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5. 09:07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확인과 검증의 저널리즘-존 그리샴의 『펠리컨 브리프』 2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 기사나 보도를 읽거나 듣다보면 ‘……고 밝혔다’, ‘……고 말했다’, ‘……고 언급했다’ 등으로 끝나는 문장이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했다’, ‘언급했다’ 등의 표현은 영어로 하면 ‘said’ 정도로 쓸 수 있겠지요. 이 같은 표현이 포함된 기사나 보도가 많은 이유는 취재원, 전문가 등의 발표, 주장, 견해, 발언 등을 전하는 게 적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이 기사나 보도는 객관적이거나 공식적인 사실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같은 기사나 보도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비판 받기도 합니다. 확인과 검증 없이 보도함으로써 잘못된 사실이나 주장을 전달하거나 강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일부 기사와 보도를 자세히 보면, ‘……로 알려졌다’, ‘……로 전해졌다’ 등의 문장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알려졌다’나 ‘전해졌다’ 등의 기사나 보도 표현은 최종적인 확인이나 검증을 하진 못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갖지 못한 내용이나 사실을 전달할 때 쓰이죠. 그래서 ‘추측보도’로 비판을 받기도 하고요. 특히 확인이나 검증이 불가능한 대상이나 내용, 주제 등의 경우 이 같은 표현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저널리즘 현장에서는 많은 경우 이 같은 표현이 함께 사용되기도 합니다. 객관적인 사실이나 발표, 주장 등과 함께 적절한(?) 추측이 가미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표현이 담긴 기사나 보도의 경우 확인과 검증과정이 본질적으로 누락되면서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3월 인천시에서 발생했던 한 집배원의 사망 관련 보도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2011년 3월3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아파트 16과 17층 사이 비상계단에서 남인천우체국 소속 집배원 김모(33)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신문과 방송 등 국내 언론은 경찰 발표를 바탕으로 집배원 김씨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도했고, 집배원들의 업무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처: 『세계일보』, 2011년 3월4일자, 8면. 『한겨레신문』, 2011년 3월5일자, 9면.
하지만 CCTV분석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등 추가 수사결과 타살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고, 결국 채무채권 관계 등으로 얽힌 동료 집배원 윤모씨에 의해 피살된 사실이 밝혀집니다.
출처: 『연합뉴스』, 2011년 3월7일자.
경찰의 발표 등에 대한 언론의 확인과 검증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 전달됐고, 결과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가져온 것이죠. 물론 마감 시간의 제한, 정확한 확인과 치밀한 검증을 하기에는 부족한 인력과 비용 등 여러 제한과 한계가 있었고, 여기에 경찰 등 공신력 있는 수사기관의 발표 등도 확인과 검증을 가로막는 요소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적지 않는 보도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기사나 보도의 경우 ‘확인 결과 ……’, ‘……로 확인됐다’ 등의 문장이 담긴 것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확인 결과’나 ‘확인됐다’ 등의 표현이 들어간 기사나 보도는 대체로 취재기자나 취재팀이 실제 자료와 증언 등을 통해 확인과 검증을 거친 것임을 의미합니다. 작은 표현상의 차이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저널리즘 현장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두 명의 연방 대법관이 차례로 피살되는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가는 그리셤(John Grisham)의 소설 『펠리컨 브리프』에서는 이 같은 표현의 차이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확인결과’, ‘확인됐다’ 등의 문장이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 투입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출처: 『펠리컨 브리프』 영문판 표지.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그랜섬은 펠리컨 브리프를 처음 작성한 다비 쇼를 만나 여러 의혹 사항을 파악한 후 신문사 편집국에 브리프 내용을 보고하고 진실의 얼개를 이야기합니다. 이에 펠드먼 등 편집국 간부들은 그랜섬의 의심과 가정 등에 대해 확인과 검증을 요구하고 그 출발을 제보자인 변호사 ‘가르시아’로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이건 다이너마이트야, 그레이. 확증을 갖추지 않고는 실을 수가 없네. 젠장, 자넨 이걸 입증해야 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을 떠맡아야 하네. 이건 막강한 거야, 그레이.”
