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3. 09:15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제자에게 바라는 것
코 끝으로 새벽이 다가온다. 맵싸한 잉크 냄새가 느껴지며 세상이 활짝 펼쳐진다. 그리 넓게 팔을 벌리지도 않았는데 지구 저쪽의 풍경들을 안는다.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두 팔을 있는 힘껏 벌렸다. 가슴에서 가장 멀리 두 팔이 벌어진다고 느끼는 순간 좌우의 여린 가슴팍이 뻐근해 왔고 이두박근에 이어 삼두박근까지 꿈틀거렸다. 등 뒤의 견갑골이 파르르 모든 움직임을 받아내자 가슴 가득히 바다가 밀려 왔다. 세상을 품는다는 말의 의미를 처음 깨달을 수 있었다.
새벽마다 신문을 펼쳐 읽으면 어느새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품 안에 안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 그리고 애오욕(愛惡慾)의 파도들이 밀려 오고 그 바다 너머로 인간의 목소리와 자연의 숨결을 느낀다. 신문은 내가 다시 태어났음을 알려주는 생존 증명서이며, 이 세상이 어떻든 계속되고 또한 변화되고 있다는 공식 보증서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아무렇게 휙 던지는 존재,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세상을 이해하고 또 다른 현실로 만들려는 존재. 인간과 신문은 많이도 닮았다. 신문을 보면서 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섬을 시인처럼 떠올리고 다시 그 섬과 섬, 섬들이 이어지며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노동자로서 믿는다. 실재의 세계에서 길어 올려진 신문은 다시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가상의 세계를 통해서 실재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과정과 양상, 의미를 파악하고 싶다. 인간과 신문은 함께 성숙하고 발전한다.
나는 바란다. 제자들이 새벽마다 펼쳐 든 신문을 통해 거듭 새롭게 태어나며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신문이 문 앞에 던져질 때의 작은 소리들을 기다리고 빗방울이 하나 둘씩 창문에 맺혀지는 모습을 기뻐하기 바란다. 마음에 딱 드는 기사를 찾고 어쩔 줄 모르며 손바닥 가득히 신문을 조심스럽게 찢어낼 때의 흥분을 만끽하기 바란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자연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우리가 사는 환경을 보듬고 태평양의 작은 섬들의 산호들을 사랑하기 바란다. 기사를 읽다가 울컥 눈물을 터뜨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향기를 맡고 가슴을 두근두근하기 바란다.
나는 제자들이 신문을 뒤적거리며 한가하게 여유를 즐겼으면 좋겠다. 연예면을 펼치면 어떠랴. 스포츠면을 더듬으면 어떠랴. 만화에 코를 박으면 또한 어떠랴. 그냥 신문을 보면서 삶이란 결국 이렇게 긴장에서 벗어난 몰두, 그 사소한 여유의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다른 면들을 펼쳐 문화면과 사회면, 경제면과 국제면 등으로 손길과 눈길을 펼쳤으면 더욱 좋겠다. 이 세상을 만들고 움직이는 모든 지식들을 누구보다도 빨리, 누구보다도 넓게 가졌으면 좋겠다. 지식은 여전히 힘이다.
나는 제자들에게 조언한다. 남들의 의견에 대해 귀기울이라고.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은 또 다른 ‘나’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정말 싫어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자신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남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신문을 읽으며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고 또 새겨라. 자신이 읽고 있는 신문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품고 신문을 만드는지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다른 신문사들은 어떤 주장을 하는지 하나 둘, 셋, 넷... 꼼꼼하게 비교해서 읽으라고 조언한다. 신문과 신문 그 사이에서 또 다른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만들어 보라고 간곡히 조언한다.
나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신문이 소리 높여 알리고 깨우쳐 주는 크고 작은 모든 악들에 대해 분노하라고. 정의롭지 못한 행동과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탐욕,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행위와 세력에 대해 의연히 맞서라고 외친다. 설령 거듭되는 패배를 당하더라도,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과를 받게 되더라도 스스로 당당하게 싸우라고 속삭인다. 신문은 이 세상의 모든 불의에 저항하는 매체이며 또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신문이 정의와 양심을 외면하고 억압한다면 신문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지켜야 하며 이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존중하는 고귀한 사명이라고 고함친다.
나는 제자들이 신문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매일 창조하라고 명한다.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자신의 삶은 얼마나 보람된 지 깨달으라고 명한다. 점점 더 복잡하게 바뀌는 세상이지만 가장 소중한 진리는 생명을 존중하며 인권을 옹호하고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사는 데 있음을 널리 나누라고 명한다. 신문을 읽으며 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찾아내는 밝은 눈을 기르고 다시 그들을 위해, 신문이 보여주지 못한 더 많은 이들을 위하여 발길을 아끼지 말라고 명한다. 이 세상 곳곳을 돌아보며 남들이 가지 않은 곳을 걸으며 아파하고 남들이 찾지 않은 슬픔을 마음 속 깊이 찾아내라고 명한다. 더욱 훌륭한 신문을 만들어 인간의 삶과 자연의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라고 명한다.
나는 제자들이 신문을 전부인 양, 최고요 최선인 듯 오해하지 않게 하고 싶다. 신문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삶을 위한 도구이며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않게 하고 싶다. 신문을 소중하게 여기되, 왜 소중한지, 무엇이 소중한지, 어떻게 해야 더욱 소중한지 늘 돌아보고 곱씹게 하고 싶다. 정말로 소중한 것은 신문을 만들고 신문을 읽으며 신문을 말하는 우리들의 말과 숨결, 고개 끄덕임과 갸우뚱거림이다. 진실로 더더욱 소중한 것은 신문을 읽을 때보다 신문을 접고 나서부터다.
나는 나의 영혼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많은 나에게 힘주어 속삭이고 소리 낮춰 외친다. 신문은 이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드는 언론 매체이다.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이루는 매체이자 읽기 문화를 이루는 선도적 매체이며 스스로 자기 개혁을 쉼 없이 시도해야 하는 사회의 공기이다. 그러니 나의 분신들이여. 신문은 이 세상 모든 것을 향하여 두려움 없이 사실을 찾아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신문이 지면에서 화면으로 다시 어떤 형태로 바뀌든 신문은 본연의 사명을 추구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소중한 과거의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증거하고 구현해야 한다.
나의 제자들이여, 나의 영혼들이여, 나의 분신들이여. 신문의 가치를 지켜라. 신문의 소명을 더욱 살려라.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다시 신문에 기록되며 하루를 살아라. 열심히 일하고 노력할 때 그대들의,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은 가장 소중한 신문을 이룬다. 신문에서 우리는 새롭게 이 세계를 바라보고 신문을 통해 이 세상을 바꾸며 신문을 통해 이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신문은 사회를 새롭게 만들고 우리는 신문을 끊임없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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