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시간은?

2015.12.2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여자에게 고백하는 최소 7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고, 점점 사이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큰 관문 하나를 통과해야 합니다. 뭐냐고요? 


첫 만남이라면 영화를 같이 보고, 저녁을 같이 먹는 데이트가 끝나고 나서 비로소 상대방을 본격적으로 알아갈 지 말 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애프터 신청’을 할지 말지가 판가름나지요. 영화를 보는 데이트가 두 어 번 정도 지나고 나면, 소위 말하는 ‘고백 타이밍’이 찾아오곤 합니다. 왜 영화를 같이 보는 데이트를 할까요? 그리고 왜 두 어 번 같이 보고 난 다음에 고백 타이밍이 찾아올까요? 


출처_한국경제


여자를 교묘하게 꼬시는 기술을 구사하는 ‘픽업 아티스트(pickup artist)’라는 직업, 알고 계시나요? 본래 “타인의 신뢰(confidence)를 얻는 기술(art)로 사기치는 사람”이라는 뜻인 “콘 아티스트(con artist)”가 어원인 말로, 사기나 다름없는 기술을 사용해 여성을 꼬시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불문율 같은게 있는데, 사귀자고 말하기 위해서는 같이 보낸 시간이 최소 7시간 이상 필요하다” 입니다. 그 이전에 고백하면 너무 타이밍이 빠르고, 7시간을 한참 지나버리면 연인이 아니라 친구로 간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2시간 짜리 영화 두 어 번 보고, 한 두 시간 식사를 같이 했다면 적당히 고백 타이밍이 오게 되는 것이지요. 


생리주기도 동조되는 ‘호메오스타시스’의 놀라움


그렇다면 영화를 같이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현상 때문입니다. ‘항상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이 말은 본래 유기체가 자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신진대사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의 체온이 언제나 일정하게 36.5도 전후를 유지하는 과정도 호메오스타시스의 일부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화 같은 가상의 정보에도 호메오시스타스를 일으킵니다. 액션 영화를 보면서 두근거리고 손에 땀을 쥐는 이유가 바로 화면 속 내용과 신체가 동조했기 때문입니다. 호메오스타시스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 때도 동조의 형태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오랜동안 룸메이트로 같이 지낸 여성의 생리주기도 점점 동조한다고 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생체리듬이 전반적으로 동조하게 된 결과지요. 같은 영화를 보는 이유는 영화를 보는 공간과 경험을 공유해, 호메오스타시스를 일으키기 위해서 입니다.


하품의 전염도 호메오스타시스의 영향


부부 중에서 이혼이나 권태기 같은 위기를 겪지 않는 부부는 “영화를 같이 보고,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같은 영화를 보면 서로 기억을 공유하게 되고, 대화를 나눌 소재가 생기게 되지요.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호메오스타시스가 일어나게 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동조가 더욱 깊어져 서로에 대한 오해나 불만도 자연스럽게 꺼내고 해결할 수 있게 되지요.


영화를 통해 하나가 되는 ‘이야기 소비’


일본의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大塚英志)는 1980년대 새로이 등장한 ‘문화종족’으로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바탕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오타쿠(おたく)’의 행동양식을 가리켜 ‘이야기 소비(物語消費)’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란 어려운 말로 ‘거대서사’라고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사회가 전반적으로 공유하는 ‘커다란 이야기’입니다. 


오쓰카 에이지의 <이야기 소비론> 표지

 

커다란 이야기는 개개인에게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본래 사람은 자기 외부에 있는 커다란 이야기 속의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 무엇을 알아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 같은 플롯에 맞춰 삶의 의미나 목표를 인식하게 되지요. 과거에는 종교나 사상 등이 커다란 이야기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일본은 버블경제로 호황을 이루었고 모두가 공유하는 커다란 이야기가 힘을 잃고 개인의 욕망이 더 중요한 사회로 변해갔습니다. 


이때 일부 젊은이는 종교나 사상 대신 애니메이션 세계를 가상의 커다란 이야기로 삼았고,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사람과는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친한 친구처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확고히 하기 보다, 마치 대량생산된 상품처럼 ‘소비’하는 개인주의적인 젊은이들. 그들이 초창기 오타쿠였습니다.


영화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훌륭한 도구


오타쿠가 되라는게 아닙니다. 이야기 소비를 응용해서,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정체성을 동조하라는 말입니다. 


부부는 나이가 들면 닮는다는 것도 호메오스타시스의 영향일지도?


권태기는 상대방에게 너무 익숙해져 생깁니다. 그래서 외부에 공유하는 무언가가 없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늦둥이를 보거나, 손자를 돌보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라는 조언을 많이 하지요? 영화는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통의 주제’가 되어줍니다. 돈도 얼마 들지 않지요. 오랜만에 영화관에 같이 가는 것도 좋고, 집에서 ‘굿 다운로드’하게 구매한 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좋지요. 


만약 영화 취향이 같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중요한 건 영화가 아니라 공통점을 만들고 호메오스타시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연극, 오페라, 뮤지컬도 좋고,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을 같이 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서로 이야기를 할 만큼 내용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어줍니다. 이번 기회에 상대방이 좋아하는 영화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