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수사대의 흑과 백, 그들은 아군인가 적군인가?

2013. 11. 19. 13: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주말 ‘응사’ 본방 사수 하셨나요? 갈수록 흥미를 더해가는 ‘응답하라 1994’는 나정이 남편이 누구냐를 예상해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인데요. 네티즌 수사대는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작은 단서만으로도 나정이의 남편을 추리해내며 갑론을박 중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8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연출 신원호) 7회에서 칠봉(유연석 분)의 이름이 일부 드러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응답하라1994’ 칠봉의 야구 유니폼에 프린트된 ‘김O준’이라는 글자를 보고 칠봉이 나정의 남편 ‘김재준’ 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초반에는 칠봉의 이름 가운데 글자가 받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으나 칠봉이 이름 가운데 글자는 받침 있는 한글이 아닌 가려진 글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쓰레기 형 결혼식'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사진에 따르면, 쓰레기 형의 이름은 ‘김재석’인 것으로 나타났다. 쓰레기가 ‘김재준’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칠봉이 본명, 언뜻 가려진 글자가…네티즌 수사대 "나정이 남편?" (조선일보, 2013-11-18)



한편 보일까말까 한 작은 사진이나 글자,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스쳐지나간 장면 속의 옥의 티를 잡아내기도 하죠. ‘응답하라 1994’도 네티즌 수사대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첫 번째는 극 중 농구 경기에서 나온 계기판이 1997년에서야 프로농구에 도입된 쿼터제 계기판이다. 1994년에는 농구경기가 전·후반제였다. 두 번째는 드라마 속 해태와 삼천포의 징거버거 주문 모습이다. 징거버거는 1997년에 처음 출시됐다. 염색 머리도 마찬가지다. 글쓴이는 “1994년에는 염색머리가 거의 없었다”며 “서태지가 염색머리를 유행시킨 1995년도 이후에 전국적으로 유행이 됐다”고 썼다. 주인공들이 재학 중인 연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도 1994년에는 없던 학과였다. 아울러 쓰레기가 보는 만화책 ‘슬램덩크’ 31편은 1996년도 후반에 출판됐으며 ‘드래곤볼Z 올컬러판’은 1997년도에 발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응답하라 옥에 티, 벌써 8건 ‘징거버거 생기기도 전에 먹고있네?’ (서울신문, 2013-11-16)



이처럼 인기 드라마 속 작은 옥의 티부터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테러 사건에 이르기까지 믿을 수 없이 작은 단서로 추리를 해 내거나 범인을 찾아내는 네티즌들을 일컬어 ‘네티즌 수사대’라고 부르는데요. 순기능만큼 역기능도 커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네티즌 수사대, 오늘은 네티즌 수사대의 흑과 백에 대해 조명해 봅니다.




네티즌 수사대의 밝은 면


올 초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보스턴 폭탄 테러 사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결승선 근처에서 터져 피해도 컸고 혼란 속에서 범인을 찾기도 쉽지가 않았는데요. 하지만 용의자가 닷새 만에 체포된 데에는 네티즌 수사대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출처 – 지디넷 코리아]



지난 15일 미국을 테러공포에 몰아넣었던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용의자가 닷새 만에 체포됐다. 빠른 용의자 체포엔 미국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이 한몫 했다는 평가다. 22일 외신들은 당국의 보스턴 테러 용의자 수사에 미국 네티즌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보스턴 테러 발생 후 미국 네티즌들은 트위터, 레딧, 포첸 등의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공개한 용의자 사진, 동영상, 인상착의, 단서 등을 적극적으로 퍼뜨렸다. FBI는 시민들이 보낸 동영상과 사진자료에 CCTV 촬영 영상을 활용해 2일만에 용의자 2명을 찾아냈다. 


美 네티즌 수사대 '한국보다 더하네' (지디넷 코리아, 2013-04-22)



이 같은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은 크라우드 소싱의 전형이라고 합니다.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한 결과를 내놓는 것을 말하는데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합니다.




