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 퍼스트’로 생각하고 혁신하라

2015. 12. 4.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11월호>에 실린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김선호・김옥태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올해 모바일 뉴스 포맷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선행 연구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뉴스 포맷은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분야라서 선행 연구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몇 개 안되는 연구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케빈 반허스트(Kevin Barnhurst)가 하버드대 쇼렌스타인센터에 체류하면서 2002년에 발간한 보고서였습니다. 당시 미국 신문들이 어떤 포맷을 사용하는지 분석했던 반허스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터넷판 미국 신문들은 온라인에 맞는 새로운 형식으로 출판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웹 버전은 인쇄 버전을 복제하고 있다.(…) 소수의 기사만이 하이퍼링크, 이미지, 인터랙티브 요소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 연구 결과는 신문사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지역 경쟁자들을 상대로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3D 게임식 뉴스까지 등장

 

요즘 회자되고 있는 ‘디지털 퍼스트’나 ‘모바일 퍼스트’ 같은 말들은 저널리즘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표상합니다. 신문사들은 텍스트 중심의 기사에서 탈피하여 이미지와 동영상을 강화시키는 반면, 방송사들은 텍스트와 스틸 이미지를 보강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에서 전통적인 신문과 방송의 구분은 이제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 기사처럼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동영상을 유기적으로 조합시키는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은 혁신적인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모범적 사례로 여겨집니다.

 

전통적인 플랫폼에서 활용됐던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시도 이외에도,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요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콘텐츠의 디지털 혁신은 텍스트나 동영상 같은 전통적인 포맷을 디지털로 제공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 이용자와 콘텐츠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이용자가 콘텐츠를 가지고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단계에 이르러야 진정한 디지털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의 범죄 통계와 구글 지도를 엮어서 이용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범죄 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든지, 이용자가 자신의 직업을 입력하면 미래에 그 직업이 사라질 확률을 보여주는 것 등은 국내외에서 심심찮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부산 지역의 석면 지도나 메르스 감염 환자 입원 병원 지도는 많은 방문자를 기록하며 뜨거운 호응을 받은 바 있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시도하는 혁신적인 사례들이 점차 늘고 있다. 미국 아이오와의 지역신문 디모인레지스터는 아이오와 지역 농부들의 삶을 3D 게임 형식을 이용해 입체적이고 흥미롭게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뉴스 사례도 발견됩니다. 미국 아이오와의 디모인레지스터는 아이오와 지역 농부들이 처한 상황을 탐색할 수 있는 3D 입체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퀴즈나 여론조사 형식을 빌린 인터랙티브 콘텐츠, 그리고 통계학자 한스 로즐링(Hans Rosling)이 보여준 것처럼 경제 발전과 영아사망률 데이터를 인포그래픽으로 시각화시키되 2차원적으로 고정된 그래픽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인포그래픽도 존재합니다.

 

피처만능주의를 경계하라

 

디지털 콘텐츠 혁신에서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도널드 노만(Donald Norman)이 지적하듯이, 무엇보다 ‘피처만능주의(featuretitis)’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피처만능주의는 새로운 기술적 피처들을 개발해서 선보이는 것을 혁신과 동일시합니다. 멀티미디어와 인터랙티브 요소를 동원하여 훌륭한 뉴스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이용자들은 외면하거나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고 첨단 기술을 응용해 기발한 뉴스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인 실험과 연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도널드 노만(Donald Norman)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또 하나 경계할 점은 모바일에서 어떤 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을지 기계적인 공식이나 정해진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모바일이 전통 플랫폼들과 차별화되는 것은 다양한 형식들이 가능하며 유효하다는 데 있습니다. 모바일에서는 짧은 형식(short form)이 더 많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긴 형식(long form)은 외면당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뉴욕타임스의 ‘가장 많이 이메일된 기사’ 목록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독자들은 텍스트 길이가 긴 것들을 더 많이 이메일로 전송했습니다. 필자들의 자체 연구도 단순하게 결론내기 어려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문자, 이미지, 동영상 각각 장점 있어

 

지난 9월 우리는 스마트폰 사용자 1,0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실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모바일에서 가장 선호하는 뉴스 포맷을 물었을 때 56.9%의 응답자는 문자뉴스를 꼽았고, 동영상뉴스는 31.5%, 최근 유행하는 카드뉴스는 11.7%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문자와 동영상이 결합된 뉴스에서 어떤 것을 주로 보는가를 물었을 때 46.5%는 문자 부분만 본다고 응답했고, 둘 다 본다는 응답은 35.1%, 동영상만 본다는 18.4%였다. 문자만 보는 집단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문자로 읽는 것이 더 편리해서”와 “동영상은 내용 파악에 시간이 걸려서”가 각각 31.7%와 28.6%로 가장 많았습니다.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LTE 서비스로 전환되면서 모바일에서 동영상 소비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정보 파악에 있어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림1]모바일에서 가장 선호하는 뉴스 포맷과 이유 (단위:%) / [그림2]각 모바일 뉴스 포맷별 이용자 반응 비교

 

한편, 동일한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또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1,020명의 응답자를 340명씩 문자뉴스, 카드뉴스, 동영상뉴스 세 집단으로 나누어 내용은 같고 포맷만 다른 뉴스를 6개씩 보여준 후, 각각의 뉴스를 본 경험에 대해 측정했습니다. 측정 항목은 세부 내용 보기, 내용 이해, 느낌의 정도, 몰입 정도 등이었는데 모든 항목에 걸쳐 문자뉴스 집단이 카드뉴스와 동영상뉴스 집단에 비해서 조금씩 낮았습니다. 문자는 전체 내용을 훑어가면서 빨리 파악하는데 유리한 반면, 이미지와 동영상이감성적 어필이나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데 조금 더 강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용자 퍼스트’ 시대

 

뉴스 콘텐츠 혁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용자 퍼스트’ 혹은 ‘이용자 중심 디자인’입니다. 이용자 중심 디자인이란 이용자들의 필요, 욕구, 한계점 그리고 이용자들이 부여하는 의미 등을 개발 단계마다 고려하여 콘텐츠를 최적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용자를 완전히 도외시하지는 않았지만 신문이나 TV 같은 전통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생산자중심 디자인입니다. 기자가 취재해서 작성한 기사를 사건의 중요도 등을 고려하여 배치하면, 뉴스 수용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대로 뉴스를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뉴스라는 장르도 언론사가 뉴스라는 타이틀로 보도하면 그것이 뉴스였습니다.

 

 

모바일 기기가 확산되면서 모바일 이용자들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뉴스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전통 매체가 가지고 있던 시간적 주기성과 공간적 제약이 소멸된 것입니다. 선택성이 강화되어 모바일 이용자들은 원하는 정보만 검색해서 필요한 부분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바일 기기와 더불어 소셜 미디어가 동반성장하면서 뉴스 소비에 있어 사회적 관계성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모바일은 저널리즘에게 멀티미디어와 인터랙티브라는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언론사들은 그러한 기술적 가능성들을 최대한 수용하고 최첨단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나 모바일에서 이용자의 경험을 향상시키고 이용자의 관여도를 높이며, 더 나아가 이용자의 참여적 행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자나 개발자의 관점에서 참신하고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용자들의 심리적 욕구, 생활의 맥락과 패턴, 사회적 관계, 수용성 등을 고려하여 이용자의 관점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콘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