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6년차, 나는 아직도 초보 직장인

2015. 10. 7.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저는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등록금이 계속 오른다’는 거였어요. 당시 저는 제가 3, 어머니가 7 정도의 비율로 등록금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네가 휴학하면 등록금을 더 이상 보태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니, 정확히는 대학 졸업 전에 인턴 같은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 바로 사회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첫 사회생활 동안 ‘~하면 다 해결된다는 거 거짓말이야!’를 수십 번 외쳤습니다. 대학 가면 살 빠져, 취직하면 다 끝나, 결혼하면 다 괜찮아져, 기타 등등. 그렇다면 대학 졸업 때 몸무게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몸무게보다 7kg이 더 나가는 저는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엄마, 대학 가면 다 해결된다며


면접 에티켓은 아마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갈 때 만나는 사람과 회사의 성격에 따라 옷을 다르게 입어야 한다거나, 면접관이 질문을 할 때는 얼마쯤 간격을 두고 어떤 목소리로 대답해야 한다거나. 하지만 입사한 다음에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더란 말입니다. 나보다 평균 n살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상대방의 농담과 진담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어떻게 눈치 빠르게 전화에 대처하는지. 저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사실 직장생활 6년차인 지금도 제대로 모릅니다. 물론 한 직장에 쭉 있었던 건 아니고 여러 번 직장을 옮겼습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주로 직장에서 건강보험을 들어 주었다, 즉 제가 4대보험의 가호를 받는 정규직이라는 걸 입증할 때 씁니다)를 떼어보면 허전하기 그지없군요. 예. 저도 비정규직의 삶을 여러 번 거친 고단한 현대 청년입니다.



신입사원 때는 무슨 실수를 해도 귀엽게 봐 줍니다. 신입이니까요. 하지만 불타는 사랑도 반년이라고, 한두 달 지나도 똑같은 실수를 계속 하면 주위 사람들의 눈이 점점 ‘쟤 피곤해’라고 말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예. 저는 참 골칫덩어리 신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상사와 둘이 차에 타야 할 때는 옆자리에 타야 한다는 거 말이죠. ‘그런 건 눈치껏 해야지!’ 라지만 저는 그때까지 조수석에 타 본 건 택시가 전부였단 말이죠. 팀장님이 운전하는 차를 둘이 탈 일이 생겼는데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뒷자리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팀장님의 떨떠름한 목소리를 듣고 제가 또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삼혜 씨, 사장님이야?”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제가 잘 몰라서 그랬다는 말을 다섯 번쯤 하고 나서야 팀장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높은 사람이 뒷자리에 타는 거야. 영화 보면 회장님이 뒷자리에 타고 아랫사람이 앞자리에 타잖아? 옆자리에서 운전하는 사람하고 이야기도 하고, 길 안내도 해 주고 그러면서 가는 거야.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팀장님.


그리고 업무시간 종료 후에 온 전화를 팀장님께 바꿔 드렸다가 ‘퇴근하려다가 전화 와서 한 시간을 더 붙잡혀 있었다’는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팀장님께 정말 큰 죄를 많이 졌네요. 하지만 급한 일이면 또 바로 전달해 드려야 하니, 퇴근시간 이후의 전화란 정말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딜레마만 가지고도 원고지 오십 장은 채울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자리를 빌어 저의 첫 직장 상사이셨던 모 출판사의 모 팀장님께 감사와 큰절을 전합니다.


누가 직장생활 매뉴얼 좀 만들어 주세요


회사 내의 우당탕탕 제 인생에 대해서 연재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회 생활 내내 제가 간절하게 외쳤던 건 ‘누가 직장생활 매뉴얼 좀 만들어 줘라!’ 였습니다. 사랑받는 신입이 되기, 이런 책이 있기는 하더군요. 하지만 정말 이 문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라고요. 결국 눈치와 상호간의 배려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 직장인 겁니다. 인수인계 기간 동안 회사 내 암묵적인 룰 같은 것도 매뉴얼로 만들어서 배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지속적인 업데이트까지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은 자율성이 많이 보장되는 편입니다. 6년차지만 이 직장에서는 아직 뒤에서 세 번째쯤의 막내입니다. 아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시간 저녁 여섯시 사십 분, 퇴근 시간을 막 넘겼습니다. 파티션 너머에선 다른 팀의 팀장님께서 머리를 싸매고 기획서와 씨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전화가 울리네요. 아무래도 저쪽 팀장님께 온 전화인 것 같습니다. 받을까요, 말까요.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