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10. 14: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수요의 증가는 책을 유통하는 새로운 형태로서 세책가(貰冊家)를 출현시켰습니다. 세책가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빌려 주거나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인구가 많던 서울을 중심으로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번성했다고 전해집니다. 책 대여점이자 서점인 셈입니다. ‘세책본(貰冊本)’이라 하면 세책가가 직접 붓으로 써서 만든 책인 ‘한글 필사본 책’을 뜻합니다. 한글만 깨우쳤다면 누구라도 돈을 주고 빌려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세책본 책들입니다. 세책본 가운데에는 수십 책 분량에 이르는 장편 소설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이 붓으로 직접 써서 생산하는 것이므로, 방각본에 비하여 제작비 부담이 적었을 것입니다. 현재까지 60여 종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는데 기록 목록으로 남아 있는 것들까지 합하여 대략 120종 이상의 소설과 책이 세책가를 통해 유통되어 읽혔을 것입니다.
이 책들은 대부분은 민간 필사본들 중 가장 인기가 높던 작품들입니다. 경전, 소설, 의학, 역사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사대부 지식인에서부터 궁녀, 민중들에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필사하는 현상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래 자료와 같이 세책본 맨 뒷장의 기록과 낙서들은 책을 둘러싼 조선시대 사람들의 활동과 사회 상황을 보여줍니다.
“부디 첩을 다섯씩만 두라.” “첩을 두지 않는 사람은 아주 졸장부라.”_『금송아지전』
“이 책을 두 권 다 묶자니 책 장수가 너무 많사옵고, 보는 이도 지루하고 또한 책이 쉬 상할까 봐 두 권을 분권하여 상하로 맸으니 차례로 보시라.”_『숙향전』
“우리 딸이 사정하여 싫은 것을 억지로 막필로 베낀다.”_『옥난기봉』
“이 아래 책은 없어서 등서(謄書)를 못하니 말을 계속 이어서 보려면 이 책을 광문(廣聞)하여 아래 내용을 채우라.”_『뉵긔녹』
“이 책을 등서하긴 하였으나 상권을 자세히 보지 못하여 의미가 닿지 않는 말을 그대로 베낀 데가 많으니 누구든 보시고서 오서(誤書) 난 데가 있으면 고쳐 주기를 바란다.”_『계상국전』
“이 책은 마구 돌리지 말게 하여라. 책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책을 펴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돌돌 말아 쥐고 손톱으로 박박 긁으며 손에 땀이 종이에 젖으니 어찌 아니 상하겠는가. 이 책 임자는 우리집 현부(賢婦)로다. 자자손손 전하여라.”_『쌍선기』
출처_세계일보
세책본의 영향력
세책가들은 향목동, 누동, 약현, 묘동, 청파, 청풍백운동, 금호, 동호 등에 서른 곳 정도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대규모 형태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개인 집 사랑방에서 책을 빌려 주는 형태의 영세한 세책가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책가의 주인들은 몰락한 양반들이었을 것입니다. 세책 영업은 도회지에서는 여름철에, 지방에서는 농한기인 겨울철에 잘 되었을 것입니다.
여성들은 세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물건을 전당품으로 삼아 책을 빌리거나 비녀나 팔찌 등의 장신구를 팔기도 하였으며 빚을 내어 빌려보기도 하였습니다. 몇몇 세책 장부에 적혀 있는 전당품들은 가지각색입니다. 반지, 대접, 주발, 요강, 귀이개, 귀고리, 타구, 벼루, 우산, 옷가지, 족두리, 접시, 화로, 은장도, 이발 기구, 주걱, 시계, 담요, 약탕기, 탕건, 은니, 수저, 비녀 등 무엇이든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책본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빌려보는 책들이 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개작은 크게 두 가지 방법에 의해 시도되었다고 합니다.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유지하면서 내용을 확장하는 방법이 한 가지였습니다. 또하나의 방법은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여 분량을 늘리면서 내용에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작에 따라서 원래 텍스트의 분량이 두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별개의 작품으로까지 변하는 경우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집단적 창작의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_아시아경제
세책본의 형태와 궁중본의 등장
세책본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표지를 삼베 같은 것으로 싸고 위에서 둘째 장책 사이에 끈이 달려 있었습니다. 책의 손상을 막기 위해 책장마다 들기름을 바르고 왼쪽 하단부에 침자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몇 글자 비어 있습니다. 또한 한 작품이 여러 권으로 되어 있어 각 권의 끝부분 내용은 다음 권의 서두 부분에도 일부 중복시켜 놓았습니다.
