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2. 14: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어원적으로 ‘독서(讀書)’라는 단어는 ‘소리 내어 읽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독서한다는 것은 당연히 청아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소리 내어 읽는 다는 것은 독서 계보 상에서 보면, 음독에 해당됩니다.
책과 독자가 혼연일체가 되는 과정,음독(音讀)
책 속의 글자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책과 독자가 혼연일체가 되는 과정이며, 몰입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음독은 책의 내용을 온 몸으로 체득하는 것으로, 책 속의 의미를 ‘깨닫는 방법’으로 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음독은 공개적인 독서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방안에서 소리 내어 읽으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공개되는 셈입니다. 또한 무슨 책을 읽는 가가 알려져, 책 읽는 사람의 지적수준이 공개되기도 합니다. 당연히 지적수준은 그 사람의 사회적 수준을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음독은 바른 자세로 옷을 단정하게 하고, 책에 대해 경건성을 갖도록 하는 의식(儀式)이 중요시 되는 독서행위입니다. 이런 모습은 현재에도 각종 종교집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비판적 성찰을 기르는데 효과적인,묵독(默讀)
정보량이 늘어나고, 소설과 같은 오락적 내용의 책이 늘어나자, 더 이상 음독은 효과적인 독서 방법이 되지 못했습니다. 음독으로는 방대한 내용을 순식간에 읽기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래서 독서가 ‘소리 내어 읽다’라는 본래적 의미에서 벗어나, 단지 눈으로만 읽는 독서가 보편적인 패러다임으로 등장하였습니다. 단지 책을 눈으로만 읽는 행위를 조선에서는 ‘간서(看書)’라 하였습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 중 한 사람인 이덕무는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하여 ’책만 보는 바보‘라는 별명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간서는 현대적 언어로 묵독이라 합니다. 묵독은 공개적인 음독과는 달리 은밀한 개인적 행위에 해당됩니다. 이것은 독자가 책속에 함몰되기 보다는 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 읽기를 하는 데 유용한 방법입니다. 달리말해 개인적 사유를 발전시키고, 비판적 성찰을 기르는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독서를 둘러싼 의식(儀式)적 행위가 생략되고, 언제 어디서나 독서가 가능하게 된 묵독은 공공장소에서의 독서와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18세기 조선출판
18세기 조선의 출판 상황을 보면, 책의 생산은 관청과 사원, 서원, 향교 등에서 발행하였을 뿐 아니라 민간인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방각본이란 책을 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발행된 책은 왕실에서 관료들에게 책을 나누어주는 반사(頒賜), 책 거간꾼인 서쾌(書儈)에 의한 중개, 책을 빌려 주는 세책(貰冊), 서점인 서사(書肆) 등을 통해 일반 독자들에게 유통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관과 사절단 등이 중국 등을 행차할 때 책을 사와 유포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으로 말미암아 조선 내에는 돌아다는 책 수가 급격하게 증가되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소화해 내기 위한 묵독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성리학적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독서 방법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질서(疾書)의 방법입니다.
