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사람들은 왜 그에게 열광하는가

2013. 12. 2. 13:53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지난 11월 22일은 미국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가 서거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추모 열기가 벌어졌는데요. 최근 주일 미대사로 케네디의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가 임명되자 일본 열도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4년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불과 1,03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집권한 그를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웅’으로 추모하는 건 왜일까요.




[출처 - 서울신문]


미국 역사상 최연소(43세) 대통령인 케네디의 젊고 잘생긴 외모도 한몫했을 겁니다. 인종 차별 철폐와 저소득층, 여성, 노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쓴 점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1962년, 전 세계를 핵전쟁 위기로 몰아넣었던 쿠바 미사일 기지 사태를 잘 해결한 것은 그의 냉철한 판단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일찌감치 베트남에서 물러났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베트남전 확전을 원했던 군산복합체가 그의 암살에 관여했을 것이란 음모론이 제기될 정도죠. 그런데 이렇게 한 개인을 추앙하고 숭배하는 분위기 속에 뭔가 감춰진 건 없을까요? 케네디는 무결점의 이상적인 지도자였을까요? <워싱턴 룰>(오월의봄)은 그런 의문을 갖는 분들에게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만한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오바마뿐만 아니라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이 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베트남전에서 손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베트남군 지원을 늘리는 한편, 고 딘 디엠 남베트남 대통령이 ‘베트콩’과의 전쟁에 방해된다며 축출한 장본인이 바로 케네디였다. 케네디 정부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베트남전을 확전시킨 후임 린든 존슨 대통령 하에서도 계속 일한 것은 상징적이다. 오히려 케네디는 워싱턴 룰을 더 강화시켰다.


[경향신문 2013-09-06] 대통령도 넘지 못할 미국 안보정책 틀과 그것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



‘워싱턴 룰’이란 미국의 안보정책을 결정하는 강고한 틀을 일컫는 말입니다. 미국만이 세계를 이끌고 바꿔나갈 임무와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신성불가침의 믿음입니다. 케네디뿐만 아니라 아이젠하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이 룰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은 ‘최종 결정권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만들거나 조작해 놓은 상황에 적응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케네디의 경우를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전쟁보다 평화를 꿈꾸었다고 생각하지만, 취임 첫 해 미국의 국방비는 오히려 15% 늘었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조치를 봐도 의아합니다. 케네디 취임 직후 남베트남 주재 미 군사 고문관의 수는 900명에서 1만7000명으로 늘었는데, 이들은 베트남 농촌에 고엽제를 대규모 살포하는 작전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케네디의 뜻대로 고 딘 디엠이 축출되고 난 뒤에는 베트남 상황이 통제 불능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그때 그는 암살당했고, 이후 벌어진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것이죠.




[출처 - 서울신문]


그의 쿠바 위기 해결 능력을 칭찬하지만, 그 위기 자체를 그가 불러온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는 실패한 피그스만 침공(자파타 작전)을 비롯해 쿠바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몽구스 작전 등 끊임없는 비밀작전을 벌였습니다. 채 3년이 되지 않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CIA는 163건의 비밀작전을 벌였는데, 이는 전임 아이젠하위 정부 8년 동안 벌인 170건과 맞먹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쿠바가 그렇게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였습니까? 마치 부시 행정부가 사담 후세인 제거에 미친 듯한 열정을 쏟아 부었던 장면이 오버랩되진 않으십니까?


물론 케네디는 지도자로서 그의 업적 때문에 지금까지 존경받는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의 비극적 최후도 그런 상징화에 일조했을 겁니다. 하지만 더 좋은 세상은 어느 한 지도자의 힘만으로 일궈지는 건 아닐 겁니다. 시민들 개개인의 노력이 중요할 텐데요.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점점 시민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심지어는 필요 없는 것으로 돼 가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후마니타스)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쇼핑을 하십시오.”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필요 없으니 경제나 부양하면서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있으라”고 말한 셈이다. (...) 우리 시대의 정부는 더 이상 시민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정치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인들은 이제 ‘시민’이라기보다 ‘고객’이라고 불린다. 과거 시민들은 정부를 ‘소유’했으나 이제 정부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존재일 뿐이다. (...) 이제 민주주의의 과정은 고도로 ‘다운사이징’됐다. 시민들은 여론조사 과정을 통해 대표되는 ‘가상적 존재’로만 남았다.


[경향신문 2013-02-02]개인민주주의 여파 ‘정치의 고객’이 된 미국시민…한국도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욕합니다. 그러고는 선거 때만 되면 어떤 한 후보가 세상을 바꿔줄 것처럼 생각하고 큰 기대를 품었다가 다시 실망하고 욕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런 정치를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시민들의 몫이 컸을 겁니다. ‘워싱턴 룰’을 지탱하는 것이 일부 전쟁광들이 아니라 그저 지금처럼 석유를 마음껏 쓰면서 안정적 생활을 누리기 원하는 99%의 미국인인 것처럼 말이죠. 조금 맥락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케네디의 유명한 취임 연설은 이런 의미로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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