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시인이 중얼거리는 독한 습관이 생긴 이유는?

2014. 10. 21. 09:02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비행기를 그리면, 도화지 밖으로 날아가죠’


찢어진 도화지를 들고 교실 한 구석에서 벌을 서고 있는 어린 아이. 김경주 시인은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독한 습관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 인근에 살았던 유년 시절을 떠올렸는데요, 비행기로 인해 느껴지던 작은 떨림과 미동들은 아직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감정이라고 했어요. 흔들리던 어머니의 화장품, 어항 속 떨리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등 집안의 모든 물건으로부터 느껴지던 사소한 진동까지도 말이죠.


이처럼 비행기를 좋아하고 날아오르는 모습에 설레던 어린 김경주였지만, 비행기가 주제였던 교내 그림 대회에서는 구름만 가득한 하늘을 그렸다고 합니다. 비행기의 모습은 도화지 속 어디에도 그리지 않았는데요, 당시 선생님께는 감히 하지 못했던 변명을 이 자리를 빌려 하자면 “비행기는 그려봤자, 도화지 밖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비행운만을 그렸습니다”라고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배웅과 마중이 이뤄지는 공항, 그리고 비행기를 생각하면 내 앞에 펼쳐질 것 같은 새로운 세상을 그리게 되고 비행기가 전하는 떨림과 미동은 상상이 되어 나를 설레게 한다고 하였죠.

 

다섯 번째 독讀한 습관. 김경주 시인이 전하는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는 도화지의 틀을 벗어나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비행기를 배웅하는 떨림처럼, 책을 마중하는 설렘으로 출발하였습니다.


 



 ‘2달러’로 우주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책 읽기에 대한 강연을 종종 하곤 하는데,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은 유독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해요.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중 자신이 청소년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바로 마이클 콜린스의 <플라이 투 더 문>이라는 책이었죠.

 

마이클 콜린스는 세 번째로 달에 착륙한 사람입니다. 4분 늦게 달을 밟아 2등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버즈 올드린’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문데, 세 번째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죠? 하지만 김경주 시인은 세 번째였기에 가질 수 있었던 그의 생각과 인생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1등을 추구하는 세상의 냉엄한 논리 속에서 경쟁을 포기하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갖게 되는 여유로움인데요, 비록 최초의 우주를 두 눈에 담아 올수는 없었지만, 성취와 좌절이라는 프레임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기에 우주에 대한 아름다움을 더욱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영웅과 1등의 모습으로 흐트러짐 없는 일생을 살아온 ‘닐 암스트롱’과 2등이라는 좌절감으로 세상을 비판적으로만 보게 된 ‘버즈 올드린’의 인생과 다르게 말이죠. 

 

 

 


<플라이 투 더 문>에는 이런 생각과 인생관들이 담겨있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우주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아름다움에 설레고 있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마이클 콜린스는 다시 우주에 가는 꿈을 꾼다고 해요. 그리고 그 꿈을 이루게 된다면 예술가와 함께 동행해 그 아름다움을 자세히 담아올 수 있었으면 한다고 합니다.

 

김경주 시인은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이야기 말미에 우주의 소리를 들어보라는 제안을 했어요. 2달러만 지불하면 '보이저호'가 우주를 떠돌아 다니며 수집한 소리를 다운 받아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우주의 소리를 듣다 보면 알 수 없는 거리에서 오는 상상과 설렘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말을 덧붙였죠. “별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별과 나 사이의 거리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아닐까요?”

 

 


 


 “나는 커서 코끼리가 되겠다”

 

 

“책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중요해요.”


소리 내어 읽는 건 호흡을 불러내는 작업이며, 그 중에서도 시를 낭독하는 것은 공간으로 만나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김경주 시인은 강연 전,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습작노트 한 장을 찢어왔다고 해요. 그리고 그 종이 안에 쓰여진 <헛것>이라는 미발표 시 한편을 읽어 내려갔죠.


세월에 남겠다고 썼다

문장에 난이 필 때까지 머무른다

시는...

 

언어가 다 날아가고 남은 자리에서는 아니다

니가 날아가고 난 자리에 난이 피듯이

바람이 머무른다

사람이 머무른다

 

…중략


일반인은 보통 9가지의 표정을 짓는 반면, 연극배우는 한 무대에서 250여 가지의 표정을 짓는다고 해요. 이는 우리가 감정 표현에 얼마나 서툰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다양한 감정과 표현이 우리 안에 있음에도 이를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상력과 감수성을 가꾸어 주지 않아, 말라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제 아이가 커서 코끼리가 되겠다고 저에게 고백했어요. 더운 여름까지만 해도 선풍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말이죠. 얼마나 좋아하고 닮고 싶으면 코끼리가 되겠다고 할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표현과 말을 하지 않아요.”