비판적 생각을 가지고 의미를 생각하라, 질서(疾書)
퇴계 이황이 시도하다 실패한 질서는 이익(李瀷, 1681-1763)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익에 따르면, ‘질서(疾書)’란, 해득한 것이나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서 빨리 써 두었던 독서법을 말합니다. 사실 옛날에는 필기도구가 복잡했습니다. 벼루에 먹을 갈아 놓아야 하고, 붓을 청결하게 정리하여 그 옆에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지를 가지런히 펴놓아야 했습니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책 모퉁이 빈 공간에 자기 생각을 적어 넣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익에 의하면, 책을 읽을 때, 본문과 주석에 비판적 생각을 가지고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후 끊임 없이 생각하여 스스로 깨달은 바를 빠르게 기록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독서 방법에서 진일보하여, 회의를 통한 주관적 견해를 형성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즉, 질서라는 독서방법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수립하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질서의 독서법을 사용하는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서의 독서법은 점진적으로 초서(抄書)의 독서방법으로 발전해 나가는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 초서(抄書)
초서(抄書)의 방법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일반화된 독서법 중 하나였습니다. “글을 읽어 의미를 재구성하고 저자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어 이것을 기록하는 태도는 책의 내용을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필히 요구되는 것이다. 기록과 메모의 구체적인 방법은 사건을 기록할 때에는 그 요점을 제시하고, 글을 모아 엮을 때에는 현묘한 이치를 밝혀야한다.”(이덕무, 국역 청장관전서, 「사소절」,‘교습’)고 말한 이덕무는 그의 친구 유득공(柳得恭)의 초서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유득공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은 글 상자였다. 그는 늘 소매 속에 종이와 붓을 넣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색다른 것을 보면 글로 써 두었다. 책을 보다가도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이 나오면 꼼꼼히 기록했다. 이렇게 써 둔 종이들은 내용에 따라 다시 한 번 걸러지고 나누어져서 그의 글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중략)... 그래서 나와 벗들은 유득공의 글 상자를 진귀한 보물 상자라 불렀다.”(안소영, 『책만 보는 바보』, 파주:보림,2005)
다산은 초서야말로 책을 효과적으로 빨리 읽는 최선의 방법임을 여러 번 강조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산은 학문에 보탬이 될 내용만 추려내고,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건너뛰며 읽을 것을 제시했습니다.
“대개 초서(鈔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그 책에서 간추려 내야 꿰뚫는 맥락이 묘미가 있게 된다. 만약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곳이 있을 때는 별도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 넣어야만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고기 그물을 쳐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게 마련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여유당전서』,<기유아>)
정약용은 맹목적인 음독의 폐단을 ‘한갓 읽기만 잘 한다’는 말로 비판하면서 초서 독서법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다산은, 전통적인 음독의 독서방법을 단순히 추종하기 보다는 텍스트의 중요한 부분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정리하고 메모하는 질서의 독서법을 활용하여, 후대에 방대한 저술을 남기게 됩니다.
질서의 독서법이나 초서의 독서법은 일견 상 서로 유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면, 질서의 독서법은 독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메모해 둔다는 면이 강조되는 반면, 초서의 독서법은 전적으로 요약·정리를 위한 독서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 모두는 책을 저술하거나 편찬할 때, 매우 편리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초서와 질서를 도와줄 에버노트(Evernote)
여러분은 어떤 독서 방법을 활용하고 계십니까? 아마도 종이책을 읽을 때 주요 사항에 ‘밑줄 쫙 치는’방법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수많은 글들을 읽고, 그냥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서 읽은 글을 찾으려면, 헤매기 일쑤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 본 일이죠.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주 긴요한 어플리케이션들이 널려 있으니 말입니다. 대표적인 어플들로는 ‘에버노트(Evernote)’, ‘원노트(onenote)’ 등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에버노트’를 활용합니다. 전철 안에서, 혹은 약속의 자투리 시간에 전자책이나 각종 신문 기사, 리포트 등을 읽고, 주요 사항은 즉시 오려서 ‘에버노트’에 저장합니다. 모바일에 저장하면, PC에서도 동기화되어 아주 편리합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활용한 초서가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내 손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생각도 즉시 ‘에버노트’에 입력할 수 있습니다. 질서도 편리하게 이루어지는 셈이죠. 그리고 방대한 초서와 질서의 내용을 ‘태그’를 활용하여 간단하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헤매지 않습니다.
이제 그저 읽기만 하시는 당신이라면, 오늘부터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초서와 질서를 해 보시죠. 만약 당신이 앞으로 10년 동안 초서와 질서의 독서를 하신다면, 당신은 이미 어떤 분야에 권위자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고 웹사이트
에버노트 www.evernote.com
원노트 www.oneno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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