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4. 17:27ㆍ특집
미디어 과몰입, 과의존 현상이란?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게임에 깊이 빠져드는 청소년들을 향한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게임과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원인이 아이들의 ‘의지 부족’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츠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의존하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적이고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소개한다.
글 구본권 (한겨레 미래팀 선임기자 / 《뉴스, 믿어도 될까?》 저자)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을 개정해 2022년부터 게임 중독(게임이용장애 Gaming Disorder)을 공식질병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전문가들의 오랜 논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국내에서는 논란과 반대가 치열한 사안이다.
‘게임 과의존’을 사회적 대응과 치료가 필요한 병리적 현상으로 보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새롭지 않다. 16살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0~6시) 게임 이용을 차단하는 온라인 셧다운 조처 때도 사회적 논란이 컸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한 청소년보호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2019년 6월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완화해 게임 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셧다운제 도입 이후 모바일 게임 대중화, 다양한 우회 접속 방법 등장으로 제도의 실효성이 줄어든 것도 배경이다. 치료와 대응이 필요한 게임 중독 현상은 있지만, 셧다운제와 같은 기술적 조처와 법은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나친 소셜 미디어 사랑, ‘행위 중독’
중독으로 이어져 치료와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것은 게임만이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 서비스인 소셜 미디어도 미디어 과몰입, 과의존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소통과 협력, 생존을 위한 소통의 도구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고 오래전부터 일부 미디어에 대한 과의존 현상도 보고되어 왔다. ‘책벌레(간서치)’, ‘드라마귀신’ ‘영화광’이라는 표현이 말해준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극소수에 한정됐고 증상도 치료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스스로 조절 가능하고 다른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아 중독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최근 소셜 미디어와 게임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과의존, 과몰입 현상과는 다르다.
하지만 동일한 콘텐츠인 경우에도 디지털 미디어와 아날로그 미디어는 이용 행태의 차이가 상당하고, 이에 대한 이용자 반응과 사회적 영향이 다르다는 점은 미디어 과몰입, 과의존 현상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임을 의미한다.
이번에 세계보건기구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한 데 대해, 국내 게임업계 등에서는 온라인게임보다 훨씬 중독 현상이 심한 술과 담배 등을 예시하며 게임을 중독 물질로 분류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세계보건기구 결정은 그동안 중독의 개념과 정의가 알코올, 담배, 마약과 같은 물질을 대상으로 형성되어 왔는데 ‘행위 중독’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추가했다는 게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국제질병분류의 ‘행위 중독’에는 도박이용장애, 게임이용장애, 기타장애 등 세 가지가 포함됐다. 소셜 미디어 중독, 영상 중독, 쇼핑 중독 등도 진단과 치료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원제 Irresistible)》의 저자인 뉴욕대 교수 애덤 알터는 그동안 중독에 대한 이해가 주로 물질 중독에 국한되어 있어 지나치게 협소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디지털 콘텐츠와 소셜 미디어 서비스 이후 중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졌다. 아날로그 시절 일부의 책과 드라마, 영상 과몰입 행위가 문제되지 않았던 데에는 인간의 인지적 노력과 자원이 의도적으로 투입되는 경우에만 그러한 행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용자 자신이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과의존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날로그 미디어 중독과 과의존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 저절로 유지되지도 않는다. 유사한 콘텐츠가 디지털 미디어로 바뀌면서 이용자의 반응과 개입 수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됐다.
이용자의 의지박약 때문?
거대 산업화한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소셜 미디어 설계자는 이용량 증대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용자의 자제력을 허물기 위한 과학적·조직적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과 전문가들은 자극에 대한 인간 반응 방식과 영향을 분석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하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디지털 시대의 환경과 여건, 체험은 중독에 훨씬 취약하다. 기술은 중독에 취약한 인간의 특성을 고려해, 과몰입과 중독을 유발하는 쪽으로 발달하고 있다.
2007년 페이스북에 입사해 2011년까지 부사장을 지낸 차마트 팔리하피티야는 페이스북의 역할에 대해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공개 강연에서 페이스북을 “도파민에 의해 작동하는 단기 피드백 순환고리(short-term, dopamine-driven feedback loop)”라고 규정하며, 페이스북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파괴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이며 공동창업자이고 음원 공유 사이트 냅스터 설립자인 숀 파커도 2017년 “나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양심적 반대자’가 됐다. 페이스북과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심리적 취약점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성공을 일구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게임 등은 방대하고 정교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별 접속 시간과 활동 내용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에 대한 과몰입,
중독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게임 서비스 등은 방대하고 정교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별 접속 시간과 활동 내용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에 대한 과몰입, 그리고 중독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아날로그 콘텐츠 이용이 높은 집중력과 적극적 의도 등 이용자가 주도하는 인지적 자원 투입을 통해 가능했던 것에 비해 최근의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 중독은 이용자의 적극적 개입 없이도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졌다.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 중독이 등장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인과 사회는 정확한 통계와 추세 등 현실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병리적 상황은 디지털 기기 보급과 더불어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과의존 현상은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원인과 해결책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상황 파악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의 중독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이용 시간 증가와 과의존 피해 보고 현상을 수용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우선이다. 기업 이윤을 늘려주는 이용 시간 증대를 위해 인간의 인지적 한계와 심리적 취약성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의 작동구조를 기술과 법률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도 성급하다. 오히려 이용자들이 디지털 미디어의 구조와 속성, 그리고 중독적 이용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이면서 성찰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용자 차원의, 그리고 사회적 차원의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가 요구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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