“어떻게 할 수 있겠나?”
펠드먼이 물었다.
…(중략)…
“난 이 염병할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겁이 나네.”
펠드먼은 의자를 뒤로 밀치더니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14호짜리 구두였다. 펠드먼이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가르시아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네. 만일 가르시아를 찾지 못하면, 몇 달 동안 매티스를 파헤친다 하더라도 건질 게 없을 걸세. 그리고 나중에 매티스를 파헤치지 전에는 애기를 좀 오랫동안 나누세. 난 자네를 좋아하는 편이네, 그랜섬. 이것 때문에 자네가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367~368쪽)
그랜섬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숨진, 사건과 관련된 핵심적인 제보자 ‘가르시아’ 부인과 접촉하면서 관련 자료를 입수하고 전체적인 진실을 파악합니다. ‘확인 결과’ 또는 ‘확인했다’로 나아가기 위해선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 제보자의 증언과 관련 자료가 사실인지, 확보된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드러난 진실의 세계에 대한 확인과 검증 절차도 필요한 것이죠. 그랜섬은 펠드먼 등 편집국 간부, 변호사 릿스키 등과 함께 기사 보도와 관련 회의를 한 뒤 FBI, 백악관, 로펌 화이트 앤드 블레이제비치 3군데를 확인과 검증 대상으로 정합니다. FBI, 백악관, 화이트 앤드 블레이제비치의 순서로 확인하되, 고발 및 가처분소송 등 법적 대응을 막아내기 위해 마감 시간이 거의 임박한 시간인 오후 5시쯤 전화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지요.
“몇 가지만 고치면 돼. 한 시간 가량이면 될걸세. 전화 걸 곳을 이야기해 보지.”
“세 군데면 될 것 같습니다. 백악관, FBI, 화이트 앤드 블레이제비치.”
그랜섬이 말했다.
…(중략)…
“내가 그자 이름을 써넣었네.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다루세. 4시반이나 5시까지 기다렸다가 백악관과 화이트 앤드 블레이제비치에 전화를 하게. 더 일찍 했다가는 그들이 미친 듯이 법원으로 달려갈 테니까.”
펠드먼이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이걸 막지는 못하겠지만 시도는 해볼 거요. 나 같으면 5시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를 하겠소.”
변호사 릿스키가 말했다.
“좋습니다. 3시반까지 다시 기사를 수정하지요. 그런 다음에 FBI에 전화를 해서 논평을 요구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백악관, 그런 다음에 화이트 앤드 블레이제비치.”(529~530쪽).
만약 그랜섬 기자가 다비 쇼로부터 펠리컨 브리프를 입수한 뒤 이 사실 자체만 보도했을 경우 또는 브리프 내용만 요약해 실었을 경우 정확한 총체적 진실을 알아내기도, 보도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수많은 사람과 조직, 사건 사고가 얽혀 있고 진본과 가짜, 이미지와 실제 등이 꼬여 있는 복잡 사회가 아닙니까. 제한한 사실, 내용만 보도할 경우 오히려 총체적 진실을 놓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널리즘에서 확인과 검증이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빌 코바치 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문제는 실제 저널리즘 현장에서는 확인과 검증을 가로막는 장애가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당장 취재 대상인 거악이나 제도, 시스템 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시장의 거센 경쟁이나 경영적 여건 등도 확인과 검증에 제한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언론사, 미디어, 기자들간의 특종이나 속보 경쟁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됩니다.
소설 『펠리컨 브리프』에서도 펠드먼과 크라우트해머, 킨 등 편집국 간부들은 『뉴욕 타임스』 등 경쟁지 때문에 가급적 빨리 보도하길 원하고 더 나아가 펠리컨 브리프 자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라도 기사를 처리하자고 요구합니다. 물론 그랜섬은 편집국 간부들의 압력에 맞서 확인과 검증을 우선 필요하다며 기사 출고를 거부하고요.
