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되짚어본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생생한 역사

2013. 11. 11. 13:36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우리가 사는 서울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요? 흔히 ‘서울 600년’이라는 말은, 조선이 수도를 한양으로 삼은 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서울이 2000년 됐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백제가 기원전 18년 건국할 당시 도읍을 위례성으로 삼았는데 그곳이 현재의 서울 위치라는 것이지요. 그때를 기준으로 삼으면 분명 2000년이 넘습니다.


그럼 어느 말이 더 옳은 것일까요? <오래된 서울>(동하), <남경에서 서울까지>(현실문화)라는 두 책을 통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두 책은 모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시사 연구자인 최종현 통의도시연구소장(전 한양대 교수)이 쓰거나 공저자로 참여한 책입니다. 최 교수는 그저 옛 문헌이나 사람들의 말에 따른 추측이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서울의 과거 흔적을 직접 발로 좇은 결과를 토대로 과거 서울의 모습을 되살려 냅니다.




[출처 - 교보문고]


우선 조선이 도읍으로 정한 한양과 백제가 도읍으로 정한 위례성의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서울 600년’에서 말하는 서울이란 사실 지금의 사대문 안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고, ‘서울 2000년’에서 말하는 서울이란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성과에 따르면 한강 남쪽의 풍납토성 지역이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두 지역 다 오늘날 ‘서울특별시’인 것은 분명하지만 옛날에도 같은 지역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요. 예컨대 풍납동이 서울 성동구(현재는 송파구)로 편입된 건 1963년, 그러니까 고작 50년 전입니다.


아무래도 서울의 연원을 따지자면 조선 개국 초기에 한양 도성으로 둘러싸였던 지역을 말하는 게 맞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서울의 나이가 600년에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이성계가 갑자기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지는 않았겠지요. 그곳이 완전 허허벌판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전에 이 지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서울은 어떻게 조선의 수도로 결정됐을까. 흔히 태조 이성계와 친했던 무학대사가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을 도읍으로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이에 역사학자들은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에서 불교계의 입김은 있을 수 없다며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자들이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려왕조에서도 여러 차례 남경(한양)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실제 공양왕 시절에는 잠시 천도했다가 환도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향신문 2012-10-27]“재벌이 도심 요지 사유화…근현대 서울 도시계획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서울 지역에는 남경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고려 숙종은 자신의 치세에 천재지변이 계속되자 아예 수도를 남경으로 옮길 작정을 하기도 합니다. 1104년 남경 행궁을 완성하고 그곳에 행차까지 하지요.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경의 정확한 위치, 그러니까 숙종이 행차한 자리가 어디일까를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조 숙왕(숙종) 시대에 경영했던 궁궐 옛터가 좁아 그 남쪽에 새 궁궐터를 정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경복궁을 숙종이 지은 행궁 남쪽에 지었다는 것이지요. 이를 근거로 영조 대에 그려진 <경복궁전도>를 살펴보면 고려시대 행궁을 지금 경복궁 안의 서북부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문들은 모두 동서남북 방위를 정확하게 맞춰 지었는데, 유독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만이 서쪽으로 한참 치우쳐 있습니다. 지형 탓도 있지만, 아마도 고려시대 행궁의 북문인 ‘북녕문’의 위치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지요.



책은 우리를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앞의 작은 언덕으로 데려간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300여년인 1104년에 이미 그곳에서 백관들의 축하를 받으며 서울 지역을 내려다보던 왕이 있었다. 남경(서울의 옛 지명)을 수도로 삼고 싶어 했던 고려 숙종은 경복궁 서북쪽의 한 귀퉁이에 행궁을 지었다. 이렇게 서울의 역사는 600년에서 900년으로 확장된다.


[경향신문 2013-03-23]서울 옛 모습이 사라졌다고? 수백 년 전 길이 살아있다



이제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날 서울의 연원을 사대문 안으로 한정한다면,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지요. 서울의 나이는 2000년까지는 얘기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600년이 아니라 약 900년 정도로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책은 이렇게 서울의 역사를 하나하나 더듬어 갑니다. 서울의 모습은 정말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해 왔지만 아직도 옛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예컨대 현대 서울에서 고려시대 길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길이란 수백 년을 두고 통행이 가장 편리한 곳에 자리 잡은 것이어서 시대가 바뀐다고 무조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새로 닦은 길을 지워나가고, 수많은 고지도의 길과 옛 문헌의 지명을 대조하다보면 신기하게도 그 길이 정말 보입니다.


길뿐만 아니라 영조 시대에 청계천을 준설하면서 나온 토사를 쌓는 바람에 생긴 ‘가산(假山)’은 오늘날 전태일다리 건너 높이 5m의 야트막한 둔덕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은 현재 자하문로변에 위치한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이고요. 이렇게 책을 보다보면 한 번쯤 그곳들을 걷고 싶어질 지도 모릅니다. 서울은 오래된 나이만큼이나 많은 얘기들을 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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