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4. 09: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언론영화 콘서트 현장 두 번째 시간!
평일 저녁 상영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두 시간 동안의 영화 상영 후 약 한 시간 동안 임순례 감독과 영화 속 박해일이 연기했던 실제 인물인 한학수 피디는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는데요. 영화 제보자는 2005년에 일어난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밀착 취재한 한학수 피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원작은 한학수 피디가 쓴 『진실, 그것을 믿었다』로 황우석 사건을 취재하면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을 묶어 엮어낸 책입니다. 이 책의 판권을 사서 임순례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사건이 일어난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사건을 통해 임순례 감독과 한학수 피디는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요. 관객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을 옮겨봤습니다. 일부는 요약되거나 재수정 또는 생략하였으니 양해부탁드려요~
Q. 사건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 현직 피디로서 감회가 어떠신지?
(덧붙이는 말씀을 드리자면 한학수 피디는 MBC에 김재철 사장이 온 이후 제작현장에서 배제돼 왔습니다. 경인지사 수원총국, 대학 새내기들이 들을 법한 교양강좌를 수강하는 MBC 신천 아카데미, 신사업개발센터 비제작부서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한학수_황우석 사태는 과학 사기 음모론, 국가와 국가 간의 대결 등 여러 가지로 다룰 수 있지만 저널리스트를 중점적으로 두고 만들었습니다. 그런 제 의식이 이 영화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로서는 제작 일선을 본의 아니게 떠나 있어 개인적으로 불행합니다. 제작 일선에서 빨리 만날 수 있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임순례_작년에 한 피디님 MBC 상암 신사옥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났다가 영화의 힘으로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뀌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여러분들이 보셨다시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르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황 박사 줄기세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제보자에 초점 맞춰서 만들 수도 있고 언론인에 맞출 수도 있습니다.
한학수_실제 줄기세포에 관한 취재를 시작하는 날 최승호 팀장이 “이 사건은 법원에 간다. 기록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언론을 하는 사람들에게 1차 사료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최소한의 근거자료를 사건 당사자로서 남기자. 당시 제보자였던 연구교수는 나중에 회고하기를 이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해결이 안됐다면 뉴욕 타임즈를 찾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언론에서 사건을 풀어헤쳤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Q.다수의 국민들이 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 또한 그 당시 황우석을 믿는 우매한 국민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대중들이 우매하기 때문에 속는 건가?
임순례_당시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컸습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은 진실이라고 믿었던 시기입니다. 우매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없는 게 아니라 추호도 의심할 수 없게끔 언론에서 보도를 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피디수첩이 아니었으면 누구도 진실을 가려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 언론사에 있어 상징적이고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언론을 대할 때 양측의 입장을 다 들어보고 그것에 대한 판단력은 스스로 갖춰야야 합니다. 피디수첩 방송을 봤다면 그것에 반하는 다른 방송도 보고 어떤 것이 더 진실성이 있고 합리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의 몫입니다.
Q.모든 국민이 믿어 의심치 않는 황우석 사건의 진실을 캐는 과정에서 내면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
한학수_사실 제보 받은 날부터 두려웠습니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한 실험실에서 제보자가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라고 하는 물었는데,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이다’라고 똑같이 말했습니다. 제보자는 저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 질문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제일 두려웠던 게 2번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걸 피츠버그에서 확인했을 때입니다. 영화에서는 제보자의 부인이 훔쳐오는 걸로 되어있지만 훔쳐온 게 아니고 서울대 치대 병원에 흘러와 쓰레기통에 버려진 줄기세포 배양접시를 긁어서 그걸 저희한테 가져온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황우석 지지자들이 절도죄로 고소하지만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버려진 것이고 쓸모없는 물건을 가져간 것이어서 절도죄 성립이 안 됐습니다. 제가 <싸이언스> 표지논문 2개를 일거에 뒤집은 거였지만 그 뒤로 너무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경황이 없었기도 하고. ‘이건 아니잖아’ 그런 느낌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Q.예비 언론인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나 덕목, 신념이 있다면?
한학수_임 감독님이 사실을 건조하게 영화에서 다뤘다고 봅니다. 영화에서는 담당 피디가 왜 죽도록 싸워야했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밥 벌어먹으려고 하는겁니다. 팩트를 보도하는 저널리스트이므로. 팩트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입니다.
임순례_ 이 영화의 제목이 제보자인데 처음 기획한 제작자가 정한 겁니다. 제목이 제보자면 유연석 씨가 맡은 역할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보자라는 게 본인의 양심에 의해서든 신념에 의해서든 진실에 대해 눈감지 못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알리는 거잖아요. 언론인도 진실을 알리는 제보자의 역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제목을 썼습니다. 진실에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저널리스트가 진실을 외면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이 거대한 구조 속에서 진실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론인들은 진실의 메신저이기에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저는 영화를 통해서 언론인들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Q.영화에서 진실이란 단어가 반복됩니다. 오늘도 팩트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애초에 팩트는 하나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건가?
한학수_저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도 봅니다. 주변적인 팩트를 모아 중심을 만드는 게 아닌, 팩트 자체를 취재 안하는 저질 언론도 봅니다. 몇 개의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지는 당사자의 몫입니다. 개별 사실들을 열거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을 담지는 않습니다. 개별 사실이 맞다고 해서 진실이 되진 않습니다.
사실 선택하는 것도 자기의 선택이고 자기의 창입니다. 팩트 고르는 것 자체도 하나의 관점이 들어갑니다. 내가 모은 사실들이 얼마나 진실을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항상 고민스럽고 부담스럽습니다. 그건 우리 직업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사 쓰는 역사가도 사실을 모아서 본질적인 걸 끌어내지 않나. 잘 드러낸 역사는 세월이 지나서도 잊히지 않을 뿐이고 저 또한 그런 프로그램 하고 싶습니다.
Q.황우석 박사의 인간적인 측면을 그린 장면들에 어떤 의도가 들어있었나?
임순례_황박사를 아는 분들은 과하게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규정하지만 커다란 규모의 사기는 혼자만 독단적으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혈세를 퍼붓고도 나 몰라라 하는 정부. 진실을 알면서도 이해관계 때문에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인들. 과도한 애국주의에 빠진 국민들. 모든 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사기의 규모가 거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만을 비난할 순 없을 것입니다. 다같이 반성하자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 설정한 것입니다. (마무리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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