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의 진실,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2015. 10. 12.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2월호>에 실린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정환닷컴 대표/이정환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증권가 사설 정보지, 이른바 찌라시에 환상을 갖고 있는 같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는 거대한 진실의 한 조각일 뿐이고 뉴스에 실리지 않는 엄청난 고급 정보를 주고받는 수면 아래의 뉴스 시장이 따로 있다고 말입니다. 은밀한 정보는 원래 더 빨리 더 넓게 퍼지기 마련입니다.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클수록 찌라시같은 음성적인 정보에 대한 갈망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들은 날마다 온갖 유형의 찌라시를 여러 경로로 받아보지만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이거나 혹은 기사로 쓰기에는 부적절하거나 단순한 가십성 이야기거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애초에 진짜 고급 정보가 찌라시라는 형태로 나돌리도 없고 더군다나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을 타고 돌아다닐 리도 없습니다. 찌라시라고 돌아다니는 문건은 이미 은밀한 정보가 아니고 당신에게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2000년 초반까지는 실제로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찌라시 모임이라는 게 여러 그룹 있었습니다. 전국의 증권사 지점에서 올라온 루머를 취합하고 대기업 정보팀과 대관팀, 검찰과 경찰 관계자들, 국가정보원 직원까지 모여서 은밀한 정보를 주고받는 자리였습니다. 필자는 소개를 받아 몇몇 모임에 실제로 참석하기도 했는데 공짜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모임은 얻어 듣는 만큼 은밀한 뭔가를 내놓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 부르지 않는 매우 폐쇄적인 형태로 운영됐습니다.

 

2000년부터 미스리와 에프엔메신저 등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은밀한 정보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스리는 복수의 상대방에게 동시에 쪽지를 보내는 그룹 전송 기능이 있어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정보가 날아다녔습니다. 한국 사람끼리는 평균 3.5단계면 서로 연결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지만 증권사 영업직원이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에게 단체 쪽지를 반복 재전송하는 과정에서 무작위한 연결이 늘어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서로 만나기까지의 단계가 더욱 짧아지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정보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상대적으로 은밀한 정보로서의 증권가 찌라시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권가 찌라시는 2003년 굿모닝시티 로비 사건과 2005년 연예인 X파일 사건, 2008년 최진실씨 자살 사건 등을 거치면서 대대적인 정부 단속에 밀려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하로 숨고 보안이 강화 되면서 가격도 뛰어올랐습니다. 이런 정보지들은 알려지지 않은 정보일 때만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보안이 매우 엄격합니다. 기업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공유하고 위쪽으로만 보고될 뿐 외부로 유출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정보지 시장도 양극화 하는 추세입니다. 과거에는 정보지 업체들이 은밀한 경로로 수집했던 정보들이 이제는 날 것 그대로 메신저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받은 글)’이라고 시작 되는 메시지의 상당수는 언론사 정보보고가 출처이고 증권가 루머나 연예가 뒷이야기들이 곁들여집니다.

 

과거에는 폐쇄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제한적으로 유통됐던 정보들이 무작위로 떠다니고 있지만 정제된 고급 정보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증권가 정보지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그나마 1차적인 게이트 키핑이 됐는데 이제는 출처 없는 정보가 알 수 없는 경로로 떠돌고 있습니다. 역정보와 가짜 정보도 넘쳐납니다. 또한 정보지들이 다루는 대부분의 정보들이 시차를 두고 메신저로 흘러 다닙니다. 정보지의 특성상 취재원들이 고객들과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보지가 배달되는 시점이면 이미 한 차례 훑고 지나간 정보가 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몇 차례 정보지 단속 이후 잘 나가던 정보지 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정보지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여전히 웬만한 정보지 들을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구독하고 있는데 퀄리티는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대기업들은 대관팀과 별개로 정보팀을 운영하면서 직접 정보를 수집합니다. 2011년 북한 김정일 주석의 사망을 삼성그룹이 먼저 알고 있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을 정도로 국내 재벌 대기업들의 정보력은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과거 연예인 X파일 사건을 돌아보면 대기업들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정보를 가공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보들이 찌라시에 실려 유출되는 건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기존의 정보지 생산 방식으로는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론사 정보보고는 여전히 찌라시의 핵심 정보 소스입니다. 실제로 정보지 업체들은 신문사와 방송사의 내부자와 직간접적인 거래를 통해 정보보고 내용을 거의 실시간으로 넘겨받아 그대로 기업 고객들에게 전달하곤 했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찌라시에서 본 내용이라고 해명했다가 논란이 되자 찌라시가 아니라 찌라시 형태로 된 내부 동향 문건이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지난해 말 청와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정윤회 국정 개입 논란도 찌라시가 발단이 됐다는 게 검찰 수사 결론이었습니다. 진위 여부와 별개로 정보지에 떠돌던 내용이 청와대 보고 문건으로 작성되고 이런 내용을 의도적으로 정보지와 언론에 흘리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검찰의 발표는 여론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줍니다. 은밀한 정보가 갖는 힘은 가끔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 정도로 강력합니다. 정보는 생성되는 순간부터 끝없이 유출되고 변형됩니다. 나만 아는 정보라는 함정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 게 돼 있지만 끊임없이 정보의 출처를 의심하고 때로는 누가 어떤 의도로 유출했는지 의심하고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