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와 '짬뽕'이 일본말? 생활 속 일본어 알아보니

2014. 4. 24. 09:0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OO야~ 쓰메키리 어디다 뒀냐?”

“아주머니 요지좀 주세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쓰메키리는 손톱깍이를 요지는 이쑤시개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집안 어르신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일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라왔습니다. 아무래도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살아왔기에 생활 속에서 쓰이던 일본어가 어색하지 않고 간혹 일본어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른 우리말 교육과 국어에 대한 의식 수준이 성장하면서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는 버리지 못하는 일본식 표현이 많이 있는데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었기에 일본식 표현인지도 인식하지 못했던 말들. 일일이 정리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일상 속에서 많이 쓰는 일본식 표현들을 모아봤습니다.




우리나라 말에서는 한자어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이 한자어는 중국식 한자어와 일본식 한자어 등이 섞여 있고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순우리말보다 이런 한자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식 한자어로 표현 된 단어가 우리말처럼 굳어지기도 하고 간혹 우리의 표준 단어가 일본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바로 ‘야채(野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야채를 찾아보면 야채는 ‘들에서 자라는 나물’, ‘채소(菜蔬)’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표기했는데요. 하지만 채소가 우리말이고 야채는 일본식 표현이라고 아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에 대해 ‘국립 국어원’에서는 “야채를 일본식 한자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있지만, 그 근거를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립 국어원에서는 현재 ‘채소(菜蔬)’와 ‘야채(野菜)’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서도 채소와 야채 모두 표준어로 등재돼 있고요. 야채가 일본어라는 의견이 나오게 된 것은 일본어의 ‘야사이(やさい)’가 야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야사이의 일본식 한자와 우리가 사용하는 야채의 한자가 같아서 오해가 생길 수 있는데요. 야채는 본디 우리 민족이 쓰는 ‘배달말’로 ‘야생소채(野生蔬菜) 혹은 야생채소(野生菜蔬)’를 줄인 말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쓰고 있는 말이죠.


산에서(야생에서) 자라던 ‘소채(蔬菜)’와 채소를 가리키던 말에서 집이나 논밭에서 가꾸던 소채와 채소로까지 의미가 확대되면서 의미의 차이가 생겨났는데요. 그러다가 일본어<や-さい(野菜)>라는 말이 들어오게 되면서 말이 생겨난 바탕과 흐름을 챙기는 <언어발생학>을 고려하지 못하다 보니 <야채>가 본디 배달말인 줄 모르고 일본어인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해석을 그릇되게 해 발생한 말을 뜻하는 오해석(誤解釋)이라고 합니다.(국립국어원)



 


이처럼 일본어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우리말인 사례도 있고 당연히 우리말인줄 알았는데 일본어인 말들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즐기던 놀이인 ‘셋셋세(쎄쎄쎄)’는 일본어 'せっせっせ(셋셋세)'에서 온 것으로 원뜻은 놀이와 게임 등의 ‘준비동작’을 뜻하는 것입니다. 원래 17세기 즈음 일본에서 어른들이 즐겨하던 "오테아와세"라는 손동작이 들어가는 놀이였는데요. 그 중 지금의 손뼉치기 놀이가 19세기 이후 발달해 노래와 함께 널리 퍼져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셋셋세"라는 말은 일본말로 "손을 마주대다"라는 뜻의 "셋스루"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면서 우리말처럼 굳어진 일본어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고, 이제는 그 구분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정착된 단어들도 많습니다.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와 일본식 외래어를 사용하는 경우, 일본식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 그리고 일본식 문법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그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위 단어에서 쓰인 ‘기스’는 우리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기스는 일본어 ‘きず(기즈)’로 ‘상처 혹은 비밀’ 등을 뜻하는 말인데요. 우리말 ‘흠, 흠집, 상처’로 충분히 순화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또한 우리가 자주 쓰는 ‘땡땡이’는 ‘点点(てんてん)’이라는 일본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도트 무늬라고 순화하기도 하지만, 이도 외래어이니 웬만하면 ‘물방울 무늬’라고 하는 것이 좋겠죠. ^^


그런데 ‘짬뽕’ 역시 일본어이고 순화 대상 단어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일본어 ‘ちゃんぽん(쨘뽄)’에서 온 말로 ‘국어순화용어집’에서는 ‘초마면’이라고 순화하여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한자어를 사용하는 경우




여기서 ‘고참’은 일본어 ‘古參(こさん、고산)’이라는 한자를 그대로 우리 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고참보다는 ‘선임자’가 바른 표현입니다. ‘절취선’ 역시 구분하기 힘든 일본 한자어인데요. ‘切取線(きりとりせん 기리토리센)’이라는 일본 한자를 그대로 우리 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요즘은 절취선 대신 ‘자르는 선’이라고 순화해 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애매하다고 할 때의 ‘애매’도 일본식 한자어인데요. 일본어 ‘曖昧(あいまい、아이마이)’에서 왔으며 역시 이를 그대로 읽어 쓰이게 됐습니다. 우리는 흔히 ‘애매모호’하다는 말을 쓰는데 애매와 모호는 말의 뜻이 중복되기에 잘못된 표현입니다. 애매하다 대신 ‘모호하다’라고 순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본식 문법을 사용하는 경우





우리가 사용하는 문법에도 일본식 표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시의 ‘왔다리 갔다리’의 ‘~다리 ~다리’는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たり(다리), ~たり(다리)’로 무언가 연속되는 행동을 나열하는 접속조사로 쓰이거나 조동사 등으로 쓰이는 문법입니다. 이는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왔다 갔다 하다’로 바꾸면 좋습니다.


‘~에게 있어서(~にとって)’라는 표현 역시 일본식 문법을 사용한 것인데요. 이런 표현들은 대게 일본 책이나 만화 등이 번역해 들어올 때 우리말에 맞춰 바뀌지 않아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많은 표현입니다. ~에게 있어서보다는 ‘~에게’로 순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두고 일본식 표현을 쓰는 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표준어처럼 쓰고 있고, 그 의미가 명확해진 단어들을 굳이 어려운 우리말로 순화하는 것도 문제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짬뽕’의 경우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초마면’인데, 음식을 주문할 때 초마면이라고 하면 혼란이 있을 수 있고 못 알아 듣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대체할 우리말이 자연스럽고 누구나 알아듣는 단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결혼, 화장, 약속, 배우’와 같이 대체할 단어가 마땅히 없으며 이미 우리 언어생활 속에서 굳어진 단어를 바꾼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말을 아끼고 보존하는 일이 무조건 우리말을 쓰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우리말 연구가들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일본어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보다는 그 단어를 쓰면서 어디서 어떻게 유래해 왔는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알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어감이 좋지 않고 일본식 표현이 강하며 일본어인줄 알면서도 굳이 쓰는 말들은 과감히 순화해 가는 건 옳은 일입니다. 이런 생활 속 일본어를 알고 배워가면서 점차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도록 교육해가는 일.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우리말을 물려주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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