세책본 책들 가운데에는 ‘궁중본(宮中本)’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일본 동양문고가 소장하고 있는 『열국지』입니다. 궁중본이 사가(私家)로 유출되었다가 다시 세책가에 유통된 사례입니다. 궁중본은 조선 왕실에서 생산, 유통된 소설책으로, 궁중에서 읽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책입니다. 『한중록』, 『인현왕후전』, 『계축일기』 등과 같이 왕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술한 궁중 실기류도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궁중본 소설의 특징들 입니다. 우선, 책의 외형이 고급스럽고 권위가 있어 보입니다. 표지 또한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책 크기도 큼지막합니다. 두껍고 질 좋은 종이에 정자체, 흘림체, 반흘림체 등 정갈한 궁체로 필사되어 있습니다.
상궁이나 궁녀, 사자관(寫字官) 등 한글 궁체에 능한 전문 필사자가 정성껏 베껴 썼을 것입니다. 궁중본은 종이를 여유 있게 사용한 경향이 뚜렷하여 종이 매 면의 상하좌우 여백이 많고 줄 간격도 널찍하며 글자 크기도 큼지막한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매 책 앞뒤 표지 외에도 빈 종이 한 장을 속지로 끼워 책 내용을 이중으로 보호 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작품 길이가 방대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10책 이상의 장편 소설이 주류를 차지하며, 수십 책 이상 100책에 이르기도 합니다. 또한 서사가 끝도 없이 전개되는 2부작 3부작의 연작 소설도 많습니다.
밀양 아랑전설 필사본, 출처_경남일보
책을 읽어주는 이야기꾼 전기수의 활약
한글 소설이 유행해도 글을 모르는 민중들은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 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람들을 전기수(傳奇叟), 강담사(講談師), 강독사(講讀師), 강창사(講唱師)로 구분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소설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소설이 유행하였습니다. 소설의 유행함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직업적으로 읽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여장을 하고 부잣집을 방문하는 인기있는 전기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았다. 언문 소설을 잘 낭송했는데, 숙향전, 소대성전, 심청전, 설인귀전 같은 것들 이었습니다. (…) 매달 초하루에는 제일(第一)교 아래, 초이틀에는 제이(第二)교 아래, 그리고 초사흘에는 배오개에, 초나흘에는 교동(校洞) 입구에, 초닷새에는 대사동 입구에, 초엿새에는 종각(鐘閣) 앞에 앉아서 낭송했다. 이렇게 올라갔다가 다음 초이레부터는 도로 내려온다. (…) 워낙 재미있게 읽는 까닭에 구경하는 청중들이 빙 둘러싸고 있다. 그는 읽다가 아주 긴박해서 가장 들을 만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문득 읽기를 딱 멈춘다. 그러면 청중들은 하회(下回)가 궁금해서 다투어 돈을 던진다.(조수삼, 『추재집』)
조선시대에 콘텐츠 판매 모델이 출현했던 셈입니다. 당연히 소설 출판이 증대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민중들이 좋아하는 소재들 중의 하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그 시절 민중들에게 전기수의 낭독이 얼마나 인기였는지는 전기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조수삼(1762~1847)의 『추재집』과 『정조실록』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종로거리 담뱃가게에서 소설을 듣다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 이르러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연초(담배)를 썰던 칼을 들고 앞으로 달려들어 책 읽는 사람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게 하였다.(『정조실록』)
그때 전기수가 낭독한 소설은 임경업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임장군전』이었다고 합니다. 심노숭의 『효전산고』에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담뱃가게나 밥집에서 낭독하는 언문 소설로 예전에 어떤 이가 이야기를 듣다가 김자점이 임경업 장군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는 데 이르러 분기가 솟구쳐 미친 듯이 담배 써는 큰 칼을 잡고 낭독자를 베면서, “네가 자점이더냐!”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빌려서 베끼고, 돌려 읽고, 물려주고, 낭독하고.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극성스럽게 책을 좋아하고 아끼며 읽어주고 낭독하며 공부하는 모습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대부 지식인들은 스스로 공부하여 가족과 제자를 교육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학문과 생활을 기록하거나 저술하여 문집을 출판하고 또는 소설을 창작하여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없던 민중들도 전기수의 낭독을 울고 웃고 분노하면서 책을 콘텐츠로서 즐겨던 것입니다. 함께 읽으며 공부하고 함께 유난스럽게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기 위해 빌려서 베끼고, 소중하게 장정하고, 돌려 읽고, 물려주고, 낭독하면서.
ⓒ 다독다독
글 : 공병훈 박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 그리고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 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그리고 창작과 생산 커뮤니티이다.
참고 자료
김택룡,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1612-02-19~1612-02-22. 「중국 가시는 길에 중국책 좀 사다주십시오!-중국가는 사신에게 부탁한 책이 수년을 지나 전달되다」
서찬규, 『임재일기(臨齋日記)』, 1845-03-26~1859-01-01. 「닭이 울 때까지 베껴쓰고, 추위와 더위에도 베껴쓴다. - 조선 선비들의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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