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효율적으로 읽는 두 가지 태도

2011. 5. 13. 09:1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인간을 규정하는 말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등등... 그 밖에도 인간을 규정하는 많은 말이 있습니다. 이 모든 말은 다 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인간은 읽는 동물이다’를 보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출처 : flickr/Sagansapien>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중요한 차이는 인간에겐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까마득히 오래 전부터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했던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건 불과 수천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음성 언어를 써 온 역사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기간이지만 이 수천 년 동안에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질과 양은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문명은 바로 문자의 발명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문자가 없었다면, 인간은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문명은 결코 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문자 생활을 하지 않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아마존이나 파푸아뉴기니 등에는 지금도 문자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수는 미미합니다. 문자가 있기에 책, 신문, 잡지가 있습니다. 요즘엔 인터넷, 모바일 등까지 합세해 문자를 통해 주고받는 정보의 양은 실로 엄청납니다.


문자를 통해 주고 받는 정보의 결정체, 신문

읽을거리로는 가장 전통적인 것이 책이지만 신문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꽤 다르겠지만 책보다 신문을 더 많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작고한 어느 유명한 국어학자는 평생의 낙이 날마다 신문을 1면부터 끝까지 죄다 훑어 읽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편식이 사람의 몸에 해롭듯이 읽기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신문의 장점이 크다 해도 독서의 유용성을 간과할 수 없는데요. 출판된 책은 그 분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할 뿐 아니라 내용의 깊이도 신문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신문이 책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신문의 장점 또한 가볍게 여길 수 없죠. 신문은 그 나름의 장점이 분명 있습니다.

신문은 우선 가장 최근의 이슈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신문을 꾸준히 읽는다면 오늘날 세계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신문은 수많은 고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개인이 쓰는 책과는 달리 상당한 수준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믿고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신문의 약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의 깊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깊게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전문 서적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책이 갖지 못하는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현대인은 신문을 통해 얻을 것이 많습니다.

 

신문을 읽는 두 가지 방법

그럼 신문을 읽을 때의 바른 태도와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필자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태도를 갖고 신문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적극적인 태도로 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것과 한편으로 비판적인 안목으로 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얼핏 보아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태도로 신문을 읽어야 할까요?




적극적인 태도로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신문 기사를 읽을 때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는 기본 태도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기사의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기사를 읽을 경우 자칫 미로 속에 헤매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문 기사를 쓰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드러나지 않게 쓸 수도 있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글 쓰는 기술의 부족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든 읽는 사람은 필자의 전달 의도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글을 읽을 때 읽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문의 기사 중에서도 사건 사고 소식 같은, 이른바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하는 것은 사실 별 힘 안 들이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석 기사라든지 칼럼 같은 것은 상당히 노력하지 않으면 잘 읽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글들을 읽을 때는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발동해서 글을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편으로 비판적인 안목으로 신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사의 내용을 비판적인 안목 없이 읽을 경우 자칫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의 내용이 내 생각과 합치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을 터인데 덮어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읽는다면 그 읽기는 내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읽기는 읽었으되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 읽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동의되는 내용이라면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려준 것이라면 내 지식을 늘려주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읽기는 무의미합니다. 비판적인 안목으로 신문 기사를 읽어야 하는 다른 이유는 신문 기사라고 전부 다 논리적이거나 문법적이지 않은데 아무 생각 없이 읽는다면 신문 기사 문장의 논리성, 문법성에 대해 반성해보지 않고 무작정 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덮어 놓고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기사 내용 자체에 대해서든 그 기사의 문장에 대해서든 내가 형성해 놓고 있는 지식의 틀, 문법의 틀과 비교해 요모조모를 따져보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신문 기사를 그저 읽기만 할 게 아니라 읽고서 느낀 바를 써 보는 습관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침 인터넷의 출현으로 신문의 독자가 단지 읽는 사람만이 아니라 읽고 그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일 수도 되게 되었습니다. 댓글을 써서 내 생각을 알리고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쌍방향 주고받기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장점을 살리려면 내 생각을 반듯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내 생각을 글로 써보는 습관을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길은 열려 있습니다. 신문 기사마다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SNS)의 출현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세상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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