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1. 10:30ㆍ특집
노년층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사례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고 나날이 새로운 IT기술이 등장하는 디지털 세상에
새로운 소외계층이 생겼다. 이 모든 변화를 따라가기가 벅찬 노인들은 현대 사회의 디지털 문맹자이고
소외계층이다. 노인들의 신체적, 인지적 특성을 감안한 미디어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글 김현경 (미디어강사)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쓰지 못하는 현실을 하소연 하던 어르신들이
조금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알아가며 “알아야 재미도 있지.
우리 같은 노인들한테 알려줘서 고맙수”라며 배움의 기쁨을 전하는 순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삶의 향기가 묻어 나왔다.
잘 된 사람 곁에는 나를 믿어주고 이끌어 준 진정한 어른이 있었다는 공동체 세대의 어른들. 그분들 손에 쥐어진 디지털 기기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어르신들도 계시지만, “알아야 쓰지?”하며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그래서 ‘공감과 소통’을 주제로 자식, 손주 세대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획했다. 물론 이제는 배우는 것이 싫다고 밀어내는 어르신들도 계셨지만, 더 많은 분들이 공감과 소통의 고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 주셨다.
‘내 인생의 뉴스’ 두루마리 만들기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한 ‘그때 그 시절 10대 뉴스’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인생의 아름답고 짜릿했던 순간,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언제였는지 기억해낸다. 오랜만에 해묵은 앨범을 펼쳐볼 수도 있고 잠시 기억을 소환해 옛날로 돌아가 추억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먼저 기획서에 인생의 뉴스를 미리 적어본다. 시점은 자유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정할 수도 있고 어느 특정한 순간을 기점으로 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에 국내외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다. 기억이 강렬하게 되살아난다면 그 자료를 찾아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확인한다. 잘 모르겠거나 기억이 희미하다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해당 연도와 날짜를 찾아 함께 제시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역으로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뉴스가 일어날 때 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추억해가며 내 인생의 두루마리에 들어갈 기획서를 완성했다.
이제 그 기획서를 바탕으로 ‘내 인생의 뉴스’ 두루마리를 채워간다. 두루마리 위쪽은 내 인생의 뉴스를 채우고, 하단에는 그해 그날 일어났던 국내외 뉴스를 적거나 관련 뉴스 자료를 인쇄해 붙인다. 사진 출력은 수업 현장에서 바로 가능하도록 휴대용 사진 인화 프린터기를 준비해 사용했다.
수업에 참여했던 윤순옥 선배시민은 즐거운 목소리로 말한다. “네이버에서 옛날 신문 자료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자료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래서 알아야 한다니까.” 그때 그 시절을 회고하며 목소리가 커지는 선배시민도 있었다. 황학진 선배시민은 “내가 입학시험 볼 때 서울1호선 지하철이 생겼어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시간이 참 많이 흘렀네요!” 하며 추억의 뉴스들을 끊임없이 기억해냈다. 내가 태어날 때, 자녀가 태어날 때 등 뉴스를 비교하며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선배시민도 있었다. 올해 퇴임을 하고 친정어머니와 처음으로 긴 여행을 다녀왔다는 한 선배시민은 “2019년을 의미 있는 해로 잡고 2019년의 10대 뉴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선배시민들끼리 주고받는 인생 곡선에서 만나는 뉴스들이 후배시민인 필자에게는 (공감하는 뉴스도 많았지만) 낯설고 아득하기만 한 역사였다. ‘내 인생의 뉴스’를 두루마리에 담고 보니, 인생 참 짧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한 선배시민의 말씀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선배시민들 모두 잘 살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10대 뉴스 사이사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촘촘히 찍힌 수많은 점들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분들의 땀 흘려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녹아 있기에 존경받아야 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영상으로 찍은 자서전
어르신들은 젊은 날의 추억을 꺼낼 때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시절 그랬었다”는 회고록 같은 삶의 족적들이 선배시민의 자부심이고 역사처럼 시간의 다리가 되어 있었다. 그 다리를 뒤돌아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내 인생의 뉴스들’이 한 페이지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뉴스는 영상으로도 탄생했다. 그 바탕이 된 뮤직비디오는 가수 왁스의 ‘황혼의 문턱’이다. 다함께 이 뮤직비디오를 감상한 뒤 서툴지만 영상 자서전 ‘황혼의 문턱’ 제작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영상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영상 자서전 ‘황혼의 문턱’에서 제작 과정>
영상 자서전 수업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한 선배시민이 색동 커버의 오래된 앨범을 두 권이나 가지고 와서 사진을 골라 달라고 했을 때이다. 필자를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사진을 고르고, 간추린 사진을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찍어 영상 제작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선배시민의 갤러리에 담았다. 물론 60년도 훨씬 지난 자신의 돌 사진과 결혼사진, 그리고 자녀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순간을 찍은 사진까지 스토리에 맞게 사진을 잘 추려온 선배시민도 있었다. 스마트폰 조작도 서툰 어르신들의 원활한 영상 제작을 위해 도우미를 자청한 세 분 선생님들 덕분에 훌륭한 완성작들이 나왔다. 완성된 영상 자서전들은 여기저기서 플레이됐다. 인생을 통째로 들켜버린 것처럼 부끄러워하면서도 서로 영상 자서전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제는 역사가 되어 버린 그 시절의 뉴스까지 회고하면서 ‘황혼의 문턱’은 인생 1막의 멋진 영상 자서전이 됐다고 좋아했다.
