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운이 아니라 편집력이다

2015. 6. 2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알코올중독자, 줄담배를 태우다가 담배를 끊겠다는 흡연자, 인터넷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게임중독자, 카지노를 출입하지 않겠다는 도박중독자, 한 달 안에 10kg을 감량하겠다는 다이어트선언자. 이들의 굳센 의지가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뭘까요.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심리학과 티모시 윌슨 교수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기만의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도록 도와주는 퍼스널 내러티브(personal narrative) 전문가입니다. 2012년 국내에 소개된 저서 <스토리>는 ‘행동의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심리처방’이란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발적 참여와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동기 즉 ‘스토리 편집’(story editing) 개념을 제시합니다. 


단순히 폐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금연을 결심한다면 대다수 끽연자는 결심 번복의 악순환에 빠지고 맙니다. 심신을 망치는 나쁜 습관을 고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겠다는 총체적 결심이 곁들여진 금연 결단이야말로 ‘스토리 편집력’ 사례입니다. 


“두 딸은 유치원생이다. 번듯한 내 집 마련은 아직 멀었다. 현재 우리 부부 모두 건강하지만 성인병이 나타날 40대 후반이 되면 어찌될 줄 모른다. 가장인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우리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하루 한 갑 이상 피우고 있다. 그래! 지금 당장 금연을 실천하자.” 바로 이것이 삶에 대한 계획이 분명하고 자발적 의지가 동반된, 그래서 성공가능성이 높은 스토리 편집입니다. 스스로를 스토리로 설득시키고 무장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윌슨 교수의 주장은 간단명료합니다.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으면 그 변화의 핵심내용을 끌어내 본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자기 삶 속에 전개되어야할 이야기(story)를 얽어(editing)보라는 것입니다. 이 스토리가 절실하고 합리적일수록 의도한 변화는 더 잘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대학교 신입생 김방종군과 이결심양은 경영수학 과목 중간고사에서 D학점을 맞았습니다. 김군은 “나는 정말 수학에 재능이 없나봐. 경영학과에 괜히 왔어”하면서 수업도 종종 빼먹고 기말고사 대비도 하지 않습니다. 경영수학 과목을 거의 포기합니다. 반면 이양은 “고등학교 방식대로는 안 되겠네. 다음시험에 대비 미리 철저하게 기초부터 다시 시작 해야겠어”라고 결심하면서 수업도 꼬박꼬박 출석하고 맨 앞줄에 앉아 교수의 강의를 꼼꼼히 메모합니다. 지금 김군은 자기파괴적 순환 고리에 갇혀있고 이양은 자기 향상적 순환 고리에 진입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 <잘못된 거울 (Le faux miroir)>. 자신의 이미지가 ‘타인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라고 정의내리는 한 나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타인이 먼저 나를 규정하고 나는 타인의 선입견에 따라가는 형국이 된다. 이제 나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내 이미지 이니셔티브를 장악해보면 어떨까.사진출처_아시아경제



의미가 생기면 포부와 책임감도 생긴다


어떤 힘겨운 일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고난의 의미를 해석해봅니다. 대부분의 해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인 스토리와 동일한 뜻)에 뿌리는 두고 있습니다. 이 내러티브가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김방종과 이결심양의 경우가 대조적 사례입니다. 부정적 내러티브 징후가 강하다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피동적 인간관계에 머물 가능성이 커집니다. 


윌슨 교수는 글쓰기 요법을 추천합니다. 고난과 충격을 겪었을 때, 사람들은 재빨리 잊어버리거나 회피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바로 이때 일정 정도의 객관적 거리감을 두고 찬찬히 글을 써보라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사건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도구가 됩니다. 


큰 고통 큰 고난이 닥쳤을 때 두서없이 무질서하게 끼적거리는 것도 좋습니다. 낙서하듯 주절주절 써보다가 결국 며칠 후에는 일관성 있는 줄거리를 건지고 힘겨웠던 경험에 대해 담담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의미가 생산되면 목표가 떠오르고 포부와 책임감도 생깁니다. 스토리 편집 접근법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자기 해석을 바꾸어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좀 더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인생에는 속상하고 괴로운 일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편집은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일종의 매듭을 지은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입니다. 매일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본질과 그 작동 근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지 여부는 행복의 중대한 변수입니다. 


진짜 최악의 상황은 내게 벌어진 나쁜 일의 본질과 원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애매모호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명백한 자기도피고 책임회피입니다. 윌슨 교수의 <스토리>는 낙관주의적 인생 편집력을 제시합니다. 안락의자에 앉아 긍정적 마인드만 갖추면 만사가 편안해진다는 허황된 자기긍정 계발서가 아닙니다. 낙관적 행동방식에 관한 전략적 실천서입니다. 행복은 운이 아니라 편집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