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한 신문 젊은 독자를 도발하다. 한국일보 ‘까톡 2030’

2015.06.01 08:4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4년 10월호>에 실린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 / 한준규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우리, 까놓고 이야기해봅시다.” 누군가 이런 말을 던졌다면 대화 분위기는 어떻게 될까요. 묘한 긴장과 함께 논쟁(이라기보다는 말싸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설이 오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마음이 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까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건 사실상 상대방에 대한 도발입니다.

 

까톡 2030’은 도발적인 지면을 만들어보자는 기자들의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갈수록 젊은 독자들을 인터넷에 뺏기고 있는 신문 제작 환경의 답답함을 풀어보기 위해 독자들에게 도발하고’ ‘우리 스스로를 도발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진실 보도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근엄하게 세상사에 훈수 두는 지사형 기자도 필요하지만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자도 필요하기에, 청년들의 고민을 대변할 수 있는 기사를 써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응원과 비난 사이

 

모든 페이지가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하다고 평가 받는 한국일보의 지면에 독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적어도 매주 한 개 면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까톡까놓고 토크하자는 의미고 203020대와 30대의 이야기를 담자는 의미입니다.

 

사회부, 경제부, 산업부, 문화부, 디지털뉴스부에서 20~30대 막내급 기자들이 한 명씩 모여 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동안 신문에서 쉽게 다루지 않았던 소재들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여러 사회현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까발려 보기로 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도 잠시 접기로 했습니다.

 

까톡2030이 택한 첫 번째 아이템은 혼전 동거였습니다.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 적지 않게 자리잡고 있는 삶의 방식이지만 색안경을 쓴 기성세대 입장에선 섹스에 굶주린 젊은이들의 비도덕적 일탈로 폄하되는 동거 문제를 선입견 없이 다뤄보고 싶었습니다.첫 회가 나간 뒤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독자들은 젊은이들의 동거에 대한 고민을 잘 담은 것 같다” “재미있는 내용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까놓고 토크한다더니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다 아는 내용 아니냐” “그래서 어쩌라는거냐. 동거가 좋다는 거냐 나쁘다는 거냐는 혹평이 엇갈렸습니다. 회사 안팎에서도 찬반양론이 거셌습니다. “한국일보가 좀 새로워졌다. 젊어지려고 하는 노력이 보인다는 응원이 있었던 반면 수준 이하의 선정적인 지면이다” “선데이서울을 만들겠다는 거냐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출처_한국일보


2030의 고민과 삶을 담다

 

데이팅 앱을 통한 젊은이들의 만남에선 친구를 통해 친구를 소개받는 전통적인 소개팅 방식 대신 요즘 유행하는 앱을 통한 만남을 다뤘습니다. 지인을 통한 만남은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고, 책임감 때문에 쉽게 정리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는 게 젊은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앱에 등록하면 조건과 취향(심지어 성적 취향까지도)이 맞는 상대를 편리하게 고를 수 있고, 연애 상대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무제한 소개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데이팅 앱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2030 직장인들의 삶도 단골 소재였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하루에 풀어버리는 그들만의 불금문화를 조명했습니다. 특히 불금의 명소로 각광받는 핫플레이스를 소개한 코너는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월급님이 로그아웃 하셨습니다에서는 직장인들 월급 통장의 속살을 들여다봤습니다. 한달에도 몇 번씩 사표를 던지고 싶은 유혹을 견뎌가며 받는 월급이지만 다음 월급날이 돌아오기도 전에 잔고에 0이 찍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대출 이자, 카드값, 보험료, 각종 공과금, 통신료에 적금이라도 한두 개 들면 마이너스 인생이 되는 셈입니다. 젊은 직장인들은 다음 월급날까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하는 기간을 보릿고개에 빗대 월급고개라 부르며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_한국일보


조로했던 막내 기자들의 회춘

 

SNS, 인터넷 등과 뗄 수 없는 젊은이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도 관심거리였습니다. 이른바 관심병종자도 주목 받은 소재였습니다. 이들은 SNS에서 허세를 부리거나 선동적인 게시물을 통해 타인의 관심에 집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타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반사회적인 표현을 써가며 욕하거나 편향된 정치적 견해를 강요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선동형’, 자신이 먹은 것, 알고 있는 것, 구매한 것을 자랑하는 허세형등으로 분류됩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현실도 외면할 순 없었습니다. ‘등골브레이커에서는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이 등록금, 학원비, 어학연수비, 생활비 등을 부모에게 고스란히 의존해 등골을 빼먹을 수밖에 없는현실을 조명했습니다까톡2030기사 출고에 참여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막내 기자들로 구성됐지만 이들도 입사 후 급속히 노령화되는 현상 때문에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감각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까톡2030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불금이라고 해야 퇴근 후 치맥과 발동 걸렸을 때 강남의 번화가 술집에서 죽도록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던 한 기자는 불금에 블루스 파티를 즐긴다는 취재원을 만나러 갔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까톡2030’의 미래는?

 

까톡2030은 뜨거운 찬반양론 속에 계속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지만 모든 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까톡2030에 참여하는 기자들은 코너 특성상 편집국에서 가장 젊은 피에 속하지만 각 부서별 막내라는 위치 때문에 과도한 평시 업무에 까톡 취재까지 더해져 극심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민란수준의 반발을 달래느라 노심초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까톡2030과 관련해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런 말입니다. 선배,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이러십니까? 우리 까놓고 이야기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