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1. 14:05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과연 독자들은 신문에서, 특히 '지역일간지'에서 어떤 기사를 읽고 싶어 할까요? 이 질문은 제가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맡은 이후 지난 10개월 동안 끊임없이 탐구해온 주제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지역일간지가 있지만, 거기에 실리는 기사와 편집, 지면배치는 소위 '중앙지'라 불리는 서울지역신문들과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서울지 기자들이 정부부처와 서울시청, 국회, 법원·검찰, 경찰서 등 관공서에 둥지를 틀고 취재를 하듯, 지역지 기자들도 시·도청과 시·군·구청, 지방의회, 지방법원·검찰, 경찰서 기자실에 포진해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뉴스도 신문마다 대동소이합니다. 어떤 신문에는 좀 크게 실리고, 다른 신문에는 좀 작게 실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같은 사안을 놓고 논조를 달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뉴스의 출처가 관공서라는 것은 다를 게 없습니다. 물론 문화부처럼 관공서와는 좀 거리가 있는 부서의 기자들도 있지만, 그들이 직접 만나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한 반응을 접하는 사람들 역시 일반 독자가 아닌 예술가와 작가, 문화단체 등 취재원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취재원이 좋아할 기사를 쓰는 데는 익숙하지만, 독자가 좋아할 기사는 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취재원보다 독자가 좋아하는 기사는?
그런데 문제는 실제 일반 독자에게 물어봐도 자신이 기존 신문에선 볼 수 없는 어떤 기사를 원하는지 말해주는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독자 스스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나간다는 우리나라 지역신문은 물론 유럽과 북미에서 특히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신문들을 벤치마킹해봤습니다. 공통점은 사람과 정보, 그리고 이슈에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중에서도 전혀 유명인사가 아닌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가 신문에 넘쳐난다는 게 특이했습니다.
스웨덴의 한 지역신문은 1면에 평범한 중년 남성의 생일에 관한 기사를 싣고, 7면에 그의 삶의 대한 장문의 기사를 연결시키는 편집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덴마크의 지역신문은 아예 1면 전체를 퍼스널 스토리로 꾸미고 있더군요.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은 지역주민들의 결혼식, 부고, 졸업식, 학교 운동시합 등을 일일이 충실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한 신문은 부고 기사의 경우, 사망자가 비록 일반 시민이라도 지역 토박이였다면 그 사람이 어떤 지역 내 모임에 소속되어 활동해왔고, 지역 공동체에 무슨 기여를 했는지 서술하는 추도기사를 실음으로써 지역주민들에게 '뉴올리언스인'으로서의 소속감을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개념의 '뉴스'보다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신문에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지역사회에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그냥 단순 중계보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중적 논란을 주도하면서 사람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시민운동단체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도 사랑받는 지역신문들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독자들이 그걸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 독자들도 과연 좋아할지가 문제였습니다. 우선 평범하지만 자신의 일과 삶에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소개하는 '동네사람' 코너를 신설해 실험삼아 지면에 실어봤습니다. '동네이야기'라는 지면도 신설했습니다.
역시 사람이 희망입니다.
신세계백화점 앞 길가에서 채소를 파는 노점 할머니, 친절하기로 소문난 시내버스와 택시 운전기사, 블로그 하는 밥집 아줌마, 헌책방 주인아저씨, 우산 고치는 할아버지, 5일장에서 두부 파는 청년, 산불감시원, 전자제품 수리 기술자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해서 실렸습니다.
그런 기사가 나간 날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누리꾼들의 반응을 물었습니다. 또한 하루에 한 분씩 독자들께 전화를 걸어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거나 재미있게 읽은 기사를 물어봤습니다. 매월 열리는 지면평가위원들의 반응도 살폈습니다. 그렇게 하여 축적된 지난 10개월간 독자의 반응을 꼼꼼히 분석했습니다.
역시 우리의 기대는 크게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동네사람'과 '동네이야기'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셨던 것입니다. 역시나 사람이 희망이었습니다. 서울지를 모방하지 않고, 서울지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지역신문만의 핵심 콘텐츠를 저희가 찾아낸 것입니다.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소통망 같은 신문
마침 이 글을 쓰는 도중 저희 신문이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갱상도블로그'에 한 독자님이 이런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우리가 경남도민일보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는 사람들의 기사가 많이 나오고, 우리 주변의 자잘한 일과, 이런 것들도 기사감이 되는가 싶을 정도로 평범한 내용도 올라오기 때문에 꼭 동네사랑방에서 나누는 동네사람들의 수다 같아서 가게 문을 열면 신문부터 집어 들고 쭉 훑고 난 뒤, 일을 시작한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자신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 밥집 아줌마는 또 이렇게 그날 하루의 감상을 올렸습니다.
"조금 늦게 밥집에 내려가는 날이라 집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전화통이 불이 나고 밀려드는 문자 알림에 무슨 일인가 했더만 인터뷰 기사가 1면에 커다란 사진과 함께 나왔다는 것이다. … 그날 하루 종일 웃으며 일일이 손님들에게 바쁘게 왔다갔다 인사를 해야만 했다. 아는 체하는 분들의 관심이 너무 뜨거워 얼굴 근육이 찢어질라 했는데도 미소를 내릴 수가 없었다. 가게 위치를 묻는 전화며 일부러 찾아온 손님까지…."
바로 이게 우리가 바라는 지역신문의 역할입니다. 이웃과 이웃을 연결시켜주는 소통망과 같은 신문 말입니다. 어떤가요? 이런 지역신문 한 부 받아보지 않으실래요?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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