팩트체크도 가능!
어르신들께 활자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늘 난제다. 시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글자를 모르는 어르신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고 보는 뉴스와 함께 OX로 뉴스와 생활정보를 팩트체크해 보기로 했다.
우선 수업 주제를 ‘100세 인생 건강하게’로 정했다. 수업은 100세 인생을 건강하게 즐기기 위한 건강 정보와 어르신들께 유익한 시사정보 등 다양한 종류의 정보를 20여개의 퀴즈로 만들어 함께 풀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어르신들은 퀴즈에 대한 정답이 공개될 때마다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를 반복하기도 했다. OX 퀴즈 시간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시간이었다. 필자는 여기저기에서 모은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퀴즈가 진행되는 내내 그분들의 생활 속 지혜를 덤으로 배울 수 있었다.
퀴즈에 이어서 노래 개사 활동을 했다. 개사할 노래는 ‘백세인생(노래 이애란)’이었다. 먼저 중간 중간에 빈칸이 있는 노래 가사를 배포한 뒤, 함께 백세인생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가사의 빈칸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로 채우도록 했다. 다행히 모든 참가자가 글자를 쓸 줄 알아서 무난하게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로 시작되는 가사의 ‘젊어서’와 ‘칠십 세’, ‘팔십 세’, 그리고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텐데 또 왔냐고 전해라”의 ‘알아서 갈 텐데’ 등 가급적 글자 수가 적은 부분을 빈칸으로 바꾸고 그 빈칸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로 채우게 했다. 어르신들은 ‘아직 억울해서 못 간다’, ‘이제는 가려 하는데 또 왔냐’, ‘손주 보고 싶어서 아직은 못 간다’, ‘즐거운 일이 아직 남아서 못 간다’,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또 왔냐’,‘ 구십 세에 나는 부처님하고 같이 간다고 전해라’ 등 코끝이 찡해지는 다양한 사연으로 ‘백세인생’을 채웠다. 단 연령대를 고려하여 지나간 시간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나이에 해당하는 부분을 빈칸으로 만들면 더 공감 가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사가 마무리 된 후에는 각자 개사한 곡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우리도 AR 즐긴다
이제는 어플도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시대이다. 특히 뉴스를 즉각 확인하고 동영상 뉴스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AR 앱이 인기다. 선배시민들은 서커스(circus) AR 앱을 체험하는 순간,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탄성을 질렀다. 서커스 AR 앱을 활용하여 동영상 뉴스를 시청하고 기사 작성도 했다. 갤러리에서 최근에 있었던 상황이 잘 드러나는 사진을 선택해 업로드 한 다음 본문 쓰기를 한다. 6하 원칙에 의해 사진의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 쓰기를 하기도 하고, 포토에세이 형태의 글을 쓰기도 했다. 앱 사용보다 더 힘든 것이 글쓰기라며 힘들어 했지만, 완성된 작품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훨씬 더 커 보였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쓰지 못하는 현실을 하소연 하던 어르신들이 조금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알아가며 “알아야 쓰고 재미도 있지. 우리 같은 노인들한테 알려줘서 고맙수”라며 배움의 기쁨을 전하는 순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삶의 향기가 묻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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