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극복을 위한 평범한 처방전

2015. 4. 28.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완벽주의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궁금하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못 다한 완벽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 보겠습니다. ‘완벽주의의 역설’이란 지난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완벽주의자들은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애를 씁니다. 그러다보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계속해서 스트레스만 받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존감은 보통 자기에 대한 가치감과 자신의 역량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완벽주의자들은 워낙 기준이 높다보니 하는 일마다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완벽주의자들의 자존감은 낮아집니다. 이런 심리상태는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등의 신경증적인 신체 증상으로도 표출되며 우울증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완벽주의자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완벽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 어떻길래 이렇게도 고통스러운 마음의 짐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흑백논리


첫째, 완벽주의자들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흑백논리’에 젖어 있는 것이죠. 어떤 일이 미완성의 상태에 그치거나 평범한 성과를 거둘 바에야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흠 없는 완성이나 탁월한 성과가 아니면 안 한 것만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욕적이라고 여깁니다. 시험공부 범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 공부 자체를 포기합니다. 청소할 게 너무 많아 한 번에 제대로 끝내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청소를 안 하거나 무작정 미루게 되죠. 그래서 이렇게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완벽주의자들은 꽤나 게으른 것 같지만 자신의 무기력한 모습에 때문에 사실 속은 엄청 타들어갑니다. 행동하는 건 없지만 생각은 엄청나게 많이 하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수행능력 저하의 악순환


둘째, 실패나 실수를 과하게 걱정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씁니다. 그만큼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일을 해보거나 불확실함을 견디는 능력도 떨어집니다. 결과에 예민하다보니 쉽게 불안해지고 자기 능력에 대한 의구심에 자주 빠지게 되며 이것이 다시 수행 능력을 떨어뜨려 불안을 자극하는 자기 패배적 악순환에 빠집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시험 성적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공부를 미룹니다. 그러고 나선 ‘아,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만일 열심히 했다면 분명히 이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왔을 거야. 그러니 나는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나쁜 게 아니라 안 해서 안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일 뿐이야’라며 자기 능력을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변명하거나 방어하기에 바쁩니다. 중요한 건 밖으로 드러나는 근사한 자기 이미지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잃게 되다보니 점점 남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이 불쾌한 느낌을 외면하기 위해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또다시 회피하는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넘어진 곳에서 또 넘어지는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이것이 패배주의로 뿌리내리게 되죠. ‘어차피 해도 난 안 될 건데 해서 뭐해’라고 말입니다.


이상화된 자기 모습 지키느라 자기 개선에 소홀


셋째, 이상화된 자신의 모습에 매달리면서 그 모습에 상처를 낼만한 일은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반면 자신의 부족한 면을 개선하는 일에는 상당히 인색합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과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자기의 능력 없는 모습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자신에 대한 이상화된 모습과 현실의 자기 모습 사이에 격차가 크다보니 그 차이를 한 번에 만회할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못난 자기에 대한 수치심과 모멸감에 시달리게 되고 현실의 초라한 자신을 더욱 더 부인하고 싶어지죠. 완벽주의자일수록 능력 있는 사람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고정된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하는 사람들을 열등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이러한 ‘똑똑한 자기’에 대한 판타지가 운 좋게 유지되면 잘 지낼 수 있지만, 이게 한 번 무너지면 좀처럼 만회하기 힘들어집니다. 이상화된 자기 모습에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노력하는 모습의 자기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곧 자신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패러독스에 갇혀 버립니다.


미루기라는 퇴행적 자기보호 전략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완벽주의자들의 이런 사고방식이 야기하는 행동양식 중에 대표적인 것인 미루기(procrastination)’입니다. 평범해선 안 되고 노력하지 않아도 뛰어나야 하며 울퉁불퉁한 시행착오의 길 대신에 성공으로 가는 직선 코스를 최고 속도로 단기간에 주파하는 이상화된 자기 모습을 고수하는 사람이 현실에서 여러 가지 장애물에 직면하고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회피하기 위해 꺼내는 퇴행적 자기보호 전략이 미루기인 것이죠. 어렵고 힘든 순간일수록 자신과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내가 지금 여기서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아 작은 것이라도 실행에 옮겨 성공의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흑백사고에 젖은 완벽주의자들은 나는 완벽하지 못하니 이제 글렀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고 삶의 과제들을 회피한 채 무력한 자신의 모습에 연민을 보내는 걸로 그칩니다. 그런 면에서 완벽주의자의 극단적 선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조급한 단정이나 완벽한 방치 또는 포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히 문제 해결 능력도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좋든 나쁘든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작게 쪼개고, 해법에 집중해, 할 수 있는 만큼만


완벽주의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과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의 주문을 한 번 보겠습니다. 우선, 잘 하지 못할 것 같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것입니다. 결과를 확신하기 전까지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자발적으로 무엇이든 시도해 보자는 얘기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과제나 목표를 잘게 쪼개야 합니다. 자기 역량의 최대치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현실적인 능력을 고려해 가급적 길지 않은 시간에 성취감을 얻을 수 있게끔 일을 나누어 수행하는 것이죠. 처음부터 보폭을 크게 잡으면 또 실망과 패배감에 젖기 쉬우니까요. 작은 성취를 모아 큰 성공으로 나아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나에게 생긴 문제의 원인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기보다 해법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즉, ‘문제가 왜 생겼나’보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알 수 없는, 또 알아서 득도 안 되는 문제의 원인 파악에 쓸 에너지를 해법을 고안하고 실천하는 일에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제의 원인보다는 해법이, 이유를 곱씹는 생각보다는 방법을 실천하고 수정하는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생각은 행동한 뒤에 잘못된 점을 파악하고 수정할 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뭐든 다 알고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배우는 것(learning by doing) 아니겠습니까?


자잘한 것들을 착실히 쌓아가는 게 ‘게임의 법칙’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나 문요한이 종종 인용하는 말인데요, 정신분석가 칼 융은 모든 신경증은 정당한 고통을 회피한 대가라고 말했습니다. 완벽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심신의 고통은 삶을 살아가는 데 수반되는 마땅한 고통을 피하려다가 치루는 기회비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는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양준혁 선수가 18년 야구 인생에서 3할 대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홈런이나 장타 때문이 아니었답니다. 자잘해 보이는 내야 안타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선망하는 인생의 홈런은 능력도 운도 좋고 여러 상황 변수가 딱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것일 겁니다. 그러나 사실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력도 운도 고만고만한 경우가 많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인생이란 경기에서 바랄 수 있는 건 큰 것 한 방이 아닐 겁니다. 번트든 안타든 볼넷이든 빈볼이든 일단 조금이라도 나가야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인생에는 홈런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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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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