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무가지 신문보다 못한 북한 노동신문

2011. 11. 11. 13:0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신문 6개월 공짜에 상품권 5만 원 드립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신문 일선 지국들에선 경품까지 내걸면서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만약 북한 사람이 와서 “신문 보시오, 보시오”하고 사정하는 남한의 모습을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북한에서 신문 구독은 곧 특권층의 징표입니다. 돈이 많다고 아무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문을 받아보자면 간부가 돼야 합니다.

노동신문은 노동당 기관지이기 때문에 당 간부 우선으로 봅니다. 노동신문은 보통 말단 노동당 세포비서까지 일정한 차례로 배당됩니다. 공장으로 치면 30~40명 단위로 이뤄지는 작업반 당 세포비서, 농장으로 치면 20명 규모로 이뤄지는 분조 세포비서 정도까지 보는 것입니다. 최근 연간 노동신문도 용지난에 시달려 인쇄부수를 줄이면서 분조 세포비서도 노동신문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당 간부가 아닌 지배인처럼 행정 간부라도 노동신문은 배당됩니다.


노동신문을 받지 못하는 작업반장, 분조장 등 말단 행정 간부들은 지방당에서 발행하는 ‘황북일보’, ‘평남일보’와 같은 신문을 받아 봅니다.




그렇지만 요새 북한이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사회로 변하다 보니 돈 많으면 신문을 배당하는 출판물 보급소 등에 뇌물을 찔러주고 노동신문을 받아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출판물보급소는 이렇게 뇌물 받은 사람에게 노동신문을 보내주는 대신 힘이 없는 어느 말단 세포비서의 신문구독을 ‘요즘 발행부수가 줄었습니다’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중단시켜 조절하면 됩니다.

노동신문을 제외한 다른 신문들, 예컨대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 군 기관지인 조선인민군, 청년동맹 기관지인 청년전위 이런 신문도 있긴 있지만 받아보는 사람도 적고 발행부수가 미미해서 큰 의미를 두긴 어렵습니다.

이렇게 당 기관의 말단 세포까지 노동신문을 배달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동신문은 당 정책을 선전하는 선동지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 주민들을 교육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에선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독보라는 것을 합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학급에 노동신문이 1부씩 왔습니다. 김일성대니까 학급별로 노동신문이 오는 것이지 다른 대학은 지방지 정도를 받기 일쑤입니다.

수업이 8시에 시작하지만 학생들은 7시경에 와야 합니다. 와서 우선 30분 동안은 이곳 저곳 청소를 합니다. 이때 ‘정성작업’이라고 불리는 김 부자 초상화 먼지 털기도 꼭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7시 반 경에 학급 초급단체 위원장이 앞에 나서서 오늘의 노동신문 주요 기사를 읽습니다. 노동신문을 보면 그날 중요한 기사가 무엇인지는 검은 띠 등을 통해 다 표시돼 있습니다.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서 들어주어야죠.

이런 일이 대학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침이면 전국의 모든 공장, 기업소, 농촌들에서 다 반복됩니다. 흔히 북한의 조직생활 하면 생활총화 이런 것만 떠올리는데 독보회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조직생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독보회는 북한 체제가 잘 돌아갈 때는 꼬박꼬박 진행됐지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진 다음부터는 집행하는 곳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북한사회를 움직이는 말단 조직세포들의 기능이 마비되는 징표이기도 하죠.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는 신문은 더 이상 ‘신문(新聞)’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평양 같은 곳은 신문이 그나마 그날로 배달됐지만 지방은 신문을 받아보고 나면 ‘구문(久聞)’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평양에서 먼 함경도 같은 곳은 전기난 때문에 기차가 보통 일주일씩 걸려 도착합니다. 노동신문은 기차에 실려 평양에서 지방으로 배달되는데, 기차가 이렇게 늦게 가면 일주일이나 늦게 도착하기 십상입니다. 결국 받아보고 나면 일주일 전의 뉴스가 실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 한국에선 신문 배달을 알바 뛰는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지만 북에선 체신소 ‘통신원’이라는 직업이 따로 존재합니다. 보통 동별로 통신원이 한 명씩 있습니다. 팔에는 ‘통신원’이라고 쓴 완장도 끼고 다닙니다.

통신원은 그날 배달된 신문이나 편지, 전보 등 우편물을 배낭에 둘러메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우편통에 넣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동네라도 신문을 받아보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배낭 하나면 그 마을에 배달되는 신문은 다 들어갑니다.

1990년대부터 북한에 자전거가 많이 보급돼 그나마 통신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그전에는 읍에서 100리 떨어진 마을에도 꼬박 걸어갔다가 와야 합니다. 통신원은 집집마다 새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습니다.

북한의 신문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참고신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한국은 대통령이나 회사원이나 매일 아침이면 똑같은 신문을 봅니다.

하지만 ‘만인 평등 사회’를 선전하는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신문도 어떤 계층에 속하냐를 따져서 배달합니다. 노동신문을 보려면 간부가 돼야 하지만, 그 노동신문을 보는 간부보다 더 위에 있는 ‘참고신문’을 보는 특권계층이 존재합니다.

참고신문을 보려면 중앙당 간부국의 비준대상 간부가 돼야 합니다. 군, 구역으로 치면 군당 책임비서, 조직비서, 보위부장, 보안부장, 행정위원장 등 4~5명에 불과합니다. 참고신문은 노동신문과는 달리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노동당의 입맛대로 가공하긴 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려줍니다.

실례로 최근 아프리카에서 불고 있는 재스민 혁명에 대해 북한은 노동신문에서도 함구합니다. 하지만 참고신문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줍니다. 이집트 사태 같은 경우엔 “이집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시위 동기이며, 무바라크 대통령은 중동에서 친미 외교정책을 펴면서 장기집권을 했지만 오히려 무바라크가 축출될 위험에 처하자 미국이 손을 떼고 배반했다”는 식으로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세습 시도처럼 민감한 사항은 참고신문에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참고신문은 민감한 사항을 싣고 있기 때문에 다 보면 무조건 반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반납하기 전에 일부 간부들이 빼돌려 친한 사람들에게 잠깐 보여주는 일이 적잖은데, 저도 북에 있을 때 이렇게 가져온 참고신문들을 밤새워 읽고 다음날 다시 가져다 주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참고신문 위에 다시 중앙당 비서나 부장급 정도의 최고위직 간부들만 보는 ‘참고자료’라는 것이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장관급 이상인 북한 노동당 비서들만 보는 참고자료라고 하더라도 신문의 생명인 진실과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따져볼 때 남한의 무가지 신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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