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과 비교해본 고전 속 수양대군

2013. 9. 24. 10:1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모처럼 긴 연휴에 길거리가 한산했던 추석 연휴에도 극장가는 사람들이 붐비며 영화 관상이 7백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영화 관상은 송강호가 관상가 내경 역을 맡아 조선왕조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계유정난(1453년)을 주요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영화 `관상`은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 사건을 다루고 있다. 몸이 병약했던 문종은 어린 왕세자를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수양대군은 1453년 단종이 명한 것이라고 속이며 좌의정 김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해 그와 그의 두 아들을 철퇴로 죽였다. 이후 수양대군(세조)은 우의정 정분, 영의정 황보인 등 중신들을 잇달아 제거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조선의 왕위에 올랐다. 당시 사건은 이미 <조선왕조 500년 : 설중매>부터 <왕과 비>, <한명회>, <인수대비>, <공주의 남자>까지 수많은 대하 사극으로 제작된 바 있으며 아직까지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영화 `관상`,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 사건이란? (매일경제, 2013-08-31)



권력과 암투, 가족이야기가 풍부하게 섞여서인지 그동안 수양대군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 단골로 등장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국가의 기초를 다진 야망가 혹은 권력에 눈이 멀어 가족을 몰살시킨 폐륜아 수양대군이 그동안 작품들 속에서 어떤 인물로 그려졌는지 살펴볼게요.




단종애사, 한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이광수의 수양과 단종


권력에 눈이 멀어 자기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는 악마 같은 수양대군과 이에 맞서 충절을 지키다 죽은 사육신 그리고 17세 꽃다운 나이에 삼촌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단종이란 선악 구도는 고전 문학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도는 자유연애론, 무정 등으로 한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춘원 이광수도 주목했습니다. 바로 그가 1928년 발표한 단종애사가 그 작품인데요. 동아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한 단종애사는 이광수의 대표작인 무정과 흙만큼이나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히트를 쳤다고 합니다. 라이벌이었던 조선일보는 홍명희의 임꺽정 연재로 맞불을 놓으며 신문 연재소설의 전성시대를 구축합니다.




출처 - YES24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발표되던 시기를 전후해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이러한 국민적 호응을 지면에 적극 끌어들였다. 정사적(正史的) 역사물이 신문의 문예란에 주요한 기사 항목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이때였으며 신문사의 창간 이념을 선전하는 모토 이상의 상업성을 인정받았다. 급기야 신문들은 문예란 이외의 지면에 역사소설란을 고정 배치해 본격적인 역사소설의 유행을 불러오게 됐다. 춘원의 ‘단종애사’는 당당히 그 첫자리를 차지했다.


[언중언]단종애사 (강원일보, 2008-03-14)



정인지, 한명회 등을 거느린 야망가 수양대군의 악행과 어린 단종을 지키는 충절어린 사육신의 처절한 운명은 극적인 선악으로 대비되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한편 단종애사에서 구현되는 충과 의라는 전통적인 대의명분은 1920년대 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주의 운동이 처해있던 어려운 상황을 절실히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독자들은 단종에 망한 조선왕조와 백성들을, 사육신에 독립운동가를, 한명회 등에 친일부역자를, 수양대군을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대입하며 비극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거지요. 이런 소설을 친일행적으로 비판받는 이광수가 써냈다니 또 하나의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광수는 이후 수양대군의 관점에서 계유정난을 그린 세조대왕이란 소설도 썼다고 합니다.




출처 - 세계일보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단종애사는 그 인기와 작품성만큼은 대단해, 해방된 이후에도 50년대와 60년대 연달아 영화화 되어 또 다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만큼 수양대군을 권력에 취해 가족과 충신들을 죽인 폐륜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기도 했습니다.




