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영화로, 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2014. 5. 14. 11:06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21세기는 수많은 매체들이 우리 앞에 한가득 놓여있는 풍성한 축제의 장이지요. 독자들에게 텍스트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에서부터 화면이 있는 사진•그림•만화, 그리고 화면이 동작하는 영화•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각 콘텐츠는 자신이 지닌 매력을 발산하며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영역 간의 구분이 의미 없는 크로스오버의 시대에 인간의 감정을 매만지는 감성적인 소재들은 모든 매체에서 고르게 다루고 있고, IT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전 세계의 수작들을 시공간의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마법천자문을 읽히는 게 유행이라고 하지요. 물 수(水)라는 한 글자를 알면 수력, 수질, 수해 등 물에 관련된 수많은 단어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한자를 공부하는 이유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한글을 보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매체에 무한한 소재를 제공해주는 책은 마치 백지의 캔버스와도 같습니다.




 

배우 김명민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은 잘 알려져 있듯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짧은 첫 문장은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직면한 장군의 애잔한 감상을 간결하면서도 뼈아프게 형상화합니다.
 
마지막에 자신의 죽음을 내지 말라는 조용한 절규는 책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대단히 극적인데 특별한 히트작을 내지 못했던 김명민은 이 작품을 통해 급부상했고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 배우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 원동력은 전쟁을 이끌면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고자 했지만 결국 버리지 못한, 원작에서 그려낸 성웅 이순신의 마음을 드라마에서 그대로 구현했기 때문 아닐까요? 각 문장의 길이가 한 줄을 쉬이 넘지 않을 정도로 짧은 독특한 문체 속에 담긴 깊은 서글픔을 김명민은 작가가 아닌 배우로서 연기를 통해 빼어나게 재창조해낸 셈입니다.

 

이미지 출처_ NAVER 책 , KBS 




 

<실마릴리온> - <호빗> -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이어지는 톨킨의 장대한 서사시는 소설보다도 영화를 통해 이제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내용입니다. 유럽의 옛 설화와 성경을 바탕으로 작가가 창조한 판타지 세계는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절대반지에서 빠져나오고 싶고, 빠져나와야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절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호빗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선량한 대마법사나 요정왕조차도. 그래서 반지원정대는 단순히 반지를 ‘안 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부수기 위한 머나먼 모험을 떠나게 되지요.


왕의 후예와 섭정왕의 관계 같은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나 원정 대원 간의 신뢰와 분열이 반복되는 상황 등은 현실세계의 판박이고, 특히 반지에 집착하는 골룸과 반지의 마력에 점차 지배당하는 프로도의 모습은 욕망을 마주한 우리의 연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글과 영상으로 표현된 골룸, 우리는 그와 다르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요?


영국인들에게 ‘신화를 선물’하고 싶었다는 작가가 거의 일생을 바쳐 집필한 이 작품의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판타지적 세계관을 통해 모두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단 하나의 소설이 무려 3천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자본과 수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대작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텍스트의 힘’이 느껴집니다.

 

이미지 출처_ NAVER 영화 포토 , 교보문고 




 

1920년대 혼란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위대한 개츠비>나 20세기말 일본을 휩쓴 허무주의를 토대로 집필된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는 당시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투영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시대를 막론하고 궤적을 같이 하지만, 아무래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각인되겠지요. 기술문명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진 현재는 기존에 다룬 사회적 배경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최근 세계를 강타한 영국 드라마 <셜록>은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소설이 집필된 시대와는 상당히 달라진 환경적 변화를 가미하여 원작 소설을 영상 콘텐츠로 매우 참신하게 재해석해낸 작품입니다. 소설 속 마부는 드라마에서 택시기사로 둔갑하고, 안개 속 공포의 개는 군사기지와 실험실, 화학약품 등을 통해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지요. 또한 카메라 앵글을 통해 탐정 셜록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세련된 ‘쇼’인 동시에 철저히 소설 속 텍스트를 기반으로 합니다.


‘베이커가 221B‘가 관광명소로 부상할 정도로 대대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이 드라마가 과연 원작을 어떻게 인용하고 재해석했는지 원작과 비교하면서 본다면, 제작자들이 아서 코난 도일에 얼마나 푹 빠진 마니아들인지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_ 알라딘 , BBC 




오로지 글자밖에 없는 책으로부터 이런 거대하고 놀라운 일들이 파생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글에 담겨 꿈틀거리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이는 창조 욕구가 가득한 작가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근본적 동기로, 앞으로도 책은 무한한 상상력의 근원 그 자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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