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교수가 들려주는 ‘어렵지만 읽어야 하는 이유’

2014. 10. 28.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붉게 물든 단풍이 파란 하늘과 서로 다른 색으로 뽐내는 가을은 더욱 깊어집니다. 명사들의 읽기 습관을 들어보는 독讀한 습관 강연도 점점 깊이를 더하고 있는데요. 지난 10월 23일 여섯 번째 강연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답니다. 이번에는 정지영 교수의 강연이 있었는데요. 정지영 교수의 여성학 강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SBS, 교육개발원에서 선정하는 100대 명강의에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그녀는 다양한 질문과 생각을 공유하며 읽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는데요. 다독다독에서 그 현장을 나가봤습니다.



 유명하지만 읽기 어려운 책들 왜 그럴까?


처음 시작은 박준우 칼럼리스트의 팟캐스트 낭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서울이 아닌 광주 조선대학교 서석홀에서 10월의 마지막 강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박준우 칼럼리스트의 사회는 서울에서 마지막이었답니다. 그 동안 멋진 목소리로 사회를 진행해준 박준우 칼럼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정지영 교수는 강연에 앞서서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은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때, 150명 정도의 청중이 있는 강연이라고 들었는데, 300명이 되어 너무 놀라 어제 잠을 못 잘 정도로 떨렸다고 하네요. 하지만 책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어서 지금 강연을 하는 것도 기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어려웠던 책은 무엇인가요?”


그녀의 강연은 청중을 향해서 던지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답변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질문에 답을 잘 하지 않던 사람들도 하나둘 목소리를 내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앞에 던진 질문에도 ‘니체’, ‘괴테’, ‘생각의 탄생’ 등의 어려웠던 책들이 줄지어 답변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 번 더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이 책들은 왜 어려울까요?”


이 질문에는 사람들이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찬찬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영어로 된 책이라면 옆에 사전을 놓고 책을 읽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얼른 사전을 찾아보면서 읽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한글로 된 책을 읽을 때는 대부분 사전을 옆에 놓고 책을 읽지 않습니다. 한글이기 때문에 이미 자신이 안다는 전제를 깔고 책을 읽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렵다고 읽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책도 사전을 옆에 놓고 읽으면 의외로 쉽게 읽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이것은 책을 읽을 때 ‘나는 잘 모른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읽어야하는 이유죠. 





책이 어려운 이유를 한 가지 더 찾기 전에 그녀는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자들과 함께 모여서 술을 마셨던 내용인데요. 그곳에는 남자 기자도 여자 기자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질문을 하나 했다고 하네요. “왜 여성들 이야기는 기사로 잘 안 쓰세요?”라는 질문에 남자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성을 주제로 하면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어렵다는 것은 책이 어려운 이유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남자 기자들이 여성을 어렵다고 한 것은 낯설고 복잡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와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거랍니다. 책도 마찬가지에요. 책이 어려운 것은 그동안 우리가 쓰는 언어와는 다른 언어로 낯선 세상을 보여주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또한, 보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내용이라면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더 쉽게 이야기 해볼까요? 우리 몸에 질병이 생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세균 때문이에요. 몸에는 이미 세균이 많이 존재해요. 하지만 이 세균에는 적응되어 익숙한 것이죠. 그런데 공기 중에 혹은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면서 새롭고 낯선 세균이 들어오죠. 이 세균에 대해서 낯설지만 잘 받아드리면 이겨내고 병이 생기지 않습니다. 못 받아드리게 됐을 때, 병으로 나타나죠. 우리의 정신도 몸처럼 내게 낯설고 다른 것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내게 낯설고 다른 것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낯설고 복잡한 것의 예로 연애를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연애를 하다가 가장 심하게 좌절하고 가슴 아팠던 경우는 서로에게 갈등이 생겼다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헤어졌을 때라고 합니다. 그때 ‘나는 쉽고 편할 때만 함께 있는 존재인가? 어려울 때는 함께 하지 못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런 연애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는 것처럼 명료하게 이야기 할 수 없는 현실과 이어져 있다고 하네요. 가령 비가 많이 오는 날 데이트를 나갔다고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우산은 하나만 있는데 크기가 조금 작은 우산이라서 같이 쓰면 서로 양쪽 어깨가 우산 밖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거리를 걷다보니 어깨도 젖고 신발도 젖은 그런 느낌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 간단하게 정리해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죠? 복잡하면서 어렵게 자신이 겪은 느낌을 모두 이야기해야만 그 안에 현실이 담기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어떤 현실이 벌어지면 구체적이면서 복잡하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느 하나를 뺀다면, 연결이 되지 않아서 모두 연결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그런 복잡함을 갖고 있죠. 그런 현실에 살고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 쉽고 단순하길 바라는 것이 모순이라고 정지영 교수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늘 단순한 것만 선택한다면, 그 외의 다양한 것들을 모르고 사는 것이라 했답니다.





