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0. 10:32ㆍ수업 현장
국회의원 선거, 국가 건설·경영 원리도 머리에 쏙쏙
인기 게임 응용한 시사‧정치 수업
최근 미국에서는 게임을 만드는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게임을 이용해 전통적인 연구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풀거나, 집단지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거나 입법부의 역할을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식으로 가르치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학생들이 직접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글 박미영 (한국 NIE 협회 대표)
“스포츠토토, 안 하는 애들은 거의 없어요.” “맞아요. 남학생들은 거의 다 한다고 보시면 돼요.” 고등학교 학생들의 말입니다. 학생들은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인 동시에 놀이하는 호모 루덴스입니다.
요한 호이징하는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의 범주로 ‘경쟁, 모의’를 제시했고, 로제 카이와는 여기에 ‘운, 현기증’ 두 개를 추가했죠(《놀이와 인간》). 남학생들이 열광하는 스포츠토토(운)나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현기증)와 달리 ‘경쟁’과 ‘모의’는 호모 루덴스인 학생들과 시뮬레이션 게임의 형태로 수업 시간에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는 놀이입니다.
*초등 수업
●총선? 리더의 조건은?
“오잉? 그게 뭐예요?”
칠판에 커다랗게 ‘총선’이라고 수업 주제를 필기하자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습니다. “혹시 생선 이름이에요?” “혹시 총을 선물한다??”
초등학생들은 총선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총선=선거의 한 종류’라고 설명하며, 직접 참여해본 선거 경험을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학교 회장 선거요.” “학급회장 선거요.” “반장 선거요.” 초등학생이었지만 이미 학교에서 선거를 치렀던 경험이 많았습니다.
‘총선’은 과연 누구를 뽑는 선거일지 추측해보도록 했더니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습니다. “대통령이오.” “하하. ‘대선’이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고, ‘총선’은 또 다른 지도층,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야”라고 힌트를 주었죠. “흐음 지도층이라면…, 회사의 회장이오?” “아님 건물주??” 자기들도 웃긴지 키득거리며 답하더군요.
“혹시 국회의원을 어떻게 뽑는지 아는 사람?” “몰라요, 대통령이 시키나....요?....겠죠?”
“쌤, 근데 국회의원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학생들은 ‘국회의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면서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학생도 국회의원을 할 수 있는지, 국회의원은 시험을 봐서 뽑는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①우리가 학교에서 반장을 정할 때 △투표로 선출하고 △반장은 학급 대표로서 학급회의에서 우리 반을 위해 각종 규칙(예: 지각을 줄이기 위해 벌금을 걷는다)을 정하는 것처럼, ②국회의원도 △투표(총선)로 선출하고 △국민대표로서 국회에서 국민들을 위해 법을 만든다고요[사진1].
그리고 학급의 리더, 국가의 리더가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리더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희생정신과 배려심을 꼽았습니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꼽은 학생도 많았습니다[사진2].
●예-아니요 게임: 국회의원 자격을 논하다
“평소 어떤 게임을 좋아하지? 쌤에게 소개해 줄래?”란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냥코대전쟁, 샌드위치, 베이컨, 좋은 피자 위대한 피자, 피아노 타일, 배틀 그라운드… 등’ 게임 이름을 줄줄 읊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게임을 소개하느라 교실이 북새통이 됐죠[사진3].
“오늘 우리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공부할 건데….” 설명을 하다가 말을 멈추고 학생들의 표정을 훑어보았습니다. 다들 시무룩하게 실망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헐, 뭐예요, 그건 진짜 공부잖아요. ㅠㅠ”
다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공부할 건데, 게임을 만들 거야.”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앗싸, 게임을 만든다고요? 게임 설계하는 거죠? 만들고 진짜로 게임도 하나요? 질문이 10가지도 넘었습니다.
①먼저 ‘국회의원’ 자료를 수집한 후
②그 자료를 바탕으로 ‘예-아니요 게임’을 만들어보자.
학생들은 후다닥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검색을 시작했죠. 국회의원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몇 살부터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어떤 경우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는지 등 자기가 궁금한 것을 검색했습니다.
시사에 관심이 많던 고학년 학생이 다시 큰 소리로 질문했습니다. “쌤, 국회의원 중에 범인이 많대요. 왜 그런 거예요?” 옆에 다가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더니 검색 화면에 ‘21대 국회의원 예비후보자 범죄 전력 조회’가 있더군요. “아이쿠야, 아니 이걸 어디서 찾았어? 이 자료 말고 백과사전 쪽으로 검색하는 것은 어때?” 말도 잘 듣는 착한 초등학생들이라 금세 다른 자료를 찾더군요.
6학년 호준이는 뚝딱 ‘예-아니요 게임’을 완성했습니다. ‘25세 이상인가요?’란 항목의 ‘아니요’는 ‘나이 더 먹고 옵시다’, ‘범죄 경력이 있나요?’ 항목의 ‘예’는 ‘다시 태어납시다’로 연결했습니다. 국회의원 탈락이란 뜻이죠[사진4].
