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무시한 ‘원자화’된 콘텐츠의 얕은 재미

2015.08.28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8월호>에 실린 슬로우뉴스 편집장 / 강성모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큐레이션이라 쓰고 펌질, 도둑질, 가두리 양식질이라고 읽어야 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 써머즈, ‘도둑질 큐레이션 권하고, 원작자 죽이는 사회’, 슬로우뉴스, 2014.4.3. 중에서


옳은 답을 얻기 위해선 질문이 정확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라고 부르는 서비스는 과연 말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인가요? 우선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저작권? 그게 뭔가요”

피키캐스트, 위키트리, 인사이트, 몬캐스트.

2015년 현재 ‘큐레이션’ 하면 떠오르는 서비스들입니다. 미디어 종사자와 독자 공히 이들 서비스를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혹은 큐레이션 미디어라고 부릅니다. 이 명명은 옳을까요? 이것부터 따져봅시다. 미술관 큐레이터가 작품 전시를 기획한다고 가정해보면, 작품 선별 행위 이전에 작품 사용권 계약을 합니다. 원작자의 사용 승낙(계약)은 필수입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큐레이션을 통해 작가는 이익을 얻고, 원작의 가치를 더욱 넓고 깊게 관객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집니다. 하지만 한국의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가 큐레이션 대상 콘텐츠를 이용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저작권법상 허용 가능한 방식(가령, 28조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으로 사용할까요. 원작자가 미리 허용한 방식(가령, CCL 저작물 이용 허락 표시)을 이용할까요. 아니면 원작자의 승낙과 동의를 구할까요. 모두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자면 아닙니다.


저작권을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일이 밥 먹듯 벌어집니다. 이들 미디어 서비스에 최소한으로 체험치가 있는 독자라면 넉넉하게 인정하는 현실입니다. 큐레이션의 본질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원작과의 상생과 공존은커녕 원작자를 지우고, 그 이익을 훔칩니다. 그런 서비스를 한국에서는 큐레이션 서비스로 부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모든 것은 조회 수 지상주의에서 출발합니다. 유사 큐레이션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다익선입니다. 많이 읽히면 장땡입니다. 그래야 광고를 따올 수 있고, 조회수 규모를 키워 서비스를 매각하거나 잘 포장해 투자를 유치할 수 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사 큐레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A사에서 두 달 동안 일한 그 대학생이 직접 전해준 체험담입니다.


오전 8시에 출근해 보통 오후 10시에 퇴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주6일 동안 일합니다. 한 달에 120만 원을 받습니다. 자신은 정치와 노동 문제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지만, 편집장은 ‘연예 뉴스’를 쓰라고 했습니다. 다툼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연예계 이슈를 짜깁기해서 콘텐츠를 만듭니다. 이렇게 고용된 기자 아닌 기자가 모두 15명. 직접 쓰는 글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저작권을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 짜깁기해서 겉포장만 바꾸거나 통째로 인용하면 그뿐입니다. 내부 가이드도 있습니다. 이렇게 온종일 수십 개의 기사(?)를 양산합니다.


페이스북 디딤돌 삼아 급성장


기성 언론이 포털 의존 정책으로 온라인에서 자승자박의 상황을 초래했다면, 유사 큐레이션 서비스는 SNS를 통해 양적 성장을 이뤄냅니다. 위키트리와 인사이트가 기성 저널리즘 콘텐츠에 가까운 형태인 텍스트와 간단한 이미지의 결합으로 구성된 콘텐츠를 주로 생산한다면, 피키캐스트와 몬캐스트는 각각 카드뉴스 방식과 동영상에 좀 더 특화한 방식을 취함으로써 SNS 사용자에게 소구했습니다.