 가치 있는 어려움에 기꺼이 손을 내밀자!


“제 친구들 남편 중에는 저를 계속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이 있어요. 여성학은 ‘이러 저러한 것이 아니냐?’라고 간단하게 정의를 내리면서 거리를 두려는 것이죠. 하지만 여성학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성질의 학문이 아니에요. 그 안에도 다양한 연구가 있고 서로 차이가 있어서 논쟁을 하는 분야도 있죠. 이렇게 번번히 쉽고 간단하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에게 낯설고 알고 싶지 않은 대상이 복잡하다고 어렵다고 느낄 때에요. 


‘파시즘’을 혹시 아세요? 들었을 때 무엇이 생각나세요? 그래요, 독재, 집단주의, 획일주의 등이 떠오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사전적으로 정의한 것을 보면 ‘하나이고 싶은 욕망’을 말한다고 해요. 달리 이야기하면, 이질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는 것이죠.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무엇인가가 이질적인 것들로 무너질까 하는 두려움이에요.“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왜 낯설고 복잡한 것을 받아드리지 못하는지를 파시즘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개념을 찾기 위해서 질문을 거듭하다보면, 질문에 대한 내용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더 현실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뜻하고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일직선은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지만, 지구의 세월이 가득한 지층은 그리기 쉽지 않습니다.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굴곡이 있고 그 안에는 복잡하게 암석이 섞여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복잡한 모습이 왜 생겼는지, 왜 어려운지를 고민할 때 자신에게 새로운 변화를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은 어렵지만 우리가 읽어야 하는 존재라고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그녀에게 책은 참 다정한 친구라고 합니다. 사람처럼 관계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할 필요도 없어서 읽고 싶으면 읽고, 읽기 싫을 때는 덮어두었다가 다시 열어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 대신 책은 펼쳐 읽는다면, 언제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내어 줍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콩쥐 팥쥐와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알려주며 자신을 변화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정한 친구냐고 말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는 마지막 말로 강연을 정리했습니다.


“책이라는 가치 있는 어려움 앞에 기꺼이 손을 내미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생각을 


강연을 마치고 많은 사람이 질문에 참여했습니다. 강연을 통해서 느꼈던 내용을 묻기도 하고 그동안 생각해왔던 내용에 대한 답을 묻기도 했습니다. 정지영 교수는 적절한 유머와 이야기로 그에 대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뽑아봤는데요. 내용이 모두 알차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답니다.



슬럼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일단 특별하게 극복하는 방법이 없어요. 천성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데, ‘내가 하는 일이 옳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나보다는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의 이야기를 알려드릴게요. 대학 때 학교 후배가 하나 있었어요. 별명이 ’압정‘이었는데,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일어날 생각 없이 뚝심 있게 공부를 한다고 해서 붙여줬죠. 그 친구가 지금 버클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볼 때마다 제가 배워서 돌아와요. 슬럼프는 그 압정이란 별명의 친구처럼 우직하게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이 좋겠네요.



