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의 현황과 한계

2015. 6. 8. 08:5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4년 8월호>에 실린 MyOn정치미학연구소장·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 이영주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주말 및 일요일 오후와 저녁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자녀나 손자 손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국민 아이들’ 혹은 ‘국민 손자 손녀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에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부모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방송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는 각 아이들에 대한 품평회 열기가 가득합니다. ‘국민 육아’의 현장입니다. 


‘국민 아들 딸 손자 손녀’


지상파만 놓고 보았을 때 주말과 일요일 가족 시청 시간대에 연예인과 이들의 자녀들이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사건들을 어른과 아이들 모두가 함께 그리고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프로그램 포맷입니다. 물론 이러한 재미와 관심이 높은 시청률로 연결되는 더 중요한 매력이 있음을 부정 할 수 없습니다. MBC ‘아빠 어디가’의 성공 이후 SBS와 KBS의 가세로 달구어진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의 경쟁은 아이들에게 텔레비전 스크린의 새로운 주인공 자리를 잠시 내주어도 충분하다는 판단에 기초 합니다.


아이나 육아를 혐오하거나 기피하지 않는 시청자라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재미있고 신선한 감정들을 느낍니다. 더 나아가 아이의 모습으로부터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성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감정의 변화들을 보면서 자기 아이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스크린 속의 아이와 부모에게 강력한 감정이입의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과학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아이로부터 꾸며지거나 포장되어 있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과 순수함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충해 주거나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획과 자기 통제, 사회적 규율 속에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돌발성과 자기 욕구 충실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찰 대상입니다. 서로 다른 기질의 아이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우발적인 사건과 이야기들을 지켜보는 것은 일상에 지친 어른들에게 청량한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특히 그 아이들이 평소에 바로 옆에서 만나볼 수 없는 연예인의 아이들이라면 이러한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연예인의 아이들이지만 내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과 행동,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보면서 일종의 동질성과 안도감을 가지게 됩니다. ‘특별할 것’ 같은 아이들은 어느새 ‘그리 특별하지도’ ‘그리 신비롭지도’ 않은 평범한 아이로 내 아이와 함께 놓이고 비교됩니다.


텔레비전의 괜찮은 심리적 서비스


그래서 텔레비전은 아이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충실한 매체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텔레비전을 ‘서비스’로 간주해야 한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는 텔레비전을 영화와 연극 혹은 서정시와 같은 예술적으로 단일한 것으로 고려하는 것 즉, 텔레비전을 하나의 ‘장르’로 고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텔레비전은 장르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달할 수 있는 기술적인 매체이자 서비스입니다. 텔레비전을 서비스로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텔레비전이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엇을 제공하고, 또 우리가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즐기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은 주말 가족 시청시간대에 가족 내 구성원 모두에게 부담 없는 재미와 공감, 심리적 보충물을 제공하는 ‘괜찮은’ 서비스인 것입니다.




연예인 아빠들의 일상성 목격


‘아빠 어디가’와 함께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의 ‘오! 마이 베이비’는 육아의 현장에 아빠들을 호출합니다(물론 엄마들은 사라지지 않고 항상 옆에 있거나 주변에 대기합니다). 육아에는 전혀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해 보일 수 있는 유명 연예인 아빠들을 호출함으로써 그들이 진정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소통하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킵니다.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연예인’ 아빠들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예인들의 집과 가정,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 즉, 탈신비화된 일상성을 목격합니다. 이를 통해 그리 다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육아를 매개로 한 동질성을 확보합니다.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주도해가는 ‘평범한 텔레비전’ ‘일상의 텔레비전’의 경향들에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세합니다. 연예인들을 더 이상 신비화하거나 신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존재로 다시 창조해내는 것은 리얼리티 텔레비전 시대가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리얼리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상과 가정,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직면하는 삶의 과정들에 그들을 위치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리얼리티 텔레비전의 욕망입니다. 시청자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실제적이며 날것 그대로의 진짜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리얼리티 서비스는 텔레비전의 욕망이자 동시에 시청자들의 욕망이기도 합니다.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처_전자신문


왜 온통 아빠일까요? 아빠들이 어떤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에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은 아빠에 이리도 집착할까요? 최근의 문화비평들이 많이 다루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소통, 좋은 관계의 형성, 공감, 참여라는 용어들이 강조되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아빠가 이제 가정의 미시경영에서 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가족사회적 용어들이 왜 이리 강조될까요? 아빠와 엄마 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는 가정의 경영이 강력한 가족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나와 나의 가족이 가정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의 가정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족의 구성원들은 이 공통의 과제 앞에서 힘을 합쳐야 합니다. 돈벌이, 육아, 교육, 여가 등 가족의 재생산에 필요한 것들을 가족 구성원들의 강력한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이중에서도 육아는 이 연대를 실험할 수 있는 매개고리입니다. 맞벌이 노동, 노동 후 다시 행해지는 자기 재생산을 위한 추가 노동 속에서 육아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빠나 엄마 중 그 누군가에게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육아 노동력의 차출이 필요하며, 그래서 가족은 사활을 건 육아 실험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빠는 당연하게도 또 하나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합니다. 아빠에게 쏟아지는 최근의 윤리적 요청들 즉, 소통과 관계, 공감과 참여라는 것들이 온전히 순수해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