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와 류현진, 같고도 또 다른 메이저리그 성공시대

2013. 9. 12. 09:2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2010년 10월 2일, 당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빅리그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팀이 3-1로 앞선 5회말에 마운드에 올랐다. 3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무실점 6탈삼진 '퍼펙트 피칭'을 기록한 그는 이날의 승리투수가 됐다. 개인 통산 124번째 승리.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갖고 있던 아시아인 메이저리그 최다승 투수 타이틀을 거머쥐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출처] 서울신문


박찬호가 빅리그 마운드에 선 건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의 퇴장 이후 2년이 넘도록 한국인 투수가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타자로는 추신수가 확실한 존재감을 뽐내 왔기에 쓸쓸한 마운드와는 더욱 대조를 이뤘다. '메이저리그 진출 1호' 박찬호의 존재감은 뒤따라 빅리그 마운드를 밟은 9명의 한국인 투수들이 모두 자취를 감출 때까지도 여전히 가장 빛났다.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을 상대로 시원스레 삼진을 빼앗던 그의 활약을 밤새가며 지켜봤던 팬들의 아쉬움은 그래서 더욱 컸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4월 8일, 박찬호의 마지막 등판 이후 무려 919일 만에 한국인 투수가 승전고를 울렸다. 박찬호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LA 다저스에서 입단 첫 해부터 당당히 선발 자리를 꿰찬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었다. 국내 무대에서 유일한 신인왕-MVP 동시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야구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될성부른 떡잎'은 미국에서도 출발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박찬호-류현진, '국민 구단' 다저스의 푸른 열풍 이끌다

 



[출처] 서울신문


박찬호와 류현진의 연결고리는 '평행이론'을 떠올리게 할 만큼 눈에 띈다. 박찬호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첫 소속팀은 모두 다저스이며, 지금까지 한국 무대에서 활약한 유일한 팀은 모두 한화 이글스다. 두 선수는 류현진이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활약한 2012시즌 운명처럼 만나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당시 빅리그 진출이 사실상 확정적이던 류현진은 박찬호로부터 그야말로 '살아 있는' 미국 무대 경험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에 진출한 류현진의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됐다. 한국 팬들에게 익숙한 다저스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데뷔 첫 해 10승 고지를 정복했다. 데뷔 4년째 시즌에야 처음으로 10승을 밟은 박찬호조차 놀랄 만한 적응력이었다. IMF 한파가 몰아치던 시절에 눈부신 호투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박찬호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허전한 마음을 완벽하게 메웠다.

 



[출처] 서울신문


류현진의 맹활약은 다저스를 또 한 번 '국민 구단'으로 만들었다. 과거 박찬호가 1990년대 후반 IMF 위기로 시름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투를 펼치면서 다저스는 국내 프로야구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심지어 박찬호의 팀 동료들마저 관심의 대상이 됐다. '박찬호 도우미'로 잘 알려진 게리 셰필드를 비롯해 션 그린, 마이크 피아자, 제프 쇼 등 여러 선수들이 한국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류현진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비롯해 야시엘 푸이그와 후안 유리베 등 류현진과 절친한 선수들은 이제 제법 친숙한 이름이 됐다. 류현진이 팀 동료들과 거침없는 장난을 주고 받는 모습은 팬들에겐 또 다른 볼거리다. 9구단 체제로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예상 밖 관중 감소로 당황한 한국 야구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단은 다저스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다.

 



류현진, 박찬호와는 또 다른 성공의 길을 개척하다

 

"류현진은 박찬호 등 다른 아시아 선수들과는 다르다." 현재 다저스를 이끄는 돈 매팅리 감독이 한 말이다. 그가 콕 찝어 이야기한 건 바로 류현진의 '활발한 성격'. 등판이 있건 없건 야구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박찬호와는 다르게 류현진은 한결 여유가 넘친다는 이야기다. "류현진은 항상 웃는 모습"이라는 매팅리 감독의 발언에는 낙천적이고 느긋한 성격을 배짱 넘치는 투구로 이어가는 류현진의 적응력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평가가 숨어 있다.

 



[출처] 서울신문 


박찬호는 어깨가 늘 무거웠다.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로서, 내가 잘 해야만 한국 야구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다는 부담과 매일을 싸웠다. 그 부담감은 박찬호가 'FA 대박'을 터뜨리고 텍사스로 둥지를 옮겼을 땐 그를 침체의 늪으로 빠뜨린 슬럼프의 주 원인이 됐다. 다가오는 등판을 전투처럼 느꼈을 박찬호에겐 지구 반대편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이 '반드시 마운드 위 맹활약으로 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반면 류현진은 기대와 부담을 오히려 즐긴다. 올 시즌 야구팬들의 눈길이 가장 많이 집중됐던 추신수와 투타 맞대결에서도 류현진은 판정승을 거두며 더욱 펄펄 날았다. 입단 직후 불거진 '담배 논란'과 불펜 피칭을 생략하는 것에 대한 의심 섞인 시선에도 그는 여전히 '마이 웨이'를 외쳤다. 자신이 늘 하던 대로, 마운드 위에서 만큼은 '칠 테면 쳐봐라'는 식의 당당한 투구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메이저리그에서 그만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출처] 서울신문


150km 중반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지닌 '파워 피처' 박찬호, 날카로운 제구력과 팔색조 변화구를 갖춘 '기교파' 류현진. 두 선수의 차이는 피칭 스타일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류현진은 박찬호가 척박한 미국 무대에서 일궈낸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색다른 강점으로 이어갈 또 다른 유형의 보물이다. 그의 장난기 넘치는 표정 속에는 그 어떤 고난과 부담도 이겨낼 수 있다는 여유와 자신감이 담겨 있다. 데뷔 첫 해부터 박찬호가 그토록 원했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향해 거침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류현진. 그의 아이같은 웃음이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미국 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계속되길 바란다. 잠시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14승에 도전하는 류현진 선수에게 힘찬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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