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아 봤나요? 장서가들이 들려주는 두 가지 에피소드

2014. 10. 15. 11:3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pixabay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사람들에게 물으면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경제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심지어 책이라면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한 번 쯤은 경험해봤을 이야기가 있답니다. 그것도 두 가지나 있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다독다독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책 등만이라도 보이게 책을 꽂을 수 있다면 – ‘장서의 괴로움’



첫째, 바닥에 책을 쌓아두지 말자. 

둘째, 책을 상자에서 꺼내자.

셋째, 책등이 눈에 보이게하자.

_ 75쪽 중에서


처음에 책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할 때는 책장이 꽉 차 나가는 모습이 뿌듯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책 욕심도 상당해서 책의 내용 여부와 상관없이 책 모양을 하고만 있으면 집 책꽂이에다 가져다 놓았죠.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책들은 내 방을 다 꽉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복도, 그러다 거실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책장에 책을 꽂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죠. 그렇게 거실까지 가득 채우고 나서는 더 이상 책을 둘 공간이 없으니 그 다음이 문제더라고요. 책은 두 겹으로 쌓이기 시작했고, 이제 안쪽에 있는 책은 보이지도 않아 그저 짐짝으로 치부되기 시작했습니다.


<장서의 괴로움>에 등장하는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제게도 장서는 즐겁기도 하지만 괴롭기도 한 문제입니다. 읽지 않는 책을 골라내는 건, 책을 사는 것 이상으로 고민되고 어렵더라고요.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어렵게 골라내어 나름 꽤 많은 책을 나눠주고, 헌책방에 팔아버렸는데도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책을 꽂을 장소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도 고민했고 마음 아파했던 시간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꼭 언젠가는 처분했던 그 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같은 책을 두 번 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답니다. 



출처_ 교보문고 



이 책을 읽으며 장서가들의 에피소드들에서 공감도 얻고, ‘그래도 난 저 사람보다 나은 편이네’하며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실제로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집이 기울기도 했고, 어떤 이는 지진 때문에 서재가 무너져 크게 다칠 뻔 했죠. 이사 때마다 이삿짐센터의 불만을 듣기는 통과의례이고, 어딘가에 있을 책을 못 찾아 그냥 새 책을 사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꽂으며 제발 '책의 등'만이라도 보이게 꽂아 책을 찾을 때 시간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짜내기도 하지만 금세 또 쌓여 버린 책 때문에 그것도 포기해버립니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장서가들이 했던 말이 크게 와 닿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면 된다. 어쨌거나 누구 책이든 이것저것 다 사 모을 필요는 없다. 꼭 필요한 책 한 권만 갖고 있으면 그걸 숙독하고, 그래도 마음이 벅차오른다면 영역을 넓히면 된다." 책이 많은 것보다는,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장서가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그 어떤 이의 말보다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출처_ 3news



 당신에겐 최고의 작가가 있습니까? – ‘전작주의자의 꿈’


내가 평생을 따라가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지독한 열등감을 안겨 주는 작가를 찾아내 그의 모든 작품들을 꼼꼼히 마치 서지학자처럼 읽어 가면서 오기처럼, 고집처럼 그 안에서 깊어지고 한편으로 넓어지면서 내 세계를 찾아가고 싶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 길이 바로 행복한 전작주의자, 책이 길이 되고 길이 다시 삶이 되는 행복한 책상물림 전작주의자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이 될 것이다. 

_ 36쪽 중에서


전작주의자란 말이 있습니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흐름은 물론, 심지어 작가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징후적인 흐름까지 짚어 내면서 총체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통시/공시적 분석을 통해 그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가 당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찾아내고 그러한 작가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정한 시선. 쉽게 말하면 한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는 독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조희봉의 이력은 참 독특합니다. 화천과 춘천에서 중고생시절을 보내고, 서울에 올라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통신관련 업계에서 6년간 근무를 하다가 고향 화천으로 돌아와 우체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삶 그 어디에서도 책의 냄새는 맡을 수가 없는데, 그가 전작주의를 꿈꾸고 헌책을 수집하는 지독한 장서가라니! 그래서인지 책에 있는 작가소개도 두 가지 버전입니다. 하나는 방금 말한 대로 '책이 없는 표면경력'과 '책으로 쓴 이면경력'. 어린 시절에는 책을 읽기 위해 밥을 국에 말아 먹었지만, 입시에 책을 읽지 못한 게, 그리고 책과는 전혀 관련 없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모으고,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출처_ 도서 11번가  



조희봉의 전작 작가는 이윤기였습니다. 저자가 10년 넘게 헌책방을 전전하며 자신의 전작주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이윤기를 만나면서부터인데, 그가 지금까지 모은 이윤기의 책은 72종 90권입니다. 절판된 도서가 많아 대한민국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한권 한권 모으기 시작하다보니 어느새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 것입니다.(이 책이 출간 된 것이 2003년이니 아마 지금쯤은 수집한 이윤기 책이 100권은 훌쩍 넘어서지 않았을까요?) 


저자가 이윤기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이 94년. <하늘의 문>이라는 소설에 반해 그의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것이 부족해지자 번역서까지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 작가를 이루는 성분은 무엇일까 궁금해 전작주의자가 되었고 이제는 그저 좋아해서 넘어서고 싶은 큰 산과 같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전작주의자 이야기 외에도 수집가의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조희봉은 전작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수집가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 책의 절반은 전작주의론에 대해, 나머지 절반은 헌책방이야기와 장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서울 곳곳에 숨어있는 헌책방과 헌책을 잘 고르는 몇 가지 방법, 헌책방에서 지켜야할 몇 가지 법칙 등등 장서가의 낭만이 오롯이 묻어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열독가'와 '수집가'로 분류하는 그의 기준은 참 재미있습니다. 열독가는 말 그대로 책 본래의 존재가치를 읽는다는 면에 치중하는 사람. 즉 소유 여부와는 관계없이 어디에 있는 무슨 책이든 열심히 읽는 사람입니다. 반면 수집가는 열심히 책을 모으는 사람입니다. 미처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책을 모으고 보는 것에서 만족을 얻는 사람이죠. 그래서 그는 열독가를 실용주의자에, 수집가를 낭만주의자에 비유합니다. 자신의 독서 패턴과 장서 습관을 되돌아보며 자신은 열독가인지 수집가인지 생각해보면 재미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록 같은 책을 읽어온 건 아니지만 책을 떠올렸을 때 통하는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같은 전작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다보면 감동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에겐 최고의 작가는 누구인지, 앞으로 나는 누군가의 전작주의자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책입니다.  



출처_ lapozz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두 가지 이야기를 만나봤습니다. 책을 읽는다면, 책을 모으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답니다. 소개해드린 두 권의 책을 만나면서 책 읽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습관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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