지후(5학년·여)는 ‘이만기와 싸움’ 항목의 ‘승리’는 ‘아쉽지만 다음에’, ‘이중국적’ 항목의 ‘예’는 ‘당신은 out 됐다’로 연결했고요. 예서(5학년·여)는 ‘선거에 나감’ 항목의 ‘패배’를 ‘4년 기다리기’로, 민우(6학년·여)는 ‘법 지식’ 항목의 ‘아니요’를 ‘공부 더 하고 오세요’로 연결했습니다.
학생들은 ‘예-아니요’ 게임판 만드는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국회의원은 ①25세 이상의 ②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하며 ③국민을 대표해 법 제정하는 일을 하고 ③임기는 4년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국회의원 메이커 게임
∙이런 아이템 어때요?
‘프린세스메이커’는 딸을 10세의 소녀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키워나가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소녀는 플레이어의 지시대로 무술 훈련, 교양수업을 받으며 체력, 지력, 감수성, 도덕심, 기품 등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데, 이 역량 수치가 엔딩(공주, 기사, 백수 등)을 좌우합니다. 우리는 프린세스메이커를 흉내 내어 ‘국회의원 메이커’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①먼저 국회의원이 하는 일을 알아본 후
②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아이템(역량)이 무엇인지, 어떻게 아이템을 획득하는지 정하고
③구체적인 게임 방법을 설계하기로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일을 잘 하려면 어떤 아이템(역량)이 필요할까?”
“듣기요.” 준우(3학년·남)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회의를 할 때도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라며 국회의원이 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듣기 아이템’이라고 했습니다. 플레이어가 ‘게임 속 아이를 듣기 학원에 보내서 매일 배운 것을 시험’ 보게 하면 듣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전 ‘협동’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선우(5학년·여)가 말했습니다. “국회의원은 혼자 일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회의하며 뭔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라면서 “국회의원이 협력해서 일하려면 서로 호감을 느껴야 하고, 선거에서도 호감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호감 아이템’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선우는 국회의원이 되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함께 청소하기(협동),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있는 할머니 돕기(호감), △밥그릇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기(약속), △4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의 말 듣기(듣기)를 정했습니다[사진5].
준우의 설명에 따르면 △4가지 아이템(듣기-호감-약속-협동)의 합계가 90레벨이 되어야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20분 안에 90레벨을 얻지 못하면 게임 오버! △그러면 다시 태어나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사진6].
∙우리 지역 국회의원으로 추천합니다.
“쌤, ‘추경 요청’이 뭐예요?” “아빠한테 용돈 더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나라에 돈을 더 달라고 요청하는 거야.”
“왜요? 마스크 사려고요?” “아하, 환자 치료하는 데 돈이 드니까. 그래서 돈을 더 달라는 건가 봐. 그치?”
학생들은 기사제목을 읽다가 모르는 낱말의 뜻을 질문하더니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말하기도 했습니다. 슬프게도 대구 지역에 코로나19가 확산됐다는 뉴스를 읽었거든요.
기사1) 속 국회의원은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대구 지역에 추경예산을 편성해 달라, 개학을 연기하자, 시험도 연기하자”는 요청을 했죠[사진7]. 학생들은 만약 우리 지역이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반장 선거할 때 반장 후보를 추천해 본 적 있는 사람?” “네, 추천해봤어요.”
“오늘은 국회의원 후보를 추천할 거야.” 동화 속 인물, TV에 나오는 사람, 게임 캐릭터, 역사 인물, 만화 주인공 등 아는 사람 중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정말요? 진짜로 게임 캐릭터를 추천해도 돼요?”
해성(3학년·남)은 브롤스타즈 게임 속 쉘리를 추천했습니다. 용감하고 똑똑해서 대구 국회의원처럼 코로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잘 물리칠 것 같다는 이유였죠[사진8].
서영(5학년·여)과 선우는 공교롭게도 같은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멤버들끼리 춤 연습을 하며 협동을 했으니 국회의원이 되어도 협동을 잘할 것 같다는 이유로 BTS를 추천한 것이죠[사진9]. 서라(6학년·여)는 백성들을 위해 앙부일구를 만들고 세종대왕을 잘 도운 것을 보면 국회의원의 업무를 잘 수행할 것 같다며 장영실을 추천했습니다.
*중등 수업
●심시티는 도시 건설, 우리는 국가 건설
“쌤. 나중에 발표할 거죠? 우리 모둠 먼저 발표시켜주세요. 우리가 1빠로 신청한 거예요. 꼭이요.” 세상에나, 중학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다뇨. 특히 남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자리에 남아 계속 토의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심시티는 “당신만의 도시 제국을 만들고 경영하라(Create and control your own urban empire)”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게임입니다. 미국 <컴퓨터 게이밍 월드> 선정 명작 게임 10에 들어갈 정도로 대표적인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시장 역할을 하며 도시를 건설하고 경영합니다. 우리는 심시티 게임을 흉내 내어 국가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얘들아, 이 조건에 맞춰 국가를 디자인하도록!!” 학생들에게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표1] 국가 건설 게임 조건
∙지정학적 위치
“우리 아시아를 떠나자.”
