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은 스페인어, 오후는 영어? 미국 초등학교 수업에서 보는 언어교육의 미래

2014. 11. 18. 13: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남부의 공립초등학교 Sunnyslope Elementary의 6학년 교실, 문학수업이 한창인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읽는 책은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입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미국의 공립초등학교에서 스페인어가 들린다? 미국의 언어교육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었는데요.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두 언어를 한 번에 습득하는 DI 프로그램

 


정답은 바로 DI에 있었습니다. DI란, Dual Immersion program 의 약자로 두 개의 언어를 한 번에 습득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마디로 바이링구얼(Bilingual, 2개 국어가능자)을 초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이죠. 하지만 DI는 바이링구얼(Bilingual)수업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이링구얼(Bilingual)수업이 자신의 모국어에 비중을 두고 제 2언어를 익히는 것에 반해, DI는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하나의 모국어로 비중을 두어 언어를 습득하게 합니다. 따라서 DI program에서는 과목에 상관없이 오전수업은 스페인어로, 오후수업은 영어로 진행을 하는데요, 물론 학생들도 각 수업에 맞는 언어를 써야 합니다. 





캘리포니아(California)주에서 DI 수업이 생겨난 배경은 단순히 언어교육의 측면만은 아니에요. 이민자의 수가 많은 캘리포니아의 사회적 배경에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California)는 비원어민 초등학생이 150만명 정도로 전체 취학연령의 4분의 1에 해당하죠. 캘리포니아(California)이민자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라티노계 사람들은 중남미 국가에서 이민을 오고, 이들은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 역시, 가정에서는 스페인어를 쓰기 때문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학교에서 같이 교육함으로서 학습효과를 증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DI program은 이민자의 자녀로써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은 물론 부모의 뜻으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미국 태생의 학생도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DI program처럼 스페인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캘리포니아(California)주에서는 스페인어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일본, 한국어 등을 DI program 언어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어가 있다는 것이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하네요.





 모국어에 대한 이해가 먼저!

 


DI program의 장점은 단순히 바이링구얼(Bilingual)을 양산하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를 학교에서 사용하는 것은 긍정적인 모습인데요, 이 같은 모습은 이민자 자녀에 대한 차별을 가져올 수 있는 낙인효과(Stigma Effect)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의 자녀는 영어만 사용하는 학교에서 언어로 인한 차별을 경험할 수도 있어요. 이런 언어 차별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정서적 영향뿐 아니라 언어 능력향상의 저하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DI program에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역시 학교의 공식 언어가 되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차별 없이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미국에 DI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1998년 발효된 영어 교육 이수 필수 법령에 의해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사용을 제한해 왔습니다. 6학년 DI 교실의 담임선생님 마르타(Martha) 또한 그때의 시절을 회상하면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마르타(Martha) 선생님 역시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 이지만, 학창시절에는 영어만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제지 당하거나 영어를 쓰도록 강요했고, 심지어 벌을 내리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한 교실에서 영어와 스페인어가 함께 공존하고 있지만, 마르타(Martha)선생님은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이해를 강조합니다. 아무리 다른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더라도 모국어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의 언어를 잃는 것이라고 마르타(Martha) 선생님은 말합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언어가 다르죠. 멕시코 부모와 함께 생활해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영어가 익숙합니다. 혹은 이민 온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여전히 스페인어가 익숙하죠. 아무리 DI program으로 두 가지 언어를 습득하려 한다 해도 자신의 언어(First Language)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First Language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아이들은 모국어에 대한 능력을 기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언어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언어 철학은 교실의 수업시간에서도 엿볼 수 있었어요.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된 ‘율리아나’는 수업시간에 하는 수학을 영어로 따라가지 않고, 교실 한 켠에서 따로 스페인어로 수업을 했는데요, 영어공부가 더 시급한 ‘율리아나’지만 선생님은 무조건 영어수업을 듣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언어로 수업을 이해하고 터득한 다음 그것을 영어로 다시 듣게 하죠. 이렇게 자신의 언어를 탄탄히 쌓은 아이들은 다른 언어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DI 교실의 수업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의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제 영어는 외국어라고 하기엔 우리의 삶에 매우 가까이 와있습니다. 대학교를 들어 갈 때도, 일자리를 구할 때도 영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죠. 당연히 영어교육의 필요성도 높아지게 되었고, 한 편에서는 영어를 아예 공용어로 지정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한국어의 완벽한 습득 후에 영어를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의 DI program이 지향하는 바처럼 자신의 언어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언어에 대한 교육이 균형을 이룬다면 우리도 어쩌면 영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들리는 학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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