 표준어와 많이 닮았느냐, 어떤 사투리가 듣기 좋고 자연스러운가에 따라 서열을 정할 심산이었다. 17살의 논쟁은 유치했지만 치열했다. 샘플 단어로 ‘오이’가 등장했다. 어떤 그룹은 ‘오’에 강세를 뒀고, 또 다른 그룹은 ‘이’를 세게 발음했다. TV에서 봤다는 둥, 친척이 서울사람이라는 둥 별별 이유와 근거가 제시됐다. 각자의 귀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 사투리의 서열을 굳이 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떠오르지 않았다. 난데없이 시작된 입씨름은 사투리의 향연으로 이어졌고, 소득도 결론도 없이 끝났다. 이후 사투리언의 소통이나 친구사이의 우정에는 어떤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사투리언’의 표준어 도전! 


20살에 서울 땅을 밟은 나는 표준어란 옷을 입기로 결심했다. 어렵진 않았다. 1.2배속쯤 되는 말의 빠르기를 0.9배속쯤으로 조정하고, 사투리가 분명한 말의 어미를 뚝 잘라냈다. 서울말 속에 감춰뒀지만 간혹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단어들(각중에, 정구지, 빼다지 등)은 나도 모르게 내 정체를 누설했다. 무난히 상황을 수습했고 ‘사투리언’의 변신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스스로 출신을 밝히기 전에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고향에서 걸려온 전화는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내 몸에 붙은 피부보다 더 잘 맞을 순 없었다. 


조금은 부끄럽고, 민망하고, 편안한 대화가 이어지고 나면 피부에 닿는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국정원 비밀요원도 아닌 처지였지만 신분이 탄로 났다는 사실은 겸연쩍었다. 서울살이 연차가 쌓여가자 비슷한 상황에 고향에서도 생겨났다. 유창한 서울말을 하고 나면 내게 머물렀다 가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사랑이나 우정을 배신한 것도 아닌데 또 한 번 계면쩍었다. 자주 입은 옷은 편안해져 종종 ‘입었다’는 사실 마저 잊게 만든다. 나는 그렇게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이중언어 생활자가 되어갔다






사투리의 번역 불가능성


흰 종이에 까만 글자일 뿐인데 사투리에선 고향 냄새가 났다. 누구의 목소리랄 것도 없이 음성지원이 됐고, 짙은 농도의 정서가 느껴졌다. 사투리의 맛깔은 그 지역의 억양과 리듬으로 발음될 때 가장 아름답고, 적확하게 표현된다. 언어가 뜻과 정서가 담긴 그릇이라면, 사투리라는 그릇에 담긴 정서는 아무래도 번역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상황을 깔끔히 정리하는 경상도의 ‘쫌’이나, 웬만한 표현을 ‘거시기’로 퉁치는 전라도 등 뜻은 번역할 수 있지만 말 속에 녹아든 정서는 어떤 단어로도 대체 할 수 없다. 사투리는 시크하고 유니크한 매력을 담고 있지만 결코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의 뜻과 정서를 전달할 뿐. 사투리에 표준어 옷을 입혀주려 애썼지만 이제 나는 나의 피부가 옷 때문에 상하진 않을까 종종 걱정한다. 그리하여 듣는 이라고는 내 귀밖에 없을지라도 공연히 사투리를 쓰곤 한다. 입에 착착 붙는 사투리는 귀에도 쏙쏙 들어온다. “밥 뭇나? 오늘도 욕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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