“그쪽에서 브리프 사본을 가지고 있고, 그걸 다시 쇼가 썼다는 것도 알고, 지금은 다비 쇼가 사라졌다는 것도 안다고 하세. 그들도 지금 당장은 그걸 입증할 수가 없네. 하지만 매티스 이름은 밝히지 않고 브리프에 대해 언급하는 건 겁내지 않을 거야. 캘러헌은 다비의 교수였고, 그가 이리로 브리프를 가져와 친구인 버히크한테 주었다는 걸 그들이 안다고 해보세. 그런데 지금 그들은 죽었고 여자는 도피중이네. 이건 아주 멋진 기사거리야. 안 그런가, 그레이?”
“큰 이야기지요.”
크라우트해머가 맞장구쳤다.
“그건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난 그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싣고 싶지 않은 겁니다. 우리가 실으면 전국 모든 신문의 주목을 끌 겁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서로 머리를 들이박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난 싣는 쪽을 주장하네. 안 그러면 『뉴욕 타임스』가 우리 뒤통수를 칠 테니까.”
크라우트해머가 말했다.
“우린 그 기사를 실을 수 없습니다.”
…(중략)…
“만일 『뉴욕 타임스』가 브리프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도 매티스에 대해 알고 있을 걸세. 그리고 그들이 매티스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걸 입증하기 위해 미친 듯이 파헤칠거야. 그들이 우리보다 앞서가면 어쩔 건가?”
펠드먼이 말했다. 크라우트해머가 불쾌하다는 듯이 내뱉었다.
“우린 제자리에 앉은 채 20년 이래 처음 보는 가장 큰 이야기를 놓치는 겁니다. 난 우리가 얻은 것을 싣자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그저 겉핥기에 불과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안됩니다. 모든 걸 다 확보할 때까지는 쓰지 않겠습니다.”(387~388쪽)
“크라우트해머는 펠드먼한테 압력을 넣고 있네. 크라우트해머 생각은, 캘러헌과 버히크가 이 브르피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브리프에는 우연히도 매티스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데, 그 매티스는 우연히도 대통령의 친구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자는 거야. 매티스한테 직접 혐의를 돌리지는 않으면서, 크라우트해머는 우리가 아주 조심하면 된다는 거지. 매티스는 브리프에 나와 있는 이름이지 우리가 들먹인 이름이 아니라는 거고, 브리프가 이런 죽음들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입증된 셈이 아니냐는 것일세.”
“브리프 뒤에 숨고 싶어하는군요.”
“바로 그렇지.”
“그러나 확인되기 전에는 모두 추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크라우트해머는 그걸 놓치고 있어요. 매티스씨가 이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잠깐 가정해 봅시다. 완전히 결백할 경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사에 그를 거명하면,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린 바보가 되는 겁니다. 향후 10년간 소송을 당할 겁니다. 난 그런 기사 안씁니다.”(405쪽)
그랜섬 기자는 편집국 간부들의 압력을 물리치고 독자적인 확인과 검증을 통해 기사를 내보내는 데 성공하지만, 우리의 저널리즘 현실에서 얼마나 그것이 가능할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확인 검증의 저널리즘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편집국 간부들의 인내와 전략적 마인드, 언론사와 독자들의 확인 검증에 대한 요구와 평가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자 스스로 확인과 검증에 대한 의지와 자세, 준비와 능력, 여건 조성 등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신문과 방송 등 저널리즘에서도 확인과 검증을 거친 기사나 보도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본지의 확인 결과...’ ‘...것으로 확인됐다’ 등의 형태를 취하며 독자 앞에 똬리를 틀고 있는 기사나 보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들 기사에는 거악이나 제도, 시스템 등의 의해 야기된 문제, 부조리, 고통 등 중요한 진실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기사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기자들의 확인과 검증을 거친 보석 같은 기사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장애와 어려움을 딛고 이런 기사를 발굴한 기자에 박수를 보내고, 그런 기사에 감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문헌>
Grisham, J.(1992). The pelican brief. New York: Rights Unlimited, Inc. 정영목 역(2004). 『펠리컨 브리프』. 서울: 시공사.
Kovach, B. & Rosenstiel. T.(2001). The Elements of Journalism. 이종욱 역(2003). 『저널리즘의 기본 요소들』. 서울: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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