 

아이의 표현 방법을 보며 동심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의 감수성이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해요. 그리고 사라진 감수성은 회복시켜야 하며, 매일 가꾸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모국어를 통해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감수성이 회복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모국어를 점자처럼 만지는 과정으로 모국어의 속살을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가장 예민하게 담긴 장르가 ‘시’이며, 낭독을 통해 모국어에 담긴 수많은 표현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타인에게 마음이 열려 능동적인 소통이 이뤄질 수 도 있다고 해요. 김경주 시인은 ‘시’는 의미가 아니라, 기미에 해당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시’ 속에서 모국어의 의미를 찾고 해석하려고 하면 냉소적으로 다가오지만, 작은 기미를 느끼고 즐기고자 한다면 일상 속 사물이 다르게 보이고 순간이 바뀌기 때문이죠.

 

더불어, 종이책 읽기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나무가 가장 가치 있게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요, 나무가 가진 원래의 속성과 DNA는 어떠한 형태에서도 살아있으며, 책도 마찬가지라고 하였죠. 하지만 현재 우리는 디지털 활자를 습득하며 DNA가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디지털 감수성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나무로 채워진 숲에서 감수성을 채워가는 읽기 습관을 추천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서점은 다른 이름의 숲이라고 하네요.

 

 

  

 

 흘러내리는 소리를 받아 써보세요

 

 

김경주 시인의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할 상상력'에 대한 강연에 이어, 관객과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강연의 열기만큼이나 많은 질문이 이어졌는데요, 강연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풍성한 이야기들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풀어졌습니다. 소리가 살아야 한국 문학이 산다며,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낭독과 친해지기까지 헤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며 작가의 목소리를 상상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대중가요를 배우듯이 자신있게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하였죠.


 낭독극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습니다. 어떻게 찾으면 될까요?

 

 3가지 키워드만 기억하세요. ‘소규모 낭독’, ‘포에트리슬램(자유시 낭독)’ ‘포에틱 드라마’인데요, 이 키워드를 찾아 다니다 보면 조만간 저를 만나게 될 거에요. 더불어 ‘펭귄라임클럽’을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하고 있으니 이 것을 찾아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대학생이 읽을 만한 시집을 추천해주세요.

 

 시집은 제일 처음 여는 시, 마지막 닫는 시로 되어 있어요. 건축에 비유하면 한편 한편 쓰는 것은 방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시집은 집을 한 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어떤 시집이든 여는 시에 매력을 가져보세요. 여는 시가 나를 반기면 관심을 가져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설맹’이 되어 낭독하고 중얼거리기도 해보세요. 그것이 습관이 되면 작가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시집은 군대에서 읽었던 장석남 시인의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오랜 시간 많은 곳을 여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여행 방법이 있을까요?

 

 ‘보이스 레코딩’ 기능을 활용하는 습관을 추천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남기고자 하지만, 저는 그 도시의 소리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죠. 아침부터 숙소로 돌아오기까지 휴대용 녹음기를 주머니 속에 켜두고 녹음해보세요. 낯선 도시의 종소리, 싸움소리, 초저녁에 들리는 리코더 소리 등 그 공간의 모든 소리를 말이죠. 대신 녹음만 해두고 여행 중에는 절대 듣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고 1년쯤 지났을 때 열어보세요. 그러면 내가 다시 그 곳에 서있는 경험을 하게 될 거에요. 그리고 그 소리는 나밖에 보지 못하는 공간이죠. 소리를 받아쓰는 여행은 자신의 속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10여년의 제 여행 습관을 담은 <트레블 보이스레코딩>이라는 책을 내년쯤 발간할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작가님의 시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 몇몇 있는데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하루에 하나 이상의 단어에 설레지 않는다면 반성을 하곤 해요. 그만큼 우리의 모국어는 아름답고 다양한 표현과 설렘을 담고 있지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최근에는 아이들의 단어에 많이 애착이 가요. 동시를 써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증기’, ‘입김’ 같은 사라지는 흔적들에 대한 단어를 좋아합니다.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구전되어 전해온 책이라고 하죠. 하지만 문서로 전해져 오지 않았음에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똑같다고 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그 이유가 모든 이야기를 말로서 표현하고 감정을 담아 전달해 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는데요, 이렇게 많은 내용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전달해왔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현재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약 150배 정도 좋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또 얼마나 풍성한 상상력을 품고 있나요? 우리가 살면서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상상력과 설렘들을 소리 내어 책 읽는 습관으로 가꾸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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