세조, 왕권강화의 기틀을 위해 오명을 무릅쓴 인간적 군주


단종과 사육신의 관점에서 악마로 비춰진 수양대군이지만 실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내용에 충실한 사극에서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군주이자 왕권 강화를 위해 오명을 무릅쓴 강한 왕, 세조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계유정난’이라는 같은 사건을 소재로 하더라도 작품에 따라 ‘계유정난’의 중심인물인 ‘세조’에 대한 인물해석이 극도로 엇갈린다는 점이다. <조선왕조 500년 : 설중매>의 ‘세조’ 남성우나 <한명회>의 ‘세조’ 서인석, <왕과 비>의 ‘세조’ 임동진이 위기의 조선을 구한 구국의 영웅처럼 그려지는 반면, KBS 퓨전 사극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를 연기한 김영철은 권력에 대한 욕구로 가득찬 야심가이자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에 비유될 정도로 강한 캐릭터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을 연기한 이정재는 앞선 대하 사극의 ‘세조’와 어떻게 다른 모습을 그려낼까?


[무비스케치] ‘관상’ 이정재 “TV에 나온 수양대군과는 다른 이미지로” (유니온프레스, 2013-08-12)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 사이에 방영했던 왕과 비에서는 형인 문종과의 약속을 두고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도 어떻게 해야할지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졌으며, 늙은 만년에는 자기 손으로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죄의식에 고통받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역사적으로 세조는 죄의식으로 인해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고도 하지요. 제목부터 세조의 책사인 한명회를 등장히켰던 사극 역시 이런 표현은 마찬가지지요. 세조의 관점에서 보면 김종서와 안평대군 등이 오히려 왕권을 어지럽히는 역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유정난으로 생겨난 작품들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은 그 자체로도 여러 작품들의 소재가 되었지만, 계유정난으로 인해 생겨나게 된 작품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로 인해 탄생한 작품들이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랄까요? 왜냐하면 집현전의 젊은 문인들 중 많은 수가 정통성을 문제삼아 단종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사육신과 생육신이 남긴 작품들도 역설적이지만 계유정난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작품들이지요.


단종을 죽이고 몰아낸 수양대군조차 그 능력에 반해 자기 편으로 어떻게든 끌어들이려했던 사육신 중 한 명, 박팽년은 이런 시조를 남겼다고 해요.



金生麗水(금생여수)라 한들 물마다 金(금)이나며

玉出崑崗(옥출곤강)이라 한들 뫼마다 玉이 날소냐

암어리 思郞(사랑)이 重(중)타 한들 님님마다 죳출야.



이는 임금을 섬기되 분별없이 여러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시조라고 해요. 단종에 대한 충절을 드러내는 시조이죠.




출처 - 서울신문


가장 유명한 사람은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일 거에요. 교과서에도 실린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 말이죠. 그는 어려서부터 빼어난 문장가였는데 21세 때 계유정난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통탄하며 책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고 해요. 숙부가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세태에 큰 실망을 느낀 거죠. 그리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사육신의 업적을 전하며 전국을 떠돌다 금오산에 들어가 7년 동안 칩거했는데 이때 쓴 것이 금오신화라고 합니다.



조선의 3대 천재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김시습은 어린 단종을 내쫓고 세조가 임금이 되자 책을 모두 불사르고 벼랑길에 올라 경주 금오산에 정착하여 단종을 향한 충절을 담아 폭력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세조를 비판하는 《금오신화》를 쓴다.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논하다 (독서신문, 3012-07-24)



그가 쓴 작품 중 취유부벽정기는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것에 대한 우화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우리나라 역사 최초의 한문소설로 일컬어지는 이 금오신화 자체가 계유정난이 없었으면 탄생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하죠. 



이밖에도 수양대군과 단종을 소재로 한 민담이나 야사에 이르면 그 수가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은 수양대군, 세조의 서거일입니다. 죽기 전에 자신이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지 수양대군은 알고 있었을까요? 수양대군과 세조, 권력에 눈이 멀어 조카를 죽인 폐륜아이자 조선 법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해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강한 왕. 관상을 보신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에 더 끌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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