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 09:19ㆍ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권영부, 동북고등학교 수석교사·NIE한국위원회 부위원장
#강아지를 키우며 언론을 생각하다
끝내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몇 날 며칠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던 아들 녀석이 저지른 만행이다. 친구 집에서 보쌈해온 강아지라고 했다. 어찌할 수 없이 강아지를 받아들였다. 갓 난 강아지의 처연한 눈빛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무너졌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품속으로 기어드는 녀석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제 출타 중에 강아지 안부를 묻는 꼴이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강아지의 여러 가지 습성을 관찰하게 된다. 바깥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짖어대고, 무릎 사이를 파고들며 온갖 아양을 떨기도 한다. 어떤 날은 주인이 오든 말든 잠에 취해 있기도 한다. 작은 공을 물고 와서는 툭 던져 놓고 놀아달라고 꼬리치기도 하고, 쌓아 둔 물건을 무너뜨리고는 짐짓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강아지의 여러 습성을 언론의 형태에 빗대는 말들이 많다. 빗댈 때는 강아지라는 부드러운 표현은 걷어내고 ‘개’라는 말을 붙여 비꼰다. 강아지가 크면 개가 된다. 하지만 그냥 아무렇게 키우면 골칫덩이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따끔하게 가르쳐야 한다.
#언론의 형태를 개에 비유해 생각하다
언론은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특정 문제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는 일을 한다. 아주 중요한 쟁점인데도 보도하지 않으면 그 사안은 사그라진다. 거꾸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뉴스도 되풀이해 보도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이 때문에 언론은 중요도를 가려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지닌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치와 경제 권력이 판치는 세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이런 구조 속에 놓이면 권력의 등살 때문에 어느 누구도 편안하게 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언론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필요가 이유 중에 하나다.
언론의 형태를 개와 비교하면 엇비슷한 게 있다.
첫째, 워치독(Watchdog) 1처럼 행동한다. 언론은 ‘감시견’처럼 끊임없이 사회를 감시해야한다. 문제가 보이면 소리 높여 짖어야 한다. 그래야 만이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고, 불의가 자리 잡지 못한다. 워치독은 시스템 고장으로 기계가 돌아가지 않거나 프로그램 착오로 특정한 시스템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감시하는 장치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처럼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작동하도록 살피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워치독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감시해야 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밖으로 사회를 비추고 안으로 자기를 반성해야 제대로 된 언론이기 때문이다.
둘째, 랩독(Lapdog) 2처럼 산다. 권력의 무릎에 올라타고 스스로 애교를 부리며 맛있는 것을 챙겨먹는 ‘애완견’ 같은 언론이 있다. 언론이 랩독에 머물면 주인의 권력을 결코 비판할 수 없다. 권력의 잘못은 눈감고 엉뚱하게 다른 사안을 물고 늘어지는 언론은 권력의 시녀에 불과하다.
셋째, 가드독(Guard dog) 3처럼 군다. ‘경비견’이 자기 집만 바라보며 밤낮없이 짖어대면 수많은 이웃들이 잠을 설칠 수밖에 없다. 제 집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 생각도 해야 한다. 언론이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에 빠져 자기 권력을 경비하는데 힘을 쏟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 권력을 지키려 아등바등할 것이고, 자신의 이익만 쫓을 것이다. 경비견 행동이 지나치면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 편파보도를 일삼을 수도 있다. 자신의 권력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되는 집단을 해코지하기도 한다.
넷째, 슬리핑독(Sleeping dog) 4처럼 뒹군다. 밖이 매우 소란한대도 그냥 눈감고 코고는 ‘수면견’은 언젠가는 버림받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숱한 뉴스를 쏟아낸다. 그것들을 살펴 중요도에 따라 뉴스로 전달하는 게 언론이 할 일이다. 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뉴스가 생겼는데도 천하태평으로 잠만 자는 언론을 대할 때가 있다. 이런 언론은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공평성의 잣대로 뉴스를 가려 보도해야 한다.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할 때 대강 보고 넘길 수 없는 게 언론의 형태이다. 언론의 형태를 살피고 따지는 것은 뉴스 수용자인 우리들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다. 우리는 저스티스독(Justice dog)과 같은 ‘정의견’을 원한다. 공명정대한 언론이야 말로 우리를 제대로 지켜주는 든든한 지킴이가 될 명견이기 때문이다. 청정한 뉴스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서도 정의견을 키워야 한다.
[참조자료]
JTBC, '[앵커브리핑] '워치독, 랩독, 가드독…그리고'', 201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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