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4. 15:15ㆍ특집
허위정보 대응책, 무엇이 있나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가짜 뉴스를 규제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기관이 직접 나서 가짜 뉴스를 판단할 경우
‘검열’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시민사회의 자율적 협력을 통해
허위정보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글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언론학박사)
2016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가짜 뉴스(fake news)’는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정치 지형이 양극화된 상황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가짜 뉴스’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며 건강한 민주주의의 작동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탄핵과 조기 대통령 선거로 이어진 정치적 변동의 와중에 온라인 공간에서의 허위정보 생산과 유통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대책은 먼저 입법부의 법안 발의로 표현됐다. 2017년 이래 ‘가짜 뉴스’ 규제와 관련해 22개의 법안1)이 발의됐다. 정부도 나섰다. 2018년 10월 국무총리가 “악의적 의도로 가짜 뉴스를 만든 사람, 계획적·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사람은 의법 처리해야 한다”며 관련 부처의 대응을 지시했다.
법무부 장관은 허위 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죄나 명예훼손죄 등 기존 법을 활용해 적극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1. 발의된 법안들은 http://factcheck.snu.ac.kr/documents?doc_type=law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U의 협력적 자율규제 모델
그러나 다수의 법률안들과 정부의 대책은 ‘가짜 뉴스’의 개념 정의부터 실패하고 있다. 특히 가짜라는 것을 누가 판단할 것인지, 어떠한 절차를 거쳐서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헌법적 권리의 침해라는 민감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가짜 뉴스가 무엇인지 정부기관이 나서서 판단할 경우 검열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허위정보에 대한 대책을 법적 규제나 위로부터의 강제가 아닌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대응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EU의 협력적 자율규제 모델이다. EU집행위는 언론계, 학계, 팩트체커, 인터넷 플랫폼 기업 등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다양한 층위의 민간 전문가들을 동원해 2018년 4월 ‘온라인 허위정보 억제하기: EU적 접근법(Tackling online information: a European approach)’2)을 내놓았다. 이를 기반으로 멀티이해관계자포럼(multi stakeholder forum)을 구성해,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허위정보에 대처하기 위해 실행할 수 있는 강령(Code of Practice on Disinformation)3)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게 했다. EU의 협력적 자율규제 모델의 특징은 인터넷 플랫폼 기업을 제재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허위정보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구책을 마련하게 했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EU 집행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모질라, 위키미디어 등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광고업계, 그리고 이들이 만든 강령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조언하는 언론계, 시민단체, 팩트체커, 학계 인사 등 민간이 자율적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2. https://ec.europa.eu/digital-single-market/en/news/
communicationtackling-onlinedisinformation-europeanapproach, 약칭으로 Communication으로 불린다.
3. https://ec.europa.eu/digital-single-market/en/news/code-practicedisinformation
팩트체크 모델
허위정보를 막기 위한 민간의 노력으로 또 하나 주목받고 있는 것은 팩트체크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팩트체크 기관의 수를 집계하는 미국 듀크대의 듀크리포터스랩 (Duke Reporters’ Lab)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 팩트체크 기관인 폴리티팩트4), 팩트체크닷오르그5),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6) 등을 포함해 팩트체크 기관은 2018년 2월 현재 53개국 149개에 이른다. 미국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확산된 팩트체크는 당초 “그는 이렇게 말했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고…(he said, she said)”라며 발언자의 발언 내용에 관해 진실성을 검증하기보다는 발언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는 데 그친 전통적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난민, 성적 소수자 등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허위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이를 검증하는 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민간 자율의 팩트체크 모델로, 대학(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과 언론사가 협업하는 SNU팩트체크7)가 2017년 3월부터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는 언론사들이 사실 여부를 가린 팩트체크 콘텐츠를 게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제휴 언론사들은 이 플랫폼에 콘텐츠를 올리는 협업 시스템이다. 제휴 언론사는 2019년 2월 현재 27개사다.
SNU팩트체크의 특징은 보수, 진보로 분류되는 언론사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언론사들은 동일한 팩트체크 대상에 대해 교차검증을 할 수 있으며, 판정에 이르기까지의 검증 과정은 가감 없이 공개된다. 최근에는 ‘조선족은 강력범죄의 원흉이다’8), ‘5·18 민주유공자가 가산점 받아 공무원직을 싹쓸이한다’9) 등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는 허위정보들을 통계, 관련 법률 등 구체적인 물적 증거들을 통해 검증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허위정보의 생산 규모와 속도, 목표로 하는 집단에 이르는 도달률의 정확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팩트체크를 하는 언론인들은 유통되는 정보의 맥락을 제시하고, 진실성을 판별할 수 있는 증거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이 스스로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4. https://www.politifact.com/
5. https://www.factcheck.org/
6.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factchecker/?utm_term=.71a03ffff53c
7. http://factcheck.snu.ac.kr/
8. http://factcheck.snu.ac.kr/v2/facts/1217
9. http://factcheck.snu.ac.kr/v2/facts/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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