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4. 15:18ㆍ웹진<미디어리터러시>
‘정당한 공적 관심사’라면 책임 있는 취재 보도 필요
수사 중인 사건 보도, 어떻게 볼까?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건이나 범죄를 취재해 보도하는 일은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다.
그러나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을 시시콜콜 보도함으로써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오히려 엉뚱한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수사 중인 사건 보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그리고 그러한 보도의 개선점은 없는지 점검해본다.
심석태(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최근 발생한 한강변 의대생 사망 사건은 이런 수사 보도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사례다.
음모론으로 돈벌이에 나선 유튜버들이 주연이었지만
처음 판을 깔고 수익도 챙긴 전통 언론도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었다.
범죄 등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관한 언론 보도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해한다. 어떤 면에서는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경우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수사 중인 사건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보편적인 기사의 대상이다.
무조건 비판은 옳지 않아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보도는 두 가지 본질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다. 먼저 이런 기사는 누군가의 불행이나 비극과 관련돼 있다. 범행을 저지름으로써 자초한 것이든, 범행이나 사고의 피해자가 된 것이든, 누군가의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다. 이런 남의 불행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또 이런 종류의 기사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정보를 담고 있다. 수사라는 것이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뭔가 찜찜하기도 하고 틀릴 위험도 상당한 수사 상황을 꼭 보도해야 할까?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보도하는 이유에 대해 통상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수사의 대상이 되는 범죄나 사고는 우리 사회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으며, 여기에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범죄나 사고가 보도되면 사회적으로 치안이나 안전 관리 등을 점검하고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후속 조치가 이뤄진다. 우범 지역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안전시설을 강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범죄나 수사 상황은 법원도 ‘정당한 공적 관심사’로 인정한다.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권이라는 공권력이 발동해 범인을 찾아 처벌한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이 적정하게 행사되는지 감시하는 것도 수사 보도의 역할이다. 수사는 수사 기관이 알아서 하도록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언론이 감시하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필자도 범죄나 사건 관련 내용을 미주알고주알 방송을 통해 보고 듣는 것이 불편한 때가 많다. 말초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에 불과한 기사도 있다. 수사 보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런데도 수사 보도가 꼭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도를 하기는 하되 원래 목적에 맞는 보도만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정당성을 갖는 보도라면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식으로 제한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최근 언론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에 기대어 조금은 맥락을 벗어난 비판도 볼 수 있는데 원칙적인 측면을 이해해 두는 것이 좋겠다.
사건 보도의 원칙
먼저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을 누가 하느냐이다. 수사 기관은 범죄의 중대성 등을 기준으로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결정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수사 기관의 결정에 앞서 언론이 자체적으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언론은 수사 기관이 공개한 피의자 신상만 보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독립적으로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수사 기관이 공개한 피의자 신상을 보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피의자 신상을 자체 판단에 따라 공개한다면, 그것이 정당한 공적 관심사인지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해당 언론사에 있다.
‘피의 사실 공표죄’를 들어 수사 보도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피의 사실 공표죄는 기본적으로 수사 공무원이 적용 대상이다. 언론은 정당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면 정당하게 취재해서 보도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함부로 보도하는 것이다. 수사 상황을 꼭 수사 기관 종사자를 통해서만 취재하는 것도 아니다. 피의 사실 공표죄는 사안에 따라 수시로 찬반이 엇갈리는 본질적 한계도 있다.
마지막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종종 이 원칙을 들어 확정 판결 이전의 보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사 사법 제도의 대원칙이다. 인권 보호를 위한 헌법의 원칙을 존중해 수사 상황 보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언론은 당사자가 자백하는 내용이라도 직접 확인해 취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은 보도하는 사안이 정당한 공적 관심사인지, 그리고 충분한 사실 검증을 했는지가 언론 보도의 정당성을 가르는 기준인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판단하더라도 수사 보도에서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왜 수사 보도를 하는가’라는 본질을 벗어난 보도들이다. 공익적 차원을 넘어서는, 그저 호기심을 채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보도들 얘기다. ‘언론’이라고 단순화하기에는 매체가 너무 많기는 하지만 전통 매체들의 보도 중에도 선정성이 두드러진 사례가 적지 않다. 사람들의 주목을 모으는 큰 사건이 발생하면 문제가 훨씬 심해진다. 뭐가 그리 급한지 온갖 주장을 검증 없이 옮기기 바쁘다.
언론 소비자와 유튜버도 문제
최근 발생한 한강변 의대생 사망 사건은 이런 수사 보도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사례다. 실종과 시신 발견까지는 통상적 보도의 범위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쏟아진 엄청난 사회적 관심을 틈타 언론은 조회 수 경쟁이라는 늪에 빠져 버렸다. 모든 공적 논의는 ‘사실’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온갖 주장과 의혹이 난무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음모론으로 돈벌이에 나선 유튜버들이 주연이었지만 처음 판을 깔고 수익도 챙긴 전통 언론도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었다.
물론 공급자 측의 문제만 지적해서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호기심을 앞세운 보도에 즉각 반응하는 소비자들, 음모론도 기꺼이 소비해줄 유튜브 시청자들이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책임 의식을 보이지 않는 유튜버들에 대해 이제는 좀 더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 제시한 원칙 가운데 마지막 항목이 ‘시민들도 언론에 대해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도 갖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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