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메마른 여인, 책 한 권에 눈물 지은 사연
2012. 1. 3. 09:07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스무살 시절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시절엔 에세이도 좋았고, 시도 좋았습니다. 여자들은 읽지 않는다는 무협지도 밤을 새워가며 읽을 정도로 그 흡입력은 대단했죠. 물론 실화소설은 더 말할 필요 없이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구요.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 아이 키우랴, 직장생활 하랴, 가사일 하랴. 거기에 어른들 병간호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사치로만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고작해야 아이들 동화책 읽어주는 걸로 만족해야 했죠.
가을이면 마음의 양식이라며 책 읽기를 권하는 방송을 보며 이제는 그 역시 나와는 거리가 먼 세상. 다른 나라 이야기려니 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바쁜 생활만큼 마음은 피폐해져 가고 있었죠.
그래서일까요? 책과 거리를 두면 둘수록 가슴 한켠은 휑하니 허허벌판이 되어가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됐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지만, 지인들의 조언과 충고, 위로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힘은 드는데, 누군가는 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되는 대답들을 해주긴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그런 마음이 느껴질 때 즈음 다시 책을 들었습니다.
전 무겁고, 어려운 단어가 많은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잔잔한 감성이 묻어 나면서도, 그 속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좋아합니다. 몇 마디의 글에도 '맞다',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수 있는 삽화가 그려진 책에 시선이 자꾸 가더군요. 그래서 그런 책들을 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볍지만 삶의 노하우가 묻어나는 책을 읽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고, 희망 아닌 희망을 보았고,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많은 책들 속 우연히 읽게 된 한 권의 책이 바로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최준영 저, 자연과 인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긴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야학으로 마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검정고시를 통해서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시절엔 야학교사로 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노숙인을 위해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는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끔 오해를 받곤 한다. 노숙인 인문학에 참여하고 있으니 좋은 사람일 거라는.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 혹은 착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건 부담스럽다. 그래서다. 되도록 단순하게, 가볍게 생각하려 한다” P.126
봉사활동을 몇년 째 하고 있는 저 역시도 종종 듣는 이야기이고, 순간순간 벽처럼 느껴졌던 생각을 저자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그런 걸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보이지만 모른 척 넘어 가야 하는. 그래서 마음 편치 않은 상황이 생길 때 저 역시 사람인지라 이기적인 마음을 먹어 가볍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넘기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 벽이라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는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철옹성 같은 것들을 계단인양 편히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며,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이유를 명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저도 모르게 책을 한장 한장 넘길수록 눈물이 났습니다.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뭐가 그리 서러운지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더군요.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 그리고 힘들었던 생활들, 인간관계. 그 속에서의 상처. 그런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며 하얀 책 위의 철자는 눈물샘을 자극하고 또 자극했습니다.
부자보다 가난했던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안다고 하죠. 힘든 어린 시절 어른이 되면 꼭 자원봉사를 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했었습니다. 지금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어디 끝이 있나요. 적당한 수준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메말라가던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나눔은 지식과 능력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
“인문학교육은 생각하는 삶을 살게 한다. 과거를 성찰하면서 현재를 생각하게 하고, 현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도록 하는 게 인문학이다. 노숙인이라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학문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하는 학문이다.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다양한 세상사 풍경들을 예로 들어 엇비슷한 답을 해줄 뿐이다. 그 예들은 가슴에 와닿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상의 얘기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p.197
전 인문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인문학이라고 논한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외계어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고 그 딱딱함에 한바닥을 채 읽기도 힘들더군요. 어떤 분들은 일부러 타인에 비해 더 유식해 보이기 위해 최대한 어려운 단어만 선택해 글을 쓰신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껴졌습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생각하게끔 하는 인문학이라는 것을요. 너무나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인문학이 절대 어렵지 않다는 것도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하고 삽니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하고 사는지 누구보다 본인들이 잘 알겁니다. 저 역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는지, 그에 대해 얼마나 답을 찾고 헤맸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질문하는 학문, 인문학
우린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스스로 답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찾지 못할 경우는 다른 방법으로 찾기를 원합니다.
감정이 메말라 가고 있던 중년을 앞둔 아줌마가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이 책, 저 책들을 펼쳐 들어 읽곤 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저자가 쓴 책 한 권이 답답하던 마음과 생각을 바꾸기도 합니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닮고 싶은 롤모델이 되기도 하며, 그 사람의 인생을 따라하면 행복해질 것 같은 착각에 그 사람인양 따라해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원한 해답을 얻기도 하죠.
삶의 노하우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서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간접 경험으로도 노하우와 지혜는 생깁니다. 간접적인 경험을 주는 아주 효율적 방법이 바로 독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롭고, 힘이 들고, 마음껏 울고 싶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나 지혜를 배우고 싶을 때 전 책에서 답을 얻습니다. 제가 원하는 답과 세상을 보는 넓은 마음 그리고 지혜를 함께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전 시간을 쪼개 한 장의 책이라도 넘깁니다.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말이에요. ^^
이것이 바로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독서의 즐거움입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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