“그래, 일단 여기는 떠나자. 한반도는 북한 때문에 위험해.”
“유럽 쪽으로 갈까?”
토의 도중 전쟁사에 정통(?)한 한 남학생이 말하더군요. “안 돼!!!! 2차 대전 때 독일의 망치와모루 작전으로 유럽 전체가 전쟁터가 됐어. 그때 사망자가 2,000만 명이 넘었다고.”
“그래 맞아. 스페인 독감 때도 나라가 붙어 있어서 엄청 많이 죽었다고 했잖아.”
“그럼 미국 쪽으로 갈까?”
“거긴 좀 쫄리지 않냐?”
“섬으로 하자. 하와이처럼”
“하와이? 너무 작은데?”
“하와이의 100만 배 정도 되는 커다란 섬이면 될 듯?”
“오케이! 짝짝짝!!”
4조는 K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태평양의 섬나라로 확정지었습니다.
∙국가 주요 산업
“섬이니까 조선업을 국가 산업으로 하면 되겠다.”
“근데 조선업만 하면 돈을 못 벌 것 같아.”
“섬이니까 해변이 있잖아. 거기서 관광수입을 벌면 어때? 하와이나 보라카이 섬처럼”
“찬성. 그럼 우리나라 주요 산업은 조선업과 관광으로 하자.”
“쌤이 우리 맘대로 만들라고 하셨으니까, 석유도 나오면 어때? K국에 천연자원이 있으면 후손에게도 좋잖아.”
“그러면 다이아몬드 광산도 추가하자. 핑크 다이아몬드 광산. 다이아몬드 중에 제일 비싸거든.”
“주요 산업이 많아지면 일자리도 많아지니까 좋을 듯”
“그럼 나라에 돈이 많으니까 세금을 없애도 되겠다.”
“와와, 우리 K국이 제일 살기 좋을 것 같아.”[사진11]
∙내각 구성하고 장관 내정하기
“이젠 정부를 만들자. 우선 교육부가 있어야겠지? 학생을 교육해야 하니까?”
“광산부도 있어야지. 다이아몬드 캐려면.”
“다이아몬드랑 석유를 캐내야 하니까 채굴부로 하자.”
“이름이 이상해. 생산부가 어때? 다이아몬드, 석유, 그리고 농사도 지어야 하잖아. 먹을 것도 생산해야 하니까.”
“오케이, 그럼 교육부+생산부. 거기에 관광부가 있어야 할 듯?”
“맞아, 근데 다이아몬드랑 석유를 수출하려면 수출부도 필요해.”
“굿굿! 그럼 교육부+생산부+관광부+수출부?”
“음…약이나 이런 것을 수입해야 하니까 아예 외교부로 정하고 외교부에 수출입을 맡기자.”
다시 전쟁사에 능통한 학생이 나서더군요. “섬나라여서 적이 포위하면 우린 망해. 나라는 누가 지키냐, 국방부도 있어야지. 섬이니까 해병대만 있으면 돼.”
“아, 그러면 교육부+생산부+관광부+외교부+국방부. 이렇게 해야겠다.”
“안 돼. 5개는 안 된댔어. 저기 봐, 칠판에 ‘4개 부처로 조직’이라고 쓰여있잖아.”
“그럼 뭘 빼지? 다 필요한 건데??”
한참 고민하던 학생들의 결론입니다. “어쩔 수 없으니, 교육부를 빼자. 인강을 듣거나 학원에서 배우면 되니까.”[사진12]
정부부처를 확정한 모둠에서는 장관을 추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관은 누구로 하지? 관광부 장관으로 트와이스 어때? K국을 알리려면 한류스타가 유리하니까.”[사진13]
“외교부 장관으로 연나라 소대를 추천하고 싶어. 어부지리 고사가 소대에게서 나왔거든. 연나라 소대는 뛰어난 화술로 전쟁을 막은 신하야.”
“생산부 장관은 기계를 잘 알아야 하니 스티브 잡스를 추천!!”
다른 모둠에서도 이순신(국방부), 제인 구달(환경부), 설리번(교육부), 토니 스타크(기술과학부) 솔로몬(법무부) 등 다양한 인재들을 장관 적임자로 추천했습니다.
학생들은 평소와 달리 시간을 아껴가며 국가 건설과 경영 시뮬레이션 수업에 열중했습니다. 발표 후에 ‘내가 이주하고 싶은 나라를 선택’하기로 해서인지, 왁자지껄 웃으며 다른 조의 국가 홍보에 집중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죠[사진14].
학생들은 국가를 설계하며 국가의 3요소인 ‘영토’+‘국민(을 먹여 살릴 산업)’+‘주권(을 행사할 정부)’의 필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게임 수업’에 학생들이 몰입해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으로 수업 보고 끝!!!
1) “김부겸 의원, 대구 패닉. 청와대․ 정총리에 코로나 19추경 요청”. 스포츠경향. 2020.2.19.
http://sports.khan.co.kr/bizlife/sk_index.html?art_id=202002192302003&sec_id=560901
“대구 공공시설, 격리시설로 쓰게 해달라”…정총리 “적극 지원”(서울신문 20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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