[출처 - 뉴스1]


우리나라 네티즌 수사대도 성폭행 가해학생이 뻔뻔하게 입학사정관제로 교사 추천을 받아 성균관대에 입학한 사건을 파헤쳐서 입학 취소를 이끌어내는데 일조해 주목을 받았죠. 홍대 여대생 택시 살인 사건에서도 네티즌 수사대가 범인의 동선을 상세히 추리해냈습니다. 이처럼 네티즌 수사대는 특유의 수사력을 발휘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한 몫 합니다.  




네티즌 수사대의 어두운 면


하지만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사건을 파헤치는 만큼 잘못된 결론이 나오면 걷잡을 수 없이 어그러져 오히려 사건이 악화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최근 보스턴 폭탄 테러 사건에서도 이 점이 드러났지요.




[출처 - 국민일보]



네티즌 수사는 혼란도 컸다. 사람들이 차르나예프 형제의 신원이 발표되기 전 "용의자가 확인됐다"며 잘못된 정보를 나르면서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봤다. 특히 최근 실종된 브라운대 학생인 서닐 트리파시는 레딧과 트위터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페이스북 페이지가 악성 댓글로 덮이는 봉변을 당했다. 레딧의 일부 사용자는 트리파시의 가족에게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다"고 사과했다. 고교생 살라 에딘 바르훔(17)도 자신의 사진이 용의자로 인터넷에 공개됐고 일간지 '뉴욕 포스트'가 1면에 사진을 실었다. 그는 혐의사실이 없다는 경찰 발표 뒤에도 "주변 시선이 무서워 밖에 나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보스턴테러, 美 '네티즌수사대' 활약…논쟁도 촉발 (연합뉴스, 2013-04-22)



자발적인 헌신으로 보스턴 폭탄 테러 용의자가 빠른 시간 안에 잡힐 수 있도록 공헌하긴 했지만, 동시에 엉뚱한 사람들이 마녀사냥 당하도록 한 것도 분명 네티즌 수사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폭행 가해학생 추천 입학의 경우만 해도 성균관대 입학 학생 이외에 성폭행에 가담했던 공범 학생들도 잘못 공개돼 애꿎게 마녀사냥 당하기도 했거든요. 특히 서산 아르바이트 여대생이 성폭행 당한 후 자살했다는 사건에서는 네티즌 수사대의 무차별적인 공개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마녀사냥 당한 것은 물론 피해자 유족들까지 큰 고통을 입었습니다.


그나마 공공 영역에 속한 사건의 경우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연예인에 대한 가십이나 루머에 관해선 네티즌 수사대의 순기능은 거의 발휘되지 않고 마녀사냥이나 흥미위주의 선정적인 정보 파헤치기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경찰이냐 폭도냐, 두 얼굴의 네티즌 수사대


네티즌 수사대들이 사건에 뛰어드는 이유는 각양각색입니다. 보스턴 폭탄 테러의 예처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흥미,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먼저 알았다는 우월감, 자신이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자기정당화 등의 이유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사법처리와 2차 피해 발생을 불러오기 십상입니다.


이 때문인지 네티즌 수사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합니다.



"전 국민이 경찰 역할을 맡은 셈이죠. 주요 사건에서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유진 오도넬 뉴욕시립대 교수)"


"네티즌 수사는 정말 도움이 되거나 폭도의 행패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죠(핸슨 호세인 워싱턴대 디지털 미디어 석사과정 디렉터)“


보스턴테러, 美 '네티즌수사대' 활약…논쟁도 촉발 (연합뉴스, 2013-04-22)



오바마 대통령도 네티즌 수사대의 힘으로 보스턴 폭탄 테러 용의자를 빨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즉석보도와 트위터의 시대에는 작은 정보에 집착해 성급히 결론을 내리려는 유혹도 있다며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고 대중의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는 이 문제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하죠.


상황에 따라 아군도 적군도 될 수 있는 두 얼굴의 네티즌 수사대. 도를 넘지 않는 적극적인 협조로 긍정적인 효과만 부각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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