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될 때, ‘책 파도타기’어떠세요?

2011. 12. 20. 09:23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문학입니다. 그 중에서도 19세기 러시아문학과 ‘도스토예프스키’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또렷하게 좋아하는 장르와 작가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학을 가장 좋아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분야의 책을 읽고 싶은지 늘 모호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책을 만나 실패도 많이 하고 지난함도 느끼며 책 읽기를 번복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좋아하는 문학 장르를 또렷하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시행착오 가운데 나름대로 체득한 방법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방법을 ‘책 파도타기’라고 부릅니다. 어떤 책을 읽다 다른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그 책을 직접 찾아서 읽어봅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읽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본격적으로 ‘책 파도타기’라 불렸던 책은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2002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습니다. 풍부한 묘사에 취해 순식간에 읽었으면서도 정작 줄거리는 희미했는데 그 작품 속에서 언급되었던 두 권의 책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의 산』과 『위대한 개츠비』였습니다. 곧바로 두 작품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그러자 『상실의 시대』 속 주인공이 이 작품을 언급했을 때의 내면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책장에 읽을 책이 넘쳐난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면 주변에서는 읽을 도서를 어떤 방법으로 선정하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 ‘책 파도타기’를 권합니다. 책 속에 언급된 책을 찾아 읽으면 적어도 오랜 시간 제가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 속에 다른 작품을 언급한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호할 때, 책에서 도움을 얻게 되면 조금씩 분야가 넓어지고 풍부한 독서를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이외에는 다른 분야로 넘어가지 못하던 제가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계기도 ‘책 파도타기’ 덕분이었습니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다 『인도의 발견』을 읽게 되었고 『뉴욕 3부작』을 읽다 『월든』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책들은 늘 저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마치 좁은 터널 속 같은 답답한 독서를 하다 광활한 벌판에서 여유로운 독서를 하듯 새로운 경험과 함께 저의 독서가 한 단계 성장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독서를 하다 보니 현대보단 고전소설을, 응축된 문장보다 세세한 묘사가 들어간 문장을, 미술과 철학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점차 저만의 관심분야가 형성되어 갔습니다. 

또한 비슷한 배경이 되는 작품을 읽다보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루이스 세풀베다의 『지구 끝의 사람들』을 읽다 첫 문장에서 『모비딕』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고래가 등장하는 두 작품을 순차적으로 읽다보니 ‘바다’라는 공통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비교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해저 2만리』까지 읽고 나자 각기 다른 작품의 매력은 물론이고 기존에 몰랐던 자잘한 상식부터 전문 지식이 쌓여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독서의 즐거움을 더 만끽하고 싶다면 ‘현장독서법’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김영하 작가님의『랄라라 하우스』에서 소개된 ‘현장독서법’는 이렇습니다. 

‘특정한 책을 골라 그것에 어울릴 만한 장소(대체로 작품의 배경)에 가서 읽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자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으러 작품의 배경이 된 영국 요크셔로 가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눈 내리는 일본의 니가타현에서 읽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장독서법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슷한 날씨에 맞춰 독서를 해봤습니다. 실제로 폭설이 내리던 밤에 『설국』을 읽고 푹푹 찌는 여름밤에 베트남이 배경인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었습니다. 비슷하게나마 작품 속의 배경에 맞춘 독서였는데 의외로 깊은 공감각을 이끌어 낼 수 있어 작품 속으로 침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책 파도타기’를 해도 분야가 전혀 달라 배경지식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현장독서법’ 대로 독서를 해도 오히려 맞춤 한 배경 때문에 집중이 덜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은 어떤 분야인지, 어떤 작가에 관심이 있는지, 하다못해 어떤 표지에 이끌려 책장을 펼치게 되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작가라도 나에겐 아무런 감동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방법은 참고가 될 수 있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그 독서법이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먼저는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완독을 하지 못하더라도 자주 서점에 가 어떠한 책들이 출간되는지 들춰보고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나만의 관심분야를 형성하기까지는 시간도 걸리고 헤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까지 만끽하다보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을 만나게 되면 독서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책 속에서 길을 잃다 책 속에서 길을 찾는 것만큼 큰 기쁨도 없습니다. 지금 당신 곁에 어떤 책이 있나요? 그 책을 시작으로 여러분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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