 평소에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평소에 책을 읽지 않아요. 논문을 읽거나 논문을 쓰기 위한 자료를 주로 보죠. 책을 읽을 때 문자를 탐닉하는 스타일이라 과거에 책을 많이 읽을 때는 시를 주로 읽었어요. 정제된 언어를 나만의 상상으로 읽을 수 있어서 마음 설렜습니다. 좋은 소설과 시를 많이 읽는 것이 평소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여성 성매매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여성 성매매를 단순하게 이야기 하면 폭력이 됩니다. 그래서 아주 민감한 문제고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니까요. 우선 여성 성매매가 자리 잡게 된 역사적인 계기와 사건 등을 통해서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논의와 이야기를 더 깊게 하며 생각으로 가다듬는 것이 좋겠네요.


모든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이유가 있어서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자주 이야기해야 하죠. 여성 성매매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교환해야 하며 이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련된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매매를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이런 사고도 있구나'하는 접근 방법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민이 세상에 반영되면 조금 더 성매매에 대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여성에 대한 인식도 있지만, 남자에 대한 인식도 있습니다. 이런 젠더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의미가 개선될 수 있을까요?


 젠더라는 개념은 사회적 상황으로 길러지는 것이죠.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기준도 일종의 틀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수행했던 역할입니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가르치고 그 역할을 이어갔던 것이죠. 그래서 남성과 여성을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여성을 정의하기 위해서 남성을 만들어낸 것처럼 일종의 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방법으로 생각하느냐,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등한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행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도 있지만,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답니다.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움직임이 있어야 평등한 방향으로 갈 수 있고 그래야 이질적인 개념이 다가와도 유동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어려운 책을 읽더라도 정해진 저만의 틀로 읽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이런 틀이 깨진다고 많이 듣고 있는데, 그럴 수 있나요? 혹시 교수님은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누구에게나 ‘나의 틀’은 언제나 깨질 수 있는 순간이 옵니다. 저는 푸코를 만나면서 그걸 느꼈는데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틀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어느 일정한 순간에 책을 통해서 지금의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하죠. 책을 읽으면 이미 자신의 틀은 깨지고 있답니다. 



 편식하는 책 읽기(주로 자기계발서)를 하게 되는데 어떻게 고치는 것이 좋을까요? 


  편식하는 책 읽기 하시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요. 제가 예전에 새우깡을 너무 먹을 때가 있었어요. 다른 과자가 아무리 있어도 새우깡 아니면 안 먹을 정도였는데요. 하루는 너무 새우깡을 많이 먹는 거 같아서 어떻게 끊어야 하지라는 고민했죠. 그러다가 한 번에 새우깡 다섯 봉지를 사서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봤습니다. 그 뒤로 지금은 새우깡을 트럭으로 갖다 줘도 먹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그때 기억이 나서 안 먹게 되더라고요.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에요. 지금은 필요하고 와 닿는 말이 있어서 계속 읽게 된다면, 계속 읽으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계발서가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되어 있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그 때가서 내려놓고 다른 책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편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글을 쓰면서 전달하는 내용을 최대한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강연을 듣고 나니 어렵게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쓸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요?


 글은 '이걸 써야 돼'라는 충동이 있어야 잘 써지죠.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정확하게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쓸 때 혹은 말을 할 때 ‘이건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것을 찾아서 작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보세요. ‘내가 맞는가?’ ‘이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맞는가?’ 등을 계속 묻고 고민해보면 글 속에 그 흔적이 담기게 되죠. 그것이 읽는 사람에게 전달돼야 합니다. 





‘어려워도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강연이었습니다. 이번 강연을 계기로 어렵다고 책장에 쌓아두었던 책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음 독讀한 습관 강연도 또 기대됐답니다. 다음 강연은 광주 조선대학교 서석홀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강연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독讀한 습관 홈페이지에서 강연 신청을 하시고 가을의 깊이만큼 색다른 깊이를 만나보러 가보시면 어떨까요?



ⓒ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