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간 뉴스> 식생활의 대혁명, 냉장고 이야기

2015.07.23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집에 냉장고나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 두울, 세엣 ....”

30~40년 전만해도 학교에선 이런 가정환경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어느 사립초등학교 신입생 면접에선 어린 학생에게 TV와 냉장고를 직접 그려보라고 하는 바람에 학부모들이 분노하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출처_1966년 2월 3일 경향신문


이제는 “우리 집에 냉장고 있다~”라고 자랑하는 아이들도 없고, 냉장고가 가정의 필수품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할 정도로 냉장고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정용 냉장고가 개발된 시기는 겨우 100년 정도밖에 안됐고, 우리나라에서 집집마다 사용하게 된 시기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어머! 이게 냉장고야? 


1920년대 이후 신문기사에선 냉장고를 사용하라는 글이 종종 등장합니다. 


얼음 냉장고


당시 냉장고는 윗칸에 큰 얼음을 놓아두면 그 냉기가 아래에 놓인 음식들을 약간 서늘하게 보관할 수 있는 찬장형 아이스박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시기 서양에선 암모니아나 프레온가스를 사용하는 전기냉장고가 개발되긴 했지만, 그건 당시 우리에겐 그야말로 다른 나라 이야기였죠. 


1927년 미국의 GE에서 개발한 전기냉장고

하지만, 전기냉장고의 활용범위가 넓어져서 음식을 차게 보관하는 데만 쓰이질 않고, 특별히 구조한 펌프를 냉장고에 장치해서 실내의 공기를 식히는 용도로도 쓰이는 날이 장차 올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1926년 5월 8일 동아일보 <가정과 전기(4) 전기냉장고>


얼음을 넣어서 사용하는 냉장고는 매일매일 얼음을 사야했고, 얼음이 녹으면 세균번식이 빨라져서 그냥 찬장보다도 더 위험했습니다. 그런 시기에 드라이아이스의 등장은 그야말로 냉장의 혁명이었습니다. 드라이아이스는 손을 데이는 놀랍고 신기한 얼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작은 양으로도 영하 40도의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냉장고 온도를 낮춰주는 신통방통한 얼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구하지는 못했으니 그저 놀라고만 말 일이었죠.


1936년 6월 27일 동아일보 <여러분 아십니까? 냉장고 쓰는 법>


1934년 8월 18일 동아일보 <냉장계의 혁명아, 드라이 아이스>


뇌물 냉장고, 밀수 냉장고, 냉장고가 뭐길래


1950~60년 대, 수입전기냉장고는 매우 비싸서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위공무원에게 주는 뇌물이나, 부정입학의 답례품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을 왕래하던 사람들에 의해 불법으로 유입되어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1966년 7월 4일 동아일보 <돈 받고 부정편입학, 교장은 냉장고 선사받아>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을 반대하던 학생들은 일제냉장고 등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귀국하던 파월장병들이 가지고 들여오던 가전제품이 너무 많아서 부산세관에서 골머리를 앓기도 했는데, TV, 라디오 등과 함께 미제냉장고도 많았습니다. 


냉장고 3사의 뜨거운 전쟁 - 눈표, 원투제로, 하이콜드 


1965년 금성사는 첫 국산냉장고인 눈표냉장고를 출시했습니다. 120리터의 눈표냉장고 가격은 8만 5천원이었는데, 당시 대졸 초임이 1만 원 정도 되었다고 하니 정말 비싼 제품이었죠. 


1965년과 1966년 금성냉장고 신문광고


그 시기 일본의 냉장고 보급률은 2가구당 1대 정도였고, 우리나라는 600가구당 1대 정도였다는 게 이해가 가긴 하네요. 1968년엔 대한전선에서도 원투제로냉장고를 출시했습니다. 후발주자인 대한전선은 금성사와 공격적인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1972년 삼성에서 하이콜드냉장고가 출시된 후로 3사의 냉장고 판매경쟁은 불꽃이 튀었습니다. 결국 1977년에는 상공부까지 개입하여 제재에 나섰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대한전선, 금성, 삼성의 냉장고 광고


정을 나누던 냉장고


생각해보니 우리 집 마루에 냉장고가 놓인 것도 그즈음이었네요. 엄청난 광고 덕분인지 저의 어머니도 월부 냉장고 한대를 집에 들여놓으셨죠. 우리 집의 첫 냉장고에 기억은 정말 소박합니다. 가구처럼 마루 한가운데 떡하니 놓인 냉장고를 반짝거리게 닦으시던 우리 엄마, 새 냉장고를 구경하러 온 동네 아줌마들, 이웃들이 맡긴 반찬들, 여름이면 스텐그릇에 물을 담아 얼린 얼음을 이웃들에게 나눠주셨던 일들, 그리고 오며가며 냉장고 문을 열어대던 우리 삼남매에게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핀잔하던 엄마의 잔소리... 조금 부족하긴 해도 냉장고 하나로 시끌벅적하며 서로 정을 나누던 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