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유교’이야기, 더 쉽게 다가가기

2013. 11. 25. 13:31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유교란 말만 들어도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갓 쓰고 상투 튼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들이 충효니 삼강오륜이니 하면서 잔소리를 퍼붓는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리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망국의 한을 품게 된 것도 다 미개하고 뒤처진 유교사상에 젖어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 땅에 서구문물이 들어온 지난 100년간 못나고 잘못되고 추레한 것 앞에는 으레 ‘유교적’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심지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늘 소개해 드릴 책들을 읽으신다면 유교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실 지도 모릅니다. 우선 배병삼 영산대 교수가 쓴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녹색평론사)를 보시면 그간 우리가 비판해 온 유교는 오염됐거나 오해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컨대 아까도 말씀드리는 도중에 잠깐 나왔지만, 흔히 상식처럼 여겨지는 ‘충효(忠孝)’ 라든지 ‘삼강오륜’ 같은 말들은 유교에 없다는 겁니다. 고개를 갸우뚱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출처 - 교보문고]


사실 유교 경전을 통틀어 ‘충효’, 그러니까 ‘부모에 효도 = 나라에 충성’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이건 한나라 초기 제국체제를 다진 동중서가 만든 겁니다. 한나라는 겉으로는 유가를 표방했지만 속으로는 법가를 통치술로 삼았는데요. 군주 일인이 통치하는 제국체제, 군주를 정점으로 가족단위까지 피라미드형 지배복종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효’가 곧 ‘충’이라고 설파할 수밖에 없었겠죠. 유신 시절에 ‘부모에 효도, 나라에 충성’이라는 글귀가 유행한 것도, 북한 노동당의 구호가 ‘효자동이, 충성동이’였던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시죠?


삼강오륜이란 말도 비슷한 취지에서 나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삼강’은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입니다. 즉 신하는 임금을, 아들은 아버지를,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얘긴데 딱 봐도 상하위계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오륜’은 좀 어감이 다릅니다.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인데요. 예컨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밀함이 있어야 한다는, 쉽게 말하면 두 사람의 관계에 꼭 있어야 할 덕목을 일컫는 것으로 수평적인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걸 하나로 엮어 ‘삼강오륜’이라 칭하고 군신, 부자, 부부 사이를 상하관계의 위계질서로 엮어버리려고 했던 것이 역시 동중서입니다.



배 교수는 일방적인 지배·복종의 논리는 유교의 근본정신이 아니라고 본다. <순자>를 보면 공자는 “자식이 아비를 추종하기만 한다면 효도는 어디다 쓸 것이며, 임금에게 복종하기만 하는 신하의 충성은 어디다 쓸 것이냐”고 말한다. 공자는 군주와 신하, 부모와 자식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상보관계라고 봤다. 부모와 자식은 친밀함이 있어야 하고(부자유친), 군주와 신하는 의가 있어야 한다(군신유의)는 오륜의 논리는 서로의 관계를 맺어주는 열쇠를 말한 것이다. 이는 삼강과 달리 쌍방 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범이다. 오륜을 말한 맹자가 폭군을 내치는 역성혁명을 인정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신하는 불의한 군주와의 군신관계를 거부할 수 있다.


[경향신문 2012-07-14]“유교는 백성을 ‘위하여’가 아닌 백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철학”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책은 맹자의 사상이 교과서에서 배우듯 ‘위민’이 아니라 ‘여민동락’(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함)이라고도 말합니다. 위민이라는 건 ‘백성을 위한다’는 말인데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뜻이죠. 반면 ‘여민’은 사람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차이가 크죠. 유교를 제대로 알고 오늘날 계승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또 하나 소개해 드릴 책은 이승환 고려대 교수가 쓴 <횡설과 수설>(휴머니스트)입니다. 보통 조선 성리학을 떠올리면 고교 때 배운 주리론, 주기론과 퇴계 이황의 논쟁을 생각하게 되는데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조선 유학을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비하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신다면 성리학자들의 논쟁이 명확하게 정리됨과 동시에, 그 논쟁이 현대에 사는 우리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출처 - 교보문고]



<슈퍼스타K>에서 가수 평가 기준을 두고 두 심사위원의 의견이 부딪쳤다고 가정하자. 심사위원 ‘갑’은 음악성과 신체조건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악성이 음정·박자·리듬 같은 음악원리에 대한 이해라면, 신체조건은 가수 특유의 음색처럼 몸의 자질을 뜻한다. 갑은 잠재력 있는 가수를 뽑기 위해 둘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심사위원 ‘을’은 노래 자체가 주는 전체적인 느낌을 평가하면 그만이라고 주장한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두 심사위원의 관점이 곧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경향신문 2012-11-10]“퇴계·율곡 이후 400여년 논쟁”



여기서 음악성이 ‘리(理)’라면, 신체조건은 ‘기(氣)’라고 할 수 있습니다. 퇴계는 ‘리’가 도덕적 성향이라면, ‘기’는 욕구 충족 성향이라고 말합니다. 욕구(기)에만 빠져 도덕(리)에 어긋나서는 곤란하다는, 즉 ‘리’와 ‘기’를 가로로 배치해(횡설) 대비시키는 가치론적 입장이지요. 반면 율곡은 ‘기’를 존재를 구성하는 재료로, ‘리’는 존재를 구성하는 원리로 봤습니다. 한 마디로 ‘리’(원리)가 ‘기’(재료)에 올라타 있는(승반) 수직적 배치(수설)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두 사람의 논쟁은 결국 아예 프레임 자체가 달랐기에 합일에 이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해석된 조선 유학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만은 아니게 됩니다. 퇴계와 율곡의 핵심 이론은 현대 분석철학, 심리철학, 성향윤리학 등에서 사용하는 이론에 견줄 만한 프레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이론들에 견줄만한 것들을 이미 16세기에 제기한 셈이지요. 나아가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대립도 횡설과 수설로 설명 가능하다니 오늘날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인 것 같습니다. 짧게 설명하려니 괜히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었을 듯한데, 막상 책을 읽어보시면 명쾌한 논리와 적절한 비유로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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