유사 큐레이션 서비스의 방법론은 조회 수를 늘릴 수 있는 흥미 위주의 소재주의적 접근입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취재’도 생략하고 인터넷에 존재하는 콘텐츠를 재료로 삼는다는 건 앞서 말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SNS, 그중에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유통하는 바, 이는 모바일과 결합한 구조를 지닙니다. 이들은 작은 화면에 최적화한 이미지 중심의 카드 뉴스나 짧은 동영상(피키캐스트, 몬캐스트), 본문 내용은 별로 볼 것 없지만 자극적 소재주의에 치중한 기성 콘텐츠 재가공(위키트리, 인사이트)과 ‘박리다매’ 전략을 통해 상당한 양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_피키캐스트 홈페이지 캡처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은 특히 초기 피키캐스트와 몬캐스트의 적극적인 저작권 무시 전략의 상당 부분이 페이스북에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소위 ‘웃동(웃긴 동영상)’으로 상징되는 휘발성 강한 ‘스낵 컬처’ 동영상을 통해 부피를 키웠던 피키캐스트와 ‘세웃동(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 몬캐스트)’은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고 큐레이션할 수 있는 링크 인용(코드 임베드 방식)보다 타인의 동영상을 직접 하드 드라이브에 다운받은 뒤, 다시 페이스북에 업로딩하는 방식을 주로 채택했습니다. 페이스북이 자사 서버로 직접 업로딩한 동영상 노출도(도달률)를 의식적으로 권장하는 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단순 링크 인용의 도달률보다 직접 업로드한 동영상의 도달률은 무려 10배나 차이가 났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직접 모바일 앱으로 유통 전략 변화를 꾀하는 서비스도 있습니다(피키캐스트와 몬캐스트).


디지털과 모바일이 결합하면서 이제 뉴스 콘텐츠는 점점 더 원자화합니다. 낱개로 맥락 없이 소비되는 콘텐츠는 스스로 선택받고자 자신을 포장합니다. 남의 것이라도 상관없고, 사실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팔리면 장땡입니다. 제발 날 읽어주세요. 제발 좋아요 눌러줘요. 이제 점점 더 비참한 호객꾼이 되어 스스로 팔려가길 원하는 노예가 됩니다.


출처_인사이트 홈페이지 캡처


모바일로 낄낄대는 ‘뉴스’


아무리 고상한 인간이라도 자극에 반응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미끼 제목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독자들이 그 제목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 식견의 높고 낮음과 무관하게 특정한 자극에 반응하는 동물로서의 독자를 감안한 아주 단순하지만 ‘가성비’ 높은 전략입니다. 극한의 경쟁사회에서 출퇴근길의 ‘얕은 재미’,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 어쨌든 나를 향해 손짓하는 별별 자극적인 소식들은 새로운 모바일 독자들을 위로합니다. 독자는 기꺼이 콘텐츠를 보며 미소 짓고, 낄낄대며, 그렇게 조금씩 비에 젖듯 스스로 새로운 습관에 순응합니다. 아무리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이 커져봤자 그 안에 담긴 심각한 이야기를 사람들로 부대끼는 지하철, 버스 안 출퇴근길에 소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공동체 전체가 ‘출렁’할 만큼 절망적인 뉴스가 터지면 사람들은 다시 진지한 이야기를 소비하지만(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그 시간은 한정적이며 1년을 주기로 생각하면 긴 시간이 아닙니다. 아니, 이제 인간보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뉴스 가치가 더 높아진 시대에 우리는 이미 도달했는지도 모릅니다.


지지리 궁상인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할 우주의 얕은 재미를 우리는 기꺼이 원합니다. 그게 남의 것이든 훔쳐온 것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테크놀로지의 신세계, 그 별천지가 담긴 손바닥 위 휴대폰 안에서 타인을 훔쳐보고, 모방하며, 욕망합니다. 마치 유사 큐레이션 서비스가 그렇듯. 그 과정에서 원작자의 시간, 그 기쁨과 슬픔과 눈물을 짓밟는 일은 그저 ‘부수적인 피해’일 뿐입니다. 결국, 비루 하지만 누구도 욕할 수 없는 습관의 결론은 덧없는 망각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를 좋아요 한 방, 낄낄 한 방으로 날려 보냅니다. 어쩌면 그 가까운 미래의 뉴스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보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재롱을 더 중요하게 취급할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