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 마주하는 체험, 마크 로스코展

2015. 4. 20.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출처_한국일보


그림 속에 녹아있는 화가들의 삶은 작품 감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얻은 후유증으로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혼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주체인 자화상을 많이 그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드바르트 뭉크는 어린 시절 겪은 연이은 가족의 죽음으로 공포가 작품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대체로 화가가 살아오면서 받은 영향이나 주체가 그림에 투영되곤 하는데 반대로 화가의 생보다는 감상하는 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림의 한계를 넘어서기


6월 28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크 로스코 전은 일반적으로 작품을 보러 가는 게 아닌 회화와 직접 대면하고 관람자 자신과 마주하는 만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현대의 추상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마크 로스코는 캔버스를 가득 채운 단순한 색채로 사물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그가 처음부터 완전한 추상을 추구한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로스코는 유럽에서 나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법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습니다. 이름도 마르쿠스 로트코비치에서 마크 로스코로 바꾸었습니다. 당시의 불안감 때문인지 로스코의 초기 대표작은 우울하고 차가운 기운이 도는 작품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인 “지하철”은 1900년대 초 뉴욕의 쓸쓸한 풍경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이후 로스코는 적막한 도시의 풍경이나 정물화, 실내화를 캔버스에 남기면서 사물이나 인물의 형태를 고의적으로 변형하거나 뒤틀리게 표현해 비극성을 강조했습니다.


출처_국민일보


자신의 작품이 관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적 같은 감동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로스코는 과감히 사물의 형태를 훼손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직사각형의 색면에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한 느낌을 주는 ‘멀티폼’이란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색과 면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감정과 생각들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때부터 로스코의 상징이 된 대형 유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사회


이건 사설이지만 초기에 작은 캔버스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냈던 로스코가 대형 컨버스로 옮겨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유명세도 얻고 재정적으로도 풍족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몰랐던 그림의 크기가 직접 가서 보니 사람키의 두 배정도 되는 크기였습니다. 그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서 단 몇 개의 색으로 인간의 절대적 내면을 표현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는 생을 마감하기 12년 전인 1958년, 3만 5천 달러란 거액을 받고 벽화를 그려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돌연 40여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계약을 포기합니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생산되거나 교환되고 소비되는 자본을 거부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부터 그의 삶은 소외받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출처_아시아경제


나 자신과 마주하기


자본을 거부한 로스코는 명상의 공간인 로스코 채플을 만들고 자신의 벽화를 세웁니다. 자신의 그림을 마주한 사람들이 몰입하고 자신의 근원적 감정을 만나 특별한 치유력을 얻길 바랐습니다. 실제 로스코 채플 안의 다크 페인팅 7점을 가져다 놓은 전시장에서는 그림 앞에 마주앉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켜켜이 덧칠한 색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단순한 그림인 것 같지만 내면의 슬픔과 마주할 수 있는 체험이었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눈물을 훔치는 여자분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로스코의 그림이 가진 특별한 치유력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가 봅니다. 


출처_아시아경제


다르게 생각하기, 단순함, 깊은 몰입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 역시 단순함과 평범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를 위한 복잡하지 않은 설계를 도입한 애플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가 늘 입고 다니는 터틀넥과 청바지 역시 단순함을 추구한데서 나온 그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 마지막 해에 마크 로스코에 관한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그의 작품을 면밀히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는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고 말한 로스코의 철학에 깊이 공감했으며, 애플의 디자인 철학으로 삼고자 했다고 전해집니다. 단순함에서 나오는 깊은 울림과 철학은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무엇과 마주할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마크 로스코전

2015.3.23.(월) ~ 2015.6.2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F

오전 11:00-오후 20:00

http://www.markrothk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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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미국국립예